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무역 적자 암초…집값 붕괴는 없을 듯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국내 경제를 둘러싼 환경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13년 6개월 만에 1400원을 돌파했다. 부동산과 증시를 비롯한 자산 시장 가격은 완연한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무역수지는 6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경제 불황의 전조가 연이어 나오면서 국내 경제가 본격적인 ‘장기 불황’의 초입에 들어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20년 넘게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겠냐는 주장이다. 과거 석유파동,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못지않은 대형 파고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매경이코노미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9월 1~20일 무역수지는 41억달러 적자를 기록하면서, 25년 만에 ‘6개월 연속 무역 적자’가 우려되고 있다. 사진은 9월 13일 오후 부산항 신선대부두 모습.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매경이코노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과거 위기와 비교해보니

▷무역 적자 심각하지만 고용 안정

현재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은 다소 복합적이다. 과거 위기와 비교해보면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가 상존한다.

우선 물가 상승률, 환율, 실업률 등 표면적으로 보이는 수치에서 차이가 난다. 상황이 어려운 것은 맞지만 본격적인 불황이라 보기에 다소 애매하다는 평가다.

현재 위기에서 가장 불안정한 수치는 물가 상승률과 환율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에너지 위기 등으로 물가가 오르면서 서민 경제에 직격탄을 날렸고, 환율이 널뛰기를 거듭하는 탓에 외환 관리에 비상등이 켜졌다.

올해 한국은행이 예측한 물가 상승률은 5.2%다. 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물가 상승률이다. 높은 수치는 맞지만 과거 외환위기와 석유파동 때 수준은 아니다. IMF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8년 당시 물가 상승률은 7.5%였다. 석유파동이 일어난 1979년 물가 상승률은 18%를 기록했고 1980년에는 29%였다. 현재 물가 상승률은 석유 가격이 진정세를 보이고 있어 진정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처럼 기록할 만한 수치까지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널뛰는 환율 역시 세세하게 내용을 살펴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주요 교역국 18개국을 대상으로 원화의 실질실효환율을 계산해보면, 현재 원화 가치는 ‘2000년 이후 평균치’보다 2% 저평가된 상태다. 달러에 약세를 보일 뿐, 다른 통화와는 가치가 비슷하다는 의미다.

이는 과거 위기와는 확연한 차이다.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원화가 ‘나 홀로 약세’를 보였다. 현재 외환 시장은 달러화 강세와 비(非)달러 통화의 동반 약세가 나타난다. 유로화 가격은 전쟁 변수로 약세를 보이고 있고, 위안화도 중국 내수 경기 악화로 가치가 떨어졌다. 엔화는 엔저 현상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즉, 현재 환율은 달러가 지나치게 강세인 것이 원인이지 원화와 한국 경제 펀더멘털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 달했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비교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당시는 우리나라의 단기 차입이 급증한 이후 글로벌 신용경색이 들어오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차입금 차환 중단, 상환 압력 가중 등으로 대규모 원화 투매가 나타나면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다.

실업률이 급등했던 과거 위기와 달리 올해는 고용이 비교적 안정된 상태다. 지난 8월 실업률은 2.1%로 1999년 통계 작성 이후 23년 만에 가장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전 최저 실업률은 2021년 11월 2.6%였다. 실업자 수와 실업률 모두 역대 최저치다.

물론 과거에 비해 긍정적인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내외 무역 여건, 지정학적 리스크, 가계부채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는 일시적인 자본경색이 문제였다. 제조업을 비롯한 기업 핵심 사업 경쟁력은 살아 있었다. 외환위기 때는 우량 기업 위주로 시장을 구조조정해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빠르게 회복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시장 성장 덕분에 재빨리 탈출할 수 있었다.

