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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웬만한 정상들이 다 알고 있더라"···尹, '비속어' 유감 표명 미루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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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오후(현지시간) 캐나다 오타와 맥도널드경 빌딩에서 쥐스탱 트뤼도 총리와 공동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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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순방 중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이 불거진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윤 대통령은 사과나 유감 표명 대신 언론사의 ‘자막 조작’이라며 강경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도 MBC에 보도 경위를 묻는 질의서를 보내거나 항의 방문을 하는 등 윤 대통령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윤 대통령이 국회를 향해 “이 XX”라 부른 게 사실이라면 곧바로 유감 표명을 하고 상황을 조기에 정리하는 게 낫다는 의견은 여권에서도 적지 않다. 참모들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다 우연하게 방송사 카메라에 담긴 정황을 참작하면 공분이 오래갈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왜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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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뉴욕=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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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의 강력한 부인


28일 복수의 대통령실ㆍ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2일 문제의 윤 대통령의 발언이 언론사 취재 카메라에 담겼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뉴욕 현지 대통령실 참모들은 비상이 걸렸다. ‘이 XX’라는 비속어와 ‘바이든’이라는 단어의 진위가 맞느냐를 확인하는 게 급선무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바이든 미 대통령 부부가 주최한 리셉션과 마이클 블룸버그 유엔 기후변화 특사 만찬 등의 일정을 소화하면서 확인이 늦어졌다. 이때까지는 참모들도 사과 등을 포함한 다양한 대응 시나리오를 모색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성문 분석 전문가들에 의뢰를 해보니 ‘바이든’이라는 단어일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결과를 얻었고, 윤 대통령도 직접 “바이든 대통령을 말한 적 없다”고 강하게 불쾌감을 피력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각국 정상에까지 퍼진 윤 대통령 논란 보도


국내외 보도를 통해 논란이 소개되면서 각국 정상과 외교 채널에서 ‘윤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 대한 언급을 했다’는 식의 소문이 퍼진 것도 강경 기조로 선회한 계기가 됐다. 특히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정상회담차 만난 자리에서 논란과 관련한 대화가 나온 게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통화에서 “웬만한 해외 정상들은 다 알고 있더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세일즈 외교든 정상 외교든 외교에선 서로에 대한 신뢰가 밑바탕이 돼야 하는데 정상 간, 외교 채널 간 신뢰가 뒤흔들렸다”며 “마치 바이든 대통령 뒷담화를 하는 대통령이란 이미지가 덧씌워지게 됐고 늪에 빠진 느낌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이 XX' 발언에 대해선 유감 표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대통령실 내 소수 의견은 힘을 잃었다고 한다. 현재 대통령실은 보도 경위를 파악한 뒤에야 유감 표명이나 대국민 메시지가 나갈 수 있을 것이란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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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23일 오후(현지시간) 캐나다 의회 총리 집무실에서 공개환담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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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박자 느렸던 유감 표명... 이번엔?


윤 대통령은 사과나 유감 표명에 인색하거나 한 박자 느리다는 평가를 받는다. 취임 후에 사과 입장을 낸 것은 지난 8월 수도권 집중호우와 관련해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불편을 겪은 국민께 정부를 대표해 죄송한 마음”이라고 밝혔을 때가 유일하다. 정치권에선 권성동 전 원내대표에게 보낸 '내부 총질' 문자가 노출됐을 때와 비교하기도 한다. 한 여권 관계자는 “당시에도 유감 표명 요구가 컸지만, 의도가 없고 사적인 대화ㆍ발언 부분이라는 이유로 어떤 입장도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에도 유감 표명과 관련해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지난해 10월 이른바 '전두환 옹호' 발언 논란이 불거져 여론이 악화했지만 윤 대통령은 즉각적인 사과를 미루다가 이틀이 지나서야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한나절이 채 안 돼 반려견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이른바 '개사과' 파문이 일기도 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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