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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팀장 칼럼] 일타강사는 어쩌다 ‘원현미’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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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나라님도 잡지 못했던 집값을 금리가 잡은 모양이다. 9월 셋째 주 기준 전국 아파트값은 2012년 5월 한국부동산원의 시세 조사 시작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서울 아파트값은 9년 9개월만, 수도권은 10년 1개월 만의 가장 큰 하락이다. 집값이 떨어졌으니 세상은 좀 평온해졌을까. 무주택자에게 박탈감을, 1주택자에게 조바심을, 다주택자에게 세금 폭탄을 안겨줬던 집값 폭주 열차는 멈춘 듯 하지만, 세상은 또 다른 아우성으로 가득하다.

우선 거주지를 옮기거나 넓은 혹은 좁은 집으로 이사가야 해서 집을 팔아야 하는 사람들은 당장 죽을 맛이다. 수요가 얼어붙어 매매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7월 주택 매매거래량(신고일 기준)은 3만9600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반토막이 났다.

상황이 이러니 꼼수가 나온다. 주택 처분을 조건으로 새 집을 분양받은 사람이나 일시적 2주택자 등은 처지가 비슷한 사람을 찾아 교환매매에 나서고 있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부동산 매매가 업이 아닌 사람들이 굳이 알 필요 없는 거래 유형이다.

임차인의 고통은 여전히 크다. 통계상으론 전셋값이 떨어졌다지만, 실제로 전셋값이 떨어졌다고 말하는 사람은 임대인 뿐이다. 최근 신고가 대비 떨어졌다는 뜻일 뿐, 2년 만에 전셋집을 새로 구하는 임차인이라면 어디선가 목돈을 구해 보태야 한다. 월세는 계속 오른다. KB부동산의 서울 아파트 월세지수는 지난달 103.9로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15년 12월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와중에 나오는 부동산 정책은 매우 한가해 보인다. 새 정부의 첫 부동산 정책(8·16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엔 민간 중심의 270만 가구 공급 계획이 나왔지만, 당장 손에 잡히는 알맹이가 없다. 심지어 시행사들은 270만 가구 공급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지을까 했던 주택사업을 접을 판이라고 한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돈줄이 막혀서다.

6월 말부터 순차로 지방 부동산 시장의 규제(조정지역·투기과열지구)를 풀고 있지만, 규제 완화에 따른 가시적인 변화도 없다. 매매가 정상화돼야 하는데 무주택자는 금리 부담에, 위험을 감수할 일부 투자자는 각종 규제에 주택시장에서 눈길을 거뒀다. 집값 자극이 우려돼 규제 완화가 조심스럽다는 정부 시각이 무색할 정도다.

정비사업지의 숨통을 틔워줄 것이라 예상됐던 분양가 상한제는 모두 미세조정에 그쳤다. 시행사나 시공사는 원자잿값 상승에 따른 공사비 증액을 어떻게 해결할 지 여전히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일부 시공사는 이주가 완료된 재건축 아파트를 되돌아봐야 한다고까지 한다. 이주했다가 다시 입주하는 사례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는 뜻이다.

2017년 이후로 국토교통부를 이끌었던 세 명의 장관들은 모두 “부동산 정책으로 집값의 하향 안정화를 이루겠다”고 했다. 가장 오래 일한 김현미 전 장관은 진단과 처방이 모두 잘못됐다는 질타를 받으며 반 시장적인 정책을 여럿 펼쳤다.

그렇다면 현재의 원희룡 장관이 펼치는 정책은 다를까. 기존의 정책과 크게 다르다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무엇보다도 이렇다 할 정책이 없다. 잘못된 정책을 되돌리면서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하는 새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그 보폭이 작기만 하다. 부동산 정책이 별로 바뀐 것이 없다고 느끼니 시장에선 그를 ‘원현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신중함이 독이 되는 순간이다.

우리는 부동산 정책이 현실과 유리되고 정치에 이용될 때, 이렇다 할 정책 대신 주변 설명만 장황할 때 어떤 조롱이 뒤따르는지 잘 알고 있다. 지금처럼 모두가 멈춰있는 ‘얼음땡’ 분위기는 전 정부의 왜곡된 규제에 따른 것이고, 집값은 금리가 잡았으니 그 공도 원 장관 것이 아니다.

그가 장관에 임명됐을 때 이런 예상이 있었다. “확실한 실적을 위해 리스크를 감당하기보다는 상황을 관리하며 임기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이 예상대로 행동할 것인지, 적극적인 정책 전환으로 부동산 경기 경착륙 우려를 연착륙으로 이끌어내는 일타강사가 될 것인지는 원 장관의 몫이다.

연지연 기자(actres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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