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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60년만에 짙어진 핵공포… 美안보수장 “러시아의 위협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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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전현직 대통령·장관 ‘핵무기 사용’ 잇단 언급

조선일보

러, 올해 4월 최신형 ICBM 시험발사 - 지난 4월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800㎞ 떨어진 아르한겔스크주(州)의 플레세츠크 우주 기지에서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RS-28 ‘사르마트’가 발사되고 있다. 이날 시험 발사에서 사르마트는 약 6000㎞ 떨어진 시베리아 동쪽 캄차카반도의 표적에 탄두를 명중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사르마트의 최대 사거리는 1만800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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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파국적 결과(catastrophic consequences)”가 있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나섰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5일(현지 시각) ABC방송의 ‘디스 위크’에 출연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번 주 핵 위협을 했는데 얼마나 심각한가”란 질문을 받고 “우리는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매우 고위급에서 직접 비공개로 러시아 측에 ‘만약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파국적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달했다”면서 “미국이 동맹·파트너와 함께 과감하게 대응할 것이란 점을 그들에게 분명하고 단호히 (경고)했다”라고 말했다.

설리번 보좌관의 이날 발언은 즉각 국제적 관심을 끌었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국면에서 러시아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발 빠른 정보력을 보여줬다. 다만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러시아가 핵 사용을 준비하고 있다는 물리적 징후는 없다고 전했다.

미국은 최근 푸틴을 비롯한 러시아 당국자들이 반복적으로 핵 위협을 가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푸틴은 지난 21일 TV 연설을 통해 동원령을 발표하며 “우리나라(러시아)의 영토적 온전성이 위협받는다면 우리는 러시아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분명히 우리가 가진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다. 이것은 허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푸틴의 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다음 날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를 포함, 러시아 영토 방어를 위해 ‘전략 핵무기’를 포함한 어떤 무기든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 장관도 24일 유엔총회가 열리는 뉴욕에서 “러시아에는 핵안보 독트린이 있는데 공개된 문서”라며 “우리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들이 어떻게 표현돼 있는지 다시 한번 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일부 미 정부 당국자는 “올해 초 러시아군이 키이우와 우크라이나 북부에서 퇴각할 때 푸틴이 했던 위협에 비해 어조나 범위, 진지성에서 차이를 느꼈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과거보다 더 위험성이 높아졌다는 취지다. 반면 두 명의 미 정보 고위 당국자는 “서방국가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인도 같은 모스크바의 동맹들이 보일 반응을 고려할 때 푸틴이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핵무기를 사용하면 중국과 인도의 지지마저 잃게 될 텐데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란 뜻이다. 설리번 보좌관도 ABC 인터뷰에서 “이번 전쟁 중 푸틴 대통령이 핵 위협을 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월 처음 러시아 병력이 국경을 넘을 때부터 핵 카드를 휘둘렀다”며 “그것이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150억달러 규모의 무기를 지원하고 우크라이나인들을 돕지 못하도록 하지는 못했다. 이번에도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전황이 불리해 궁지에 몰린 푸틴이 핵무기 사용 유혹을 느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미국과학자연맹에 따르면 러시아는 실전 배치된 것과 비축용을 합쳐 4477개의 핵탄두를 갖고 있다. 그중 약 1900개가 제한된 전장의 탱크 행렬이나 항모 전단을 파괴할 때 쓰이는 전술 핵무기다. CNN방송은 “1945년 미국이 일본에 투하한 핵폭탄은 15~21kt(킬로톤) 정도였는데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3만5000~7만명이 즉사했다”며 “10~100kt의 ‘저위력’ 전술 핵무기만으로도 엄청난 파괴를 야기할 수 있다”고 전했다. 미국도 이런 점을 고려해 외교 채널과 공개 발언을 통해 푸틴을 억지하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

1945년 일본에 핵폭탄이 투하된 지 77년 만에 러시아가 핵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사용할 경우, 미국과 유럽이 끌려들어 3차 대전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우려되고 있다. 러시아의 이번 핵 위협은 지난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 이후 가장 위험성이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푸틴에겐 최근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 우크라이나 전황을 뒤집을 마땅한 카드가 없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세계가 러시아를 촘촘히 압박하고 있다. CNN은 “핵무기 사용은 지도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종류의 전략적 결정이지만 푸틴처럼 (남성적) 이미지에 투자한 지도자에게는 그 결정을 내리는 데 좀 감정적 요소가 있을 수 있다”라고 전했다.

푸틴이 핵무기 사용을 택할 경우 세계 정세는 예측하기 어려운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ABC방송의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하면 미국이) 직접 싸울 것인가?”란 질문에 설리번 보좌관은 “결과가 무엇일지 러시아 측에 전했다”면서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설리번 보좌관은 “우리는 모든 비상사태에 대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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