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징집 전엔 푸틴 지지하더니…” 조지아도 16㎞ 러 탈출행렬에 싸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라트비아 외무장관 “우크라人 학살 때는 가만 있던 이들은 양심적 반대자 아니다”

조선일보

27일(현지 시각) 러시아에서 조지아로 넘어가려는 차량이 조지아 북오세티아 국경검문소에 길게 줄을 서있는 가운데 일부는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다./TASS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7일 많은 이의 눈길을 끈 외신 사진은 러시아 정부의 강제 징집을 피해 탈출하는 러시아인들이 러시아 남부의 조지아로 넘어가기 위해 16㎞ 늘어선 차량 행렬이었다. 지난 21일 러시아 정부가 ‘부분’ 동원령을 내리고 예비군 30만 명을 징집하겠다고 하자, 러시아인들이 이를 피해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위치한 카프카스 산맥의 조지아로 달려간 것이다.

러시아 전체 인구의 75%가 사는 유럽 쪽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나라는 적지 않다. 그런데, 왜 굳이 조지아 문 앞에 이런 장사진(長蛇陣)을 친 것일까. 현실적으로, 차량 탈출구가 조지아 밖에 없기 때문이다.

◇EU 인접국들, 19일부터 러시아인 막아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서 러시아 인접국은 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 발트 3국과 핀란드ㆍ폴란드 등 모두 5개국이다. 이 중 발트 3국과 폴란드는 러시아 정부의 ‘부분’ 동원령이 내려지기 이틀 전인 9월19일부터 러시아인에게 국경을 폐쇄했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밖에, EU의 파트너 국가인 노르웨이는 워낙 북쪽에 있는 데다, 노르웨이와 가장 가까운 무르만스크까지 가는 러시아 국내 기차ㆍ항공 요금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그마저 러시아 정부가 28일쯤 노르웨이와 접한 국경 검문소에서 동원 대상 연령층의 출국을 금할 것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EU 국가들과 미국ㆍ영국ㆍ캐나다ㆍ한국ㆍ일본 등은 또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이래 직항(直航)이 중단됐다.

핀란드는 아직 러시아인에게 국경이 열려 있다. 그러나 절대 다수 국민은 폐쇄를 강력히 선호하며, 특히 양국 간 교통량이 많은 남동부 국경 지역에 ‘펜스’를 설치하라는 요구가 높다. 핀란드 정부는 수일 내에 국경을 폐쇄할 예정이다. 이미 헬싱키 공항에는 핀란드로 입국한 뒤에 EU 내 다른 나라로 떠난 러시아인들이 세워놓은 차량들로 넘쳐난다.

이렇게 해서라도, 유럽연합(EU) 국가들로 빠져나온 러시아인은 지난주까지 6만6000명에 달했다. 이들은 대부분 EU 국가 내 3개월간 체류 및 자유로운 통행이 허용된 ‘솅겐(Schengen) 비자’ 소지자들이다. EU 국가들은 9월1일부터 러시아인에 대한 신규 비자 발급을 중단했다.

탈출하는 러시아인을 보는 EU 인접국 시각은 싸늘하다. 라트비아 외무장관은 “지금 동원령 때문에 러시아를 도망치는 사람은 우크라이나인을 학살하는 전쟁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그들을 ‘양심적 반대자’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현지 시각 27일 예비군 동원령이 내려진후 징집을 피해 조지아로 넘어온 러시아인들이 짐을 가지고 걸어가고 있다./EPA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항공편은 다 동나고, 벨라루스는 ‘체포령’ 소문까지

러시아인이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이웃국 벨라루스. 그러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27일 흑해 휴양지 소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뭐 3만, 5만 명이 도망치라지. 우리는 전쟁에 이기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이 없고, 우리 슬라브족은 (패배의) 치욕은 용납할 수 없다”고 푸틴의 비위를 맞췄다. 친(親)러 정부인 벨라루스는 곧 입국한 러시아인을 체포해 러시아 정부에 넘길 것이라는 소문이 번졌다.

이밖에 카자흐스탄ㆍ아제르바이잔ㆍ몽골리아 등이 있다. 그러나 차ㆍ자전거ㆍ도보로 이들 나라 국경을 넘는 것은 지형적으로 매우 힘들다고 한다. 또 이미 9만8000명의 러시아인이 입국한 카자흐스탄까지의 항공편은 평소 수백 달러이던 것이 이제 두 군데를 경유해서 가는 항공편이 2만 달러에 달한다. 물론 구하기도 힘들다. 세르비아ㆍ아제르바이잔ㆍ튀르키예 등으로 가는 항공편도 동이 났다.

◇러시아 독립 매체 “자국민을 대포밥으로 모는 푸틴 피하려는 러시아인, 기댈 곳이 없다”

결국 차로 접근할 수 있고, 남아 있는 탈출 루트가 조지아와의 국경이다. 그래서 16㎞씩이나 줄을 선 것이지만, 이마저도 명백한 이유 없이 종종 입국이 거절된다고 한다. 푸틴의 러시아는 2008년 조지아를 침공해 엄청난 파괴 행위를 했고, 조지아는 우크라이나와 더불어 나토(NATO) 가입을 원한다.

조지아인들도 탈출하는 러시아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한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당신네(러시아인)는 그저 우크라이나에서 죽을까봐 걱정한다. 지난 7개월 동안 전쟁에 반대할 기회가 있었는데, 징집관이 문을 두드리기 직전까지 푸틴을 지지했잖아!”라고 썼다. BBC 방송은 러시아 정부가 조지아와의 국경 검문소에서 조만간 러시아인들의 출국을 막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푸틴 정권의 박해를 받는 러시아인들에게 법적ㆍ심리적 조언을 제공하는 라트비아 소재의 독립 매체인 ‘헬프데스크.미디어(Helpdesk.media)’를 운영하는 일리아 크라실시치크는 27일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1000 여 명의 러시아인이 30여 도시에서 반전(反戰) 시위를 벌이고 체포됐다”며 “이는 독재정권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상상할 수 없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나 러시아 밖 사람들은 ‘왜 그동안 조용했느냐’고 묻는다”며 “자신의 실패에 대한 분풀이를 자국민에게 쏟으며 ‘대포밥’으로 모는 푸틴 정권을 피하려는 러시아인들이 기댈 곳이 없다”고 썼다.

조선일보

현지 시각 27일 예비군동원령이 내려진후 징집을 피해 조지아로 탈출하려는 러시아인들 차량이 러시아-조지아 국경에 길게 줄을 서있다./Maxar Technologies/AF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철민 국제 전문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