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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영국發 금융위기’ 터지나…글로벌 금융시장 덮친 파운드화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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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드화. 야후 파이낸스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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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로 추락한 ‘파운드화 쇼크’가 아시아와 유럽에 이어 미국 뉴욕 증시까지 덮치며 글로벌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영국 통화 가치 하락으로 부채 상환에 차질이 생기며 ‘영국발(發) 금융위기’가 터질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달러 가치의 초강세를 뜻하는 ‘킹 달러’ 현상으로 다른 국가들의 통화 가치가 줄줄이 하락해 세계 무역이 위축될 것이란 공포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발 경기 침체 우려까지 겹쳤다.

26일(이하 현지 시간) 영국 파운드화의 미 달러 대비 환율은 약 5% 떨어지며 한때 사상 최저 수준인 1.03달러로 추락했다가 27일 상승하며 진정됐다. 이전 최저치는 1985년 2월 26일의 1.05달러였다. 파운드화 가치 급락에 불안감이 확산되며 26일 영국의 5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4.603%로 세계 금융위기 때였던 2008년 9월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

이날 미국 증시 3대 지수도 ‘파운드화 쇼크’로 일제히 하락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전장보다 1.03% 하락해 연중 최저치를 경신했다. 다우지수는 전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해 약세장(베어마켓)에 진입했다.

26일 연중 최저점으로 추락했던 국내 증시는 27일에도 출렁였다. 27일 코스피는 장중 2,197.9까지 밀렸다. 지수가 장중 2,200선 밑으로 떨어진 건 2020년 7월 24일(2,195.49) 이후 2년 2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후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0.13%(2.92포인트) 오른 2,223.86에 마감했다. 전날 700 선이 무너졌던 코스닥지수는 0.83%(5.74포인트) 반등하며 698.11로 거래를 마쳤다. 원-달러 환율은 9.8원 내린 1421.5원에 마감했다.

“파운드화 가치 ‘1달러’ 아래로 추락할 것”

미국 증시와 함께 미 국채 금리, 국제 원자재 값도 연일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강력한 금리 인상 기조로 26일(현지 시간)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장중 3.9%를 넘어 2010년 이후 12년 만에 가장 높았다. 뉴욕상품거래소의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76.7달러로 9개월 만에 최저치를 찍으며 경기 침체 우려를 키웠다.

아시아, 유럽에 이어 미국까지 글로벌 금융시장이 연쇄적으로 흔들린 데는 영국 파운드화 가치 폭락이 기폭제가 된 것으로 분석된다. 파운드화 가치가 ‘1달러’ 아래로 추락할 것으로 예상되며 영국 부채 상환에 문제가 생기고, 파운드화를 거래하는 외국 기업들까지 타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英, IMF 구제금융” 예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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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드화 쇼크의 시작은 23일 영국 리즈 트러스 내각이 소비 진작을 위해 50년 만에 최대 폭의 감세 정책을 발표하며 가시화됐다. 물가가 4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는데도 시장에 사실상 돈을 푸는 감세 정책이 나오자 투자자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파운드화를 투매했다. 이어 25일 추가 감세 입장이 나오자 파운드화 가치가 더욱 떨어졌다.

영국 파운드화의 미 달러 대비 환율은 26일 1.09달러까지 오르면서 반등을 꾀했으나 영국 중앙은행(BOE)이 긴급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란 시장의 예상을 깨고 인상 결정을 유예하자 다시 하락하는 등 급등락하며 이날 한때 사상 최저인 1.03달러까지 추락했다. 이는 역대 최저치였던 마거릿 대처 전 총리 시절인 1985년 수준보다 낮다. 금융시장 불안에 주택담보대출 기관인 할리팍스 등은 일부 상품 판매를 일시 중단했다.

파운드화 가치는 27일 상승세로 시작하며 진정되는 듯 했지만 장기적으로 가치가 더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영국 정부의 ‘완전히 무책임한’ (감세) 계획이 파운드화 가치를 1달러 아래로는 물론이고 1유로 아래로도 끌어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했던 누리엘 루비니 전 뉴욕대 교수는 24일 트위터에 “영국은 스태그플레이션이 찾아와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구걸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파운드화 급락 쇼크 여파는 영국뿐 아니라 세계를 흔들고 있다. 영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은 영국에서 벌어들인 돈을 본국으로 보내는 과정에서 파운드화 가치 하락에 대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26일 칼럼을 통해 “영국이 (만성 부채 국가인) 이탈리아를 대신해 새로운 유럽의 경제 문제 국가로 부상했다”고 평했다.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은 영국 감세 정책에 따른 혼란에 대해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교훈을 얻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고 영국 가디언이 보도했다. 라파엘 보스틱 애틀란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파운드화 폭락을 초래한 영국 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글로벌 경기침체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경고했다.

●킹 달러-연준발 경기 비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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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드화 급락이 달러 초강세를 뜻하는 ‘킹 달러’ 현상을 더욱 부추기면서 이로 인한 무역 위축 공포도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6개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는 114를 돌파해 2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킹 달러’는 신흥국의 금융위기 우려는 물론이고 미국 내에서도 경기 둔화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달러화 가치 상승으로 해외에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 미국 수출 기업 실적이 부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 투자기관 네드 데이비스 리서치는 글로벌 경기침체 확률이 98%까지 상승했다고 밝혔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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