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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기자의 시각] 침묵 택한 이재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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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9월 12일 오후 국회 당대표실에서 비공개회의를 마친 뒤 이동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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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처음 본 건 작년 9월 14일 ‘국민의힘-경기도 예산정책협의회’였다. 당시 경기도지사이자 민주당 대선 후보군 중 한 명이었던 그는 예산정책협의회가 끝난 뒤 기자 브리핑을 자청했다. 그는 ‘기본 소득이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일각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취지의 질문에 멈칫하더니 기자를 잠시 쳐다봤다. 그는 “뒤에 스케줄이 있다”는 보좌진 만류에도 기본 소득 공약에 대해 5분여간 설명했다. 브리핑마다 단골처럼 등장하는, 다소 껄끄러운 질문을 무시하기보다는 반대편을 어떻게든 설득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기본 소득에 공감하지는 않지만, 일부 국민을 설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선을 거쳐 1년이 흐른 지금, 이재명 대표는 달라져 있었다. 이 대표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했다. 1년 전과 마찬가지로 기본 소득을 주장하며 민주당 의원들에게 박수를 받은 그는 본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 질문을 패싱했다. 이 대표는 측근인 이화영 전 열린우리당(민주당 전신) 의원의 구속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양곡관리법 등 정책 관련 질문들도 쏟아졌지만 이 대표는 말없이 지나갔다. 기자들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는 당대표 취임한 이래로 대부분 브리핑에서 노코멘트로 일관해왔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최근 측근들에게 브리핑 때 가급적 말을 하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말실수를 줄이자는 취지일 것이다. 한편으론 자신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와 관련한 기자들 질문에 내심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대선 기간을 거치면서 자신에 대한 비판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에 대한 불신도 한몫했을 수도 있다. ‘침묵이 금’이란 속담을 169석 거대 야당을 이끄는 당대표가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표는 28일 본회의에서 브리핑 없이 국회를 빠져나간 뒤 ‘민주당-제주도 예산정책협의회’를 위해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그는 이동 중 차 안에서 자기 유튜브로 지지자들과 20여 분간 소통했다. 이 대표 옆에 있던 보좌진은 “연설 좋았다는 얘기 계속 올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 실시간 대화 창엔 이 대표에 대한 응원 메시지가 줄을 이었다. 이 대표를 향한 비판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물론 기자들과의 브리핑은 의무가 아니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이 브리핑에 답을 하는 건 자기 생각과 다른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대변인들을 통해 전해지는 정제되고 다듬어진 발언에 가려진 이 대표의 진짜 생각은 뭔지 궁금해하는 이가 적지 않다. 출근길 ‘도어 스테핑(door stepping·약식 기자회견)’으로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윤석열 대통령보다 말실수를 줄일 순 있겠지만, 이 대표 진짜 생각을 알고 싶어 하는 중도·보수층을 설득하는 건 쉽지 않을 듯하다.

[주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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