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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中 ‘부채의 덫’에 美 ‘킹달러’ 덮쳤다…G2발 부도위기 개도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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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화 지폐와 위안화 지폐 이미지.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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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king) 달러’ 공포가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다. 2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388.0원)보다 18.4원 오른 1439.9원에 마감했다. 장중 한때 1440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40원대를 기록한 건 세계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9년 3월 이후 처음이다. 이날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 역시 114.638을 기록하며 최고치를 또 경신했다.

강달러 충격은 저소득 개발도상국에 더 크게 닥치고 있다. 달러 독주로 인한 통화 가치 불균형이 이들 국가의 경제 시스템에 큰 부담을 주고 있어서다. 특히 일부 국가들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이미 ‘부채의 덫(Debt Trap)’에 빠진 상황에서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이 초래하는 ‘강(强)달러’로 인해 빚의 규모가 더 커질 위기다. 지난 5월 스리랑카가 일시적 채무불이행(디폴트)를 선언한 데 이어 파키스탄·앙골라 등도 'G2'발 국가부도 위기에 떨고 있다.



“中 일대일로가 개도국 부도위기 내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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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타바야 라자팍사(사진 왼쪽) 스리랑카 대통령과 왕이 중국 외무장관이 지난해 1월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 중국의 자금 지원을 받아 바다를 매립해 조성하는 포트 시티 프로젝트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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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은행(WB)에 따르면 중국이 저소득 개발도상국에 제공한 차관 규모는 지난 2010년 말 400억 달러에서 2020년 말 1700억 달러로 급증했다. BBC는 “중국 정부를 통해 조달된 금액만 집계된 것으로 실질 자금 집행 규모는 2배 이상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중국에 돈을 빌린 나라들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지역 개발도상국에 집중돼 있다. 배경엔 중국이 지난 2013년부터 시작한 일대일로 정책이 자리한다. 개발도상국에 철도·도로·항만·발전소 등 사회기반시설을 건설해 주고 이들 국가와 경제·외교 관계를 강화하는 프로젝트다. WB의 조사 대상 97개국 중 중국 부채 규모가 큰 국가는 2020년 말 기준 파키스탄(773억 달러), 앙골라(363억 달러), 에티오피아(79억 달러), 케냐(74억 달러), 스리랑카(68억 달러)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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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들 국가들은 원금 상환조차 어려운 와중에 급증하는 채무 이자에 시달리고 있다. 프로젝트 중 다수가 수익 전망이 거의 없는 인프라 구축 관련 사업인데다, 코로나19 발생으로 인한 경제 충격이 겹쳤기 때문이다. 지부티와 앙골라의 경우 2020년 기준 중국 관련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40%를 넘어섰다. 몰디브와 라오스도 GDP의 30% 이상이 중국에 진 빚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010년 5%에 불과했던 중국의 해외 부실 대출 비율은 올해 들어 60% 수준으로 급증했다. 미 경제잡지 포브스는 “중국의 자금으로 벌인 인프라 사업은 감당할 수 없는 채무와 잉여 시설만 남긴 채 개발도상국을 부도 위기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달러’ 개도국 빚 폭탄에 불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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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영국 런던의 한 환전소 앞을 한 여성이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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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높아진 물가를 잡기 위해 최근 세 번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한 것이 개발도상국의 빚을 눈덩이처럼 불리고 있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인해 달러화가 초강세를 보여서다.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는 국가 간 부채 상환 과정에서도 주요 결제 통화로 이용된다. ‘강달러’가 안 그래도 막대한 중국 빚의 실질적인 부담 규모를 키워주고 있는 셈이다. WSJ은 “중국 인민은행 관계자들은 Fed의 빠른 금리 인상으로 달러 가치가 상승해 개발도상국의 (중국 관련) 외채 상환 비용이 더 많이 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전했다.

이미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대란, 인플레이션의 충격에 허우적대던 개발도상국들로선 연타 펀치를 맞은 격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세계시장에선 부채뿐 아니라 에너지·식량 모두 달러로 거래되기에 강달러는 개발도상국들에 더 큰 고통을 준다”며 “강달러는 이들 국가에 고물가와 자본 유출 사태까지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WB도 지난 18일 “미국의 과도하게 공격적인 금리 인상은 극빈국의 경제적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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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다급해진 개도국들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조 요청을 하고 있다. 올해 IMF가 세계 각국에 빌려준 자금(차관) 액수는 8월에 1400억 달러(약 199조원)로 이미 역대 최대규모를 넘었다. 아직 집행하지 않은 차관까지 포함하면 총 구제금융 규모는 2680억 달러가 넘는다. 구제금융을 받는 곳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관련 깊은 국가들이 많다. 파키스탄은 지난달 11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고, 잠비아와 스리랑카도 IMF와 구제금융을 협상 중이다. FT는 “많은 국가가 잇따라 IMF의 문을 두드리면서 IMF 대출 여력도 한계에 다다를 수 있다”고 전했다.



“내 코가 석자” 문제 해결 꺼리는 美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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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중국이 제작한 고속열차 차량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탄중프리오크 항구에서 하역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고속철 사업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가운데 하나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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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인식한 중국은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WSJ은 “중국이 디폴트를 선언한 스리랑카는 물론 아프리카 국가인 차드, 에티오피아, 잠비아 등과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주요 20개국(G20) 중심의 개도국 채무 구조조정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국제사회와 공조도 모색 중이다. 하지만 내부 고민도 만만치 않다. WSJ은 “인민은행은 개발도상국 부채 위기 해결에 나서길 원하지만, 재무부는 꺼린다”며 “중국 개발은행 등이 개도국에 내준 대출을 탕감해 주면 은행 손실이 커져 국내 경제에 충격을 안길까 걱정한다”고 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달 아프리카 대출 상환 면제를 공표했지만, 그 규모는 전체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강달러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물가가 잡히기 전까지는 금리 인상을 그만두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NYT는 “Fed의 임무는 미국 경제를 돌보는 것이지만,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Fed 결정이 미국 빼곤 모두 국가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며 “자신들의 결정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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