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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11] 눈보라 치는 산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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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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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소설 ‘수호전(水滸傳)’의 전반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인물이 임충(林冲)이다. 80만 병력 금위군(禁衛軍)의 우두머리 교관[敎頭]이던 그는 아내가 고위 관리의 아들에게 겁탈당한 뒤 끝내 자결하는 비운을 맞이한다.

그 관리의 음모에 말렸던 임충은 유배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관리는 시골에서 마구간과 건초를 돌보던 그의 목숨까지 넘본다. 몇 명의 킬러들을 유배지로 보내 그의 숙소에 불을 질러 죽이려 한다. 마침 임충은 술을 마시러 외출한다.

돌아와 숙소가 눈에 무너진 모습을 보자 임충은 조금 떨어진 곳의 산신각(山神閣)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다. 그때 킬러들이 숙소에 불을 질렀고, 임충은 방화 뒤 산신각으로 온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울화통이 터진 임충은 그들을 모두 살해한다.

소설 제 10회 ‘임충의 눈보라 몰아치는 산신각(林敎頭風雪山神廟)’이라는 글에 나오는 내용이다. 눈 흩날리는 밤, 불타오르는 집, 번뜩이는 칼날, 파고드는 음모(陰謀), 복수와 살해 등의 요소가 긴장감 높게 펼쳐져 소설의 백미(白眉)로도 꼽힌다.

임충은 그로써 끝내 몸담고자 했던 왕법(王法)을 버리고 반란자들이 모인 양산박(梁山泊)으로 향한다. 정부의 핍박이 민간을 결국 반란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다는 중국의 사회 현상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내용이다.

중국 정치권 분위기는 늘 눈이 휘몰아치는 밤의 그 ‘산신각’을 닮는다. 권력 교체기마다 흑막에서 벌어지는 투쟁과 음모 때문이다. 엊그제는 공식 석상에 한동안 나타나지 않던 최고 권력자의 동정을 두고 쿠데타설까지 나돌기도 했다.

그에 비해 근거 없는 말들이 소란만을 거듭 부르는 우리 정치는 이전 개그 코너 ‘봉숭아 학당’과 비슷하다. 둘 중에 어느 하나가 나을까. 밀려오는 경제 불안의 커다란 위기를 각자 어떻게 헤쳐 가는지 두고보면 알 일이다.

[유광종 종로문화재단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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