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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양해원의 말글 탐험] [177] 안 되?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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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 위기가 거창한 게 아니더라. 어느 날 느닷없이 아우성치는 아랫배. 궁둥이 바짝 오므리고 가까스로 화장실 들어서니…. 안 돼~. 방이 다 찼다. 집이었으면 보채기라도 하지. 도리 없이 다른 층으로. 땡볕 사막 기어가는 꼴이었을까. 마침내 저만치 웅덩이가 보이는데 기진맥진한 괄약근(括約筋), 안 돼~.

아찔한 시간을 멈춰 보자. ‘안 되’는 안 되는 걸까. ‘되다’ 대신 다른 말로 바꿔 보자. ‘(비가) 안 내려.’ 여기서 ‘내려’는 ‘내리다’의 어간(語幹) ‘내리’에 종결어미(語尾) ‘어’가 붙어 줄어든 말이다. ‘어’를 빼고 ‘내리’라고만 쓰면 문장이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말 동사 형용사는 반드시 어미가 있어야 하니까. 해서 ‘되’는 ‘내리’라고 한 꼴이요 ‘돼(←되+어)’라 해야 ‘내려’처럼 옳게 쓴 것이다.

받침 있는 어간에 비춰보면 이치가 더 또렷해진다. ‘(너를) 믿어’ 또한 어간 ‘믿’에 ‘어’가 합친 형태. 이걸 ‘너를 믿’ 하면 말이 안 됨이 분명하다. 그러니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가 아니라 ‘~ 돼’가 옳은 표기다.

‘되도’ ‘되서’ ‘되야’도 틀린다. ‘내리도/내리서/내리야’가 아니라 ‘내려도/내려서/내려야’가 옳듯이 ‘돼도/돼서/돼야’가 맞는다. ‘뵈다, 쇠다, 죄다’도 ‘내일 봬요’ ‘명절 잘 쇄’ ‘나사를 좨도’처럼 써야 한다.

그럼 ‘되고’ ‘되나’ ‘되지’는? 다 맞는 표기다. 어간 ‘되’에 어미 ‘고/나/지’가 붙은 말이기 때문에 ‘돼고/돼나/돼지’가 아니다. ‘믿고, 믿나, 믿지’로 써보면 알 수 있다. ‘어’가 들어갈 여지가 없는 것이다. 단 ‘되라’ ‘돼라’는 둘 다 쓸 수 있다. ‘되라’는 ‘조용히 하라’ 하듯이 문어체 명령형인 ‘하라체(體)’요, ‘돼라’는 ‘조용히 해라’처럼 구어체 명령형인 ‘해라체’에 해당한다.

직장(直腸) 폭발 아슬아슬 피한 그날 ‘해우소(解憂所)’ 뜻을 야무지게 깨쳤다. 세상 근심 걱정 잠시나마 다 털었으니…. 평화도 때로는 거창한 게 아니더라.

[양해원 글지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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