현재는 실물경제 여건이 좋지 않다. 무역수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중무역은 5월부터 계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유럽에서 발발한 전쟁으로 탈세계화 움직임이 커졌기 때문이다.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면서 원자재를 수입, 가공해 수출하는 중간무역이 주력인 한국 경제는 치명타를 입었다.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 문제도 여전하다. 어느새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800조원을 넘어서며 GDP 대비 106% 수준까지 치솟았다. 국제결제은행 기준에 따르면 국가가 감내할 수 있는 가계부채 수준은 GDP 대비 85% 수준이다. 금리가 오르면 가계 이자 부담이 커지고, 이는 곧 민생 경제 붕괴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매경이코노미

‘부동산 버블 붕괴론’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9월 15일 서울 송파구의 한 상가에 위치한 공인중개사무소 외벽의 매물 홍보칸이 비어 있는 모습(위). 미국이 연이어 금리 인상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하면서 한국 기준금리 인상폭에도 관심이 모인다. 사진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8월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아래). (매경DB, 사진공동취재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문가가 바라보는 한국 경제

▷대외변수 위협, 구조적 처방 절실

전문가들은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해 어떻게 바라볼까. 경제 상황이 과거 위기 수준까지는 재현되지 않겠지만, ‘대외변수’에 따라 상황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물가에 대해서는 현재가 고점이라는 인식이다. 무엇보다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꺾였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는 “원자재 가격이 일부 하락세로 돌아서고 있다. 경기 침체로 원자재 가격 상승에 한계가 왔다”면서 “물가 수준이 고점에 가까워 보인다”고 말했다.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 하락세는 지표로 확인된다. 뉴욕상업거래소의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지난 6월 배럴당 110달러를 넘어섰지만, 이후 3개월째 내리막을 걷고 있다. WTI는 올 9월 들어 80달러대 초반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브렌트유 역시 지난 6월 배럴당 120달러를 넘나들었지만, 최근 25% 가까이 내려앉았다.

문재인정부 시절 급등한 집값은 괜찮을까.

일본의 장기 불황이 1990년대 부동산 버블 붕괴에서 시작된 만큼, 한국 역시 ‘버블 붕괴’를 우려하는 시선이 여전하다. 반면 전문가들은 ‘버블 붕괴’ 수준의 폭락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의 부동산 가격 하락은 하향 안정화에 가깝다는 진단이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집값 하락은 분명하지만, ‘붕괴’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다만 지난 정부 말부터 시작된 대출 규제 기조가 이어지는 등 정부 정책 방향에 따라 하락폭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락하고 있는 부동산 가격의 하단이 2020년 말에서 2021년 상반기 당시의 가격일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기준금리 고점이 예상되는 2023년 중순의 집값 하락률이 가장 높을 것이다. 이후 집값이 다시 완만하게 상승하는 흐름으로 갈 것을 예상하고 추측해보면, 2020년 말에서 2021년 6월 집값이 향후 부동산 가격의 하단으로 보인다”면서 “붕괴라는 표현을 쓰려면 2020년의 상승분을 다 반납해야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달러 환율에 대해서는 1400원대 수준을 지속하고, 높게는 1500원 선도 넘길 수 있을 거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오정근 교수는 “연말에는 1500원 선까지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한미 기준금리 차가 벌어지면서, 내년 초를 전후해 1500원대 중후반까지 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전문가들은 2008년 금융위기 때 기록했던 전고점인 1570원을 넘어설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한다. 당시에는 경기 침체가 환율 급등을 이끌었는데, 지금 상황이 그때만큼의 침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이유다.

강인수 교수는 “2008년 금융위기나 IMF 외환위기 때와 지금은 다르다”면서 “현재는 침체 국면임에도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방역 해제가 진행되고 있고 공급망도 회복 중이다. 수요와 공급의 개선이 어느 정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환율이 전고점을 넘어설 정도로 폭등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국 기준금리는 3.5%를 넘기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문가가 대다수다. 9월 21일(현지 시각)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또다시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했다.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해 3~3.25%를 기록하게 된 것. 한미 기준금리가 한 달 만에 다시 역전되면서, 한국 역시 기준금리 인상 부담이 커졌다.

