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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극우' 멜로니 때문에 EU 파국? 전문가들 "그 정도는 아니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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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정치 전문가 3명 인터뷰]
EU회의론자 멜로니... 유럽연합 분열 예측↑
전문가들 "'극심한 위협'까진 아닐 것" 진단
반EU노선 전망... "EU 내 영향도 무시 못해"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형제들(FdI) 대표. 곧 이탈리아 총리가 될 그를 지켜보는 유럽연합(EU)의 시선이 흔들리고 있다. '여자 무솔리니'로 불릴 정도로 극우 성향인 그는 한때 이탈리아의 EU 탈퇴를 주장했다. '멜로니의 이탈리아'가 EU 체제를 분열시키고 이른바 유럽의 가치를 흔드는 축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그의 등장이 정말 EU에 거대한 위험이 될까.

한국일보가 인터뷰한 유럽 현지의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다만 "아직까지는"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유럽정책센터의 파비안 줄리그 최고경영자, 토마소 그로시 정책분석가, 유럽정책연구센터 스테파니아 베날리아 부연구원의 분석을 소개한다.
한국일보

이탈리아 차기 총리가 될 가능성이 큰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형제들 대표가 26일(현지시간) 총선 승리 소감을 이야기하며 손키스를 하고 있다. 로마=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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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재미는 끝났다" EU회의론자 등장에 '우려'


멜로니 대표는 EU 체제 회의론자다. '강한 이탈리아'를 추구하는 그는 EU가 거추장스럽다고 본다. EU를 "무능한 괴물"이라 부르며 유로존 탈퇴를 주장한 전력도 있다.

EU를 떠받치는 가치와도 자주 충돌했다. EU는 인간의 존엄, 이동의 자유, 민주주의, 평등, 법치, 인권 등을 핵심가치로 내세운다. 그러나 멜로니 대표는 난민과 이민자에 대한 혐오를 정치적 무기로 활용했고, 성소수자 등 소수자 인권에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내가 이기면 유럽의 재미는 끝난다. 나는 이탈리아의 이익을 사수하기 위해 돌아올 것이다." 25일(현지시간) 실시된 총선을 2주 앞두고 나온 멜로니 대표의 발언을 EU는 최후통첩으로 받아들였다. 이탈리아와 EU의 충돌이 EU의 분열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한국일보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형제들 대표가 2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선거 유세를 하며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로마=AP·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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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경제지원 필요한 처지... "당장 충돌 어려울 것"


전문가 3명은 현재로선 이탈리아가 EU의 체제와 가치를 당장 뒤흔들 정도로 위협적이진 않을 것이라는 공통된 전망을 내놨다.

우선 이탈리아의 경제 문제가 있다. 멜로니 대표는 최악의 인플레이션 등 경제·민생 문제를 최우선순위로 해결해야 국정 그립을 강하게 쥘 수 있다. 경제 전문가 출신인 마리오 드라기 전 총리 내각이 조기 퇴진한 결정적 이유가 경제 위기 대응 실패여서 더욱 그렇다.

이탈리아는 2026년까지 EU로부터 1,915억 유로(264조 원)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회복기금을 받기로 돼 있다. EU와 엇나간다면 기금 수수가 불투명해진다. 줄리그 경영자는 "기금 문제와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이탈리아가 EU와의 완전한 대립을 택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U 안에서 힘을 합칠 세력도 부족하다. 그로시 분석가는 "유럽 내 힘의 축이 오른쪽, 즉 우파 혹은 극우로 이동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멜로니 대표가 원하는 대로 의사 결정을 이끌기에는 EU 의회 내에 극우 세력이 다수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극우라는 공통점 때문에 같은 그룹으로 묶이지만, 독재의 길을 걷는 헝가리와 당장 손을 잡긴 어려울 것이다. 줄리그 경영자는 "정치적 사안에서도 이탈리아가 EU와 정반대의 노선을 걷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멜로니 대표 역시 선거운동 기간인 지난달 "EU의 규정을 준수하고 EU 위원회와 합의를 통해 일하고 싶다"며 유화적 제스처를 취했다.

베날리아 부연구원은 "야당 시절엔 어떤 말이든 할 수 있었겠지만, 집권 후엔 다를 수밖에 없다"고 봤다. 다만 멜로니 대표가 중도 표심을 노리고 본심을 숨기고 있을 가능성도 없진 않다.
한국일보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EU) 위원회 바깥에서 지난 6월 17일(현지시간) EU기가 휘날리고 있다. 브뤼셀=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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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니로 인한 균열·갈등은 불가피"


다만 시기와 규모의 문제일 뿐, 이탈리아로 인한 EU의 균열과 갈등은 불가피하다고 전문가 3명은 진단했다. 멜로니 대표의 오늘을 만든 건 철저한 민족주의와 반EU적 가치의 수호자라는 이미지다. 이를 부정하면 그의 지지 기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줄리그 경영자는 "EU의 개혁 의제들에 이탈리아가 순순히 찬성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베날리아 부연구원은 "지금보다는 친러시아적이고, 기후변화를 덜 생각하는 쪽으로 흐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멜로니 대표가 'EU 개혁'을 들고 나올 수도 있다. 그는 "나는 덜 중앙집권화되고, 덜 관료적이면서, 더 적으나 더 나은 일을 하는 유럽을 원한다"고 말해 현재의 EU 체제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상태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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