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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대법 “국가가 성매매 조장…미군 ‘위안부’ 피해자에 배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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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주둔지 인근에서 ‘기지촌’ 설치·운영

“국가가 준수할 준칙 위반, 배상 책임 있어”


한겨레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한국 내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손해배상 청구소송 대법원 판결 선고 기자회견에서 원고인단과 여성단체 회원들이 대법원 판결 선고에 환호하고 있다. 이날 대법원은 “정부가 원고들에게 각 300만원~70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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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 정권 시절 국가가 미군 기지촌(미군 주둔지 주변 상업지구)을 관리하면서 미군을 상대로 한 성매매를 적극적으로 조장·정당화했다는 사법부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국가가 군사동맹, 외화벌이 수단으로 성매매를 조장했다는 원심의 판단을 유지하면서 “국가가 준수해야 할 준칙과 규범을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에 종사한 기지촌 미군 ‘위안부’ 피해자 95명이 국가를 상대로 “각 1천만원을 배상하라”며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29일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당초 피해자 120명이 소송을 냈지만 일부가 취하하면서 원고는 95명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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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주 전 서울대 교수가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한국 내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손해배상 청구소송 대법원 판결 선고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 전 교수는 90년대 의정부 보건소에서 근무했을 당시 봤던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성병검사 시행을 법정에서 증언해 여성들의 인권유린을 입증했다. 백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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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을 상대로 한 기지촌이 조성된 시기는 1950년대 이승만 정부 시절부터였다. 당시 정부는 1957년 유엔군 사령부가 서울로 이전할 시기가 되자 ‘위안부’를 일정 지역에 집결시키기로 합의하고, 유엔군 주둔지를 중심으로 미군 위안시설을 지정한 뒤 ‘위안부’에게 주 2회 성병 진단을 받게 하는 등 사실상 성매매를 조장했다.

정부는 성매매를 금지한다는 취지의 유엔 인신매매금지협약에 가입하고 1961년 성매매를 금지한다는 ‘윤락행위방지법’을 제정하기도 했지만, 미군을 상대로 한 성매매 방조는 이어졌다. 성매매 영업이 가능한 ‘특정 지역’을 설치해 ‘위안부’ 등록 및 성병 검진을 강제하고, 이를 기피하는 여성에 대해서는 보건소와 경찰이 ‘토벌’로 불리는 단속에 나서 여성들을 수용소에 강제수용했다. 미군 ‘위안부’들을 “외화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라 치켜세우는 ‘애국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후 미군 ‘위안부’ 피해자 120명은 2014년 “정부가 기지촌을 조성하고 관리·운영하면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조장했다. ‘위안부’ 등록 및 애국교육을 통해 미군 성매매를 조장했고,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장기간 기지촌 성매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의 장기소멸시효(불법행위일로부터 5년)가 지났다”는 취지로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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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한국 내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손해배상 청구소송 대법원 판결 선고 기자회견에서 원고인단과 여성단체 회원들이 대법원 판결 선고에 환호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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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심은 원고 120명 중 57명에게 5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지만, 국가 책임을 크게 제한했다. 성병 감염인을 격리수용하도록 한 1977년 8월19일 전염병 예방법 시행규칙 이전에 피해자를 강제 격리한 것만 위법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듬해 항소심 재판부는 모든 원고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해, 국가가 원고 117명 중 74명에게 700만원, 43명에게 300만원의 위자료와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국가의 기지촌 운영이 “주둔 외국군의 사기를 진작하고 외화를 획득한다는 의도 아래 성매매를 정당화·조장”했다고 보고 “이로 인해 원고들의 기본적 인권인 인격권, 넓게는 인간적 존엄성을 침해당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국가의 기지촌 조성·관리·운영 행위 및 성매매 정당화 및 조장 행위는 법을 위반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인권존중의무 등 마땅히 준수되어야 할 준칙과 규범을 위반한 것이다. 원고들은 국가의 위법행위로 인해 인격권 내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당함으로써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했다. ‘시효가 지났다’는 정부 주장에 대해서도 “국가의 행위는 과거사정리법상 인권침해사건에 해당하므로 이에 따른 국가배상청구는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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