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푸틴 바보” “삼성 TV 훔쳐갈까” 러軍 통화 속 원망·약탈 증언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예비군 동원령으로 소집된 군인들이 세바스토폴 나히모프 광장에서 송별식을 하고 있다. /타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푸틴은 바보예요. 그는 키이우를 점령하고 싶어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돌아가면 당장 그만둘 거야. 망할 군대(F**k the army).”

28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도청한 러시아 군인들의 통화 내용을 입수해 공개했다.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서부의 부차 주변 지역에서 이뤄진 수천 건의 통화 파일에는 러시아 군인들이 가족·친구들에 전화해 러시아군과 정부에 대해 불평한 내용이 녹음됐다. NYT는 “군인과 가족을 식별하기 위해 메신저와 소셜 미디어 프로필, 러시아 내 전화번호 등을 교차 검증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 키이우 인근 소도시 부차에서는 러시아군이 철수하면서 집단학살을 저지른 정황이 드러났다. NYT가 공개한 음성 파일에도 침공 몇 주 만에 혼란에 빠진 군대 내부 상황이 담겼다.

조선일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북쪽 소도시 부차에서 4일(현지시각) 주민들이 러시아군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민간인 집단 매장지를 살펴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알렉세이’라는 이름의 러시아 군인은 여자친구와 통화에서 “이 개자식들은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훈련하러 간다고만 했다”고 분개했다. 또 다른 군인 세르게이는 엄마에게 “엄마, 이 전쟁은 우리 정부가 내린 가장 어리석은 결정이에요”라고 했다.

다른 군인 일리야는 여자친구에게 “망할(F**k), 푸틴은 모든 걸 언제 끝내려는 거야, 별말 없어?”라고 물었고, 여자친구는 “푸틴은 모든 게 계획대로 잘 되고 있다고 했다”고 답했다. 그러자 일리야는 “그는 큰 실수를 했어”라고 했다.

군인들은 전략상의 실수와 심각한 물자 부족에 대해서도 불평했다. 이들은 민간인을 붙잡아 살해했다고 자백했고, 우크라이나의 민가와 회사들을 약탈한 사실을 시인했다. 전쟁의 냉혹한 현실을 전하며 러시아 언론의 보도를 반박하기도 했다.

알렉산드르는 “우린 키이우를 점령할 수 없다. 그냥 마을 몇 개 점령한 게 전부다”라고 했고, 세르게이는 “TV는 모든 것이 괜찮다며 특별 군사작전일 뿐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냥 빌어먹을(F**king) 전쟁”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의 소도시 부차에서 주민들이 적십자사의 식량 배급을 기다리고 있다. 러시아군의 민간인 무차별 학살이 자행된 부차에선 지금까지 400여 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군인들은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민가에 침입해 현금·가전·옷 등을 약탈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알렉산드르는 여자친구에게 “열쇠가 달린 금고에서 5200만 루블 정도의 현금을 발견했다”면서 “아파트 하나 알아봐라”고 자랑했다. 여자친구가 “도로 내려놓으라”고 하자, 그는 “바보냐. 지금 내 손안에 아파트 한 채가 있다”고 했다. 세르게이도 여자친구에게 “어떤 TV를 원하느냐. LG 아니면 삼성? TV 크기가 침대만 하다”고 했다.

전화를 받는 가족·친구들도 서방의 대러 제재 영향으로 물가가 오르고, 맥도날드·이케아 등 브랜드가 철수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예브게니의 아내는 “아마존도 문을 닫았고, 우리한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90년대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세르게이의 여자친구도 “인기 있는 의류 브랜드들은 모두 망했고, 완전 엉망진창이다. 빌어먹을 코카콜라도 없다”고 했다.

우크라이나군이 수복한 러시아 점령지에서는 인권 침해·전쟁 범죄 증거가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유엔 고위 관계자는 지난 2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키이우, 체르니히우, 하르키우, 수미 지역에 대한 조사 결과, 국제조사위원회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범죄가 일어났다고 결론냈다”면서 “국제 사회가 인권침해, 전쟁 범죄, 기타 잔혹행위에 대한 증거를 이번처럼 많이 수집한 경우가 없었다”고 했다.

[백수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