전문가들은 미국 기준금리 고점이 4.25~4.5% 정도로 전망되는데 그에 따라 한국의 기준금리 고점은 3.5% 전후일 거라고 예상했다. 한국 경제 상황을 고려했을 때, 미국만큼의 금리 인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오정근 교수는 “외국인 자금 유출 문제를 고려하더라도, 미국 수준의 금리를 한국이 따라갈 수는 없다. 한국이 그 정도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 경제가 급격히 무너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역시 “금리 역전으로 인한 환율 문제 등은 통화스와프 같은 제도로 보완해야 한다. 금리를 마냥 올렸을 때 폐단이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지표와 관계없이 앞으로의 경제 상황은 ‘대외변수’에 달렸다는 게 중론이다. 대표적인 것이 미 연준의 금리 인상폭이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얼마나 더 인상하고, 또 언제 인상을 멈추느냐에 따라 한국 경제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미국의 금리 인상은 물가 진정에 목적이 있는 만큼, 올 11월 마무리될 미국 중간선거 이후 지금의 인상세를 자제할 가능성도 있다. 김태기 교수는 “11월 중간선거를 기점으로 금리도 서서히 정상화될 것이라고 본다. 지금 미국에서 물가가 선거의 최대 이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여부도 변수다. 인플레이션을 촉발한 원자재 가격 불안정의 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김광석 실장은 “전쟁이 종식되면 생각보다 빠르게 물가가 안정화되고, 금리 인상 속도 역시 비교적 주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갯속에 갇힌 경제 상황,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진단이다. 강인수 교수는 “경기가 침체될수록 정부는 단기적 약 처방에 불과한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장기적으로 경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생산성 향상과 같은 ‘구조적인 처방’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잃어버린 20년’ 일본판 불황 오나?

부동산 버블 붕괴, 장기 불황 진단은 일러

고물가 현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내 대형마트들이 초저가 경쟁에 열을 올리면서 현재 경제 상황이 장기 불황의 초입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이를 두고 ‘일본화(Japanification)’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일본화는 일본의 20년에 걸친 장기 침체와 디플레이션을 따라가는 것을 뜻한다.

일본처럼 장기 불황의 초입에 와 있는지 확인하려면 당시 일본의 상황과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을 비교해봐야 한다. 상황만 놓고 봤을 때는 ‘일본화’가 진행된다고 확답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일본의 장기 침체가 시작된 배경에는 엔화 초강세가 자리 잡는다. 1985년 플라자 합의 때 달러당 250엔이었던 엔·달러 환율은 1995년 80엔까지 떨어진다. 우리나라 환율에 비유해보면 1400원을 넘은 환율이 400원 수준으로 떨어진 셈이다. 원화 가치가 지나치게 떨어진 게 문제가 된 적은 있어도, 높아서 문제가 된 적은 드물다. 현재 원화는 1990년대 엔화처럼 강세가 될 가능성이 적다.

엔화는 세계 경제가 불안정해지면 강세가 되는 화폐다. 일본 경제가 어려워져도 투자 소득 유입이 있어 강세 경향을 보인다. 일본이 세계 3위권에 해당하는 경제 대국인 탓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내 경제가 어려워지거나 세계 경제가 불안정하면 원화 가치가 급격히 떨어진다. 원화 약세는 부정적인 요인만 있는 게 아니다. 수출 기업 수익을 늘려 경제 회복을 돕는 역할을 한다. 일본 엔화는 이런 알고리즘이 작동하지 않는 구조다.

일본과 한국 경제의 차이점도 크다.

일본화가 문제가 됐던 이유는 일본 경제의 특성 때문이다. 일본은 자체 시장이 크다. 수출만큼 내수 비중이 높아 내수 시장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때문에 내수 시장을 계속 키워야 하는데, 1990년대 일본은 대규모 부실 채권과 고령화로 내수가 극도로 침체됐다. 1990년대 미국 경제가 활황일 때 일본 경제가 나 홀로 저성장이었던 이유다.

반면 한국은 수출 비중이 일본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다. 고령화 등 내수 시장이 축소해도 세계 시장이 굳건하다면 기업 실적이 줄어들 이유는 없다. 세계 경제가 성장만 한다면 수출이라는 고리를 통해 덩달아 성장할 수 있다.

일본 장기 불황의 시발점이었던 ‘부동산 버블 폭락’ 사태도 재현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 중론이다.

“일본 부동산 버블 붕괴는 돈을 너무 많이 풀어서 집값이 뛴 사례다. 반면 우리나라는 부동산 정책 실패의 결과다. 주택 공급 규제 탓에 집값이 폭등한 것이다. 전제가 다른데 양국을 비교해선 안 된다. 지금의 집값 하락세는 고금리 때문에 일시적으로 흔들리는 것이다. 앞으로 정부 정책에 따라 집값은 하향 안정할 수도, 급락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본화’ 진단은 섣부른 판단이다.” 김광석 실장 진단이다.

[반진욱 기자, 윤은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7호 (2022.09.28~2022.10.04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