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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버려진 스웨덴 공항, 전기 항공기 허브로… “기업-정부 합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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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주로 낡아 영구폐쇄 세베 공항, 항공-모빌리티 기업들 속속 입주

전기 비행기 개발 ‘하트 에어로’… 美-加 등서 수백대 선주문 받아

한국 도심항공 모빌리티 걸음마… 쓰지 않는 활주로 활용 검토할 만

동아일보

스웨덴의 전기 비행기 제작업체 ‘하트 에어로스페이스’가 스웨덴 예테보리의 세베 공항에 만들려는 ‘노던 런웨이’ 조감도. 하트 에어로스페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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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스웨덴 예테보리시 북서쪽 외곽의 세베 공항 입구. 낡고 허름한 건물은 ‘S¨ave flygplats’(세베 공항)라는 간판이 없었다면 공항이라고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였다. 여객기도 승객도 없는 공항 주변은 건물 공사가 한창이었다. 물류 회사와 에너지 회사 차량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공항 곳곳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활주로에서 헬리콥터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이륙했다.

폐쇄된 공항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1980년대에 현재 모습이 갖춰진 세베 공항의 전성기는 아일랜드 라이언에어와 헝가리 위즈에어 등이 취항한 2001년부터였다. 이후 10여 년간 예테보리의 두 번째 국제공항으로 활약했다. 스웨덴에서 런던과 뉴캐슬 등 영국 도심을 잇는 노선이 갖춰지면서 연간 1만 명 이하였던 이용객이 85만 명까지 늘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공항은 2015년 문을 닫아야 했다. 활주로가 너무 낡아 무거운 항공기의 이착륙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보수 및 확장비용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스웨덴 정부는 공항을 영구 폐쇄했다. 공항 부지의 매각 시도도 무산됐다.

현재의 세베 공항은 최첨단 모빌리티 기술의 중심지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2018년 스웨덴 투자개발업체 캐스텔럼이 공항과 인근 부동산 등을 1400억 원에 인수했다. 캐스텔럼은 이곳을 친환경을 테마로 한 첨단 물류와 미래 항공 모빌리티, 자율주행 등의 중심지로 키운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물류 및 항공업체들이 속속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세베 공항에 입주한 가장 대표적인 기업은 스웨덴의 대표 전기 비행기 제작 스타트업 ‘하트 에어로스페이스’다. 하트 에어로스페이스는 공항을 전기 비행기 테스트베드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트 에어로스페이스는 30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전기 비행기 ‘ES-30’과 19인승 전기 비행기 ‘ES-19’ 등을 개발하고 있다. 아직 상용화 단계는 아니지만 항속거리 200∼400km를 목표로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각종 실증 실험 등을 고려할 때 전기 비행기를 단거리 운송 수단으로 충분히 상용화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최근 이스라엘의 전기 항공기 스타트업 이비에이션이 다인승 순수 전기 항공기 실증에 성공했다. 이 밖에도 기존 항공기 제작사와 항공 스타트업 등 수십 개 업체가 전기 항공기 개발 주도권을 놓고 경쟁 중이다.

하트 에어로스페이스는 이미 선주문도 받은 상태다. 지난해 미국의 유나이티드항공과 메사에어그룹이 각각 ES-19 100대씩을 주문했다. 최근엔 에어캐나다와 스칸디나비아항공(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 국제 합작사) 등이 ‘ES-30’ 수십 대를 주문했다. 2028년 고객 인도가 목표다. 항공사들은 이미 전기 비행기 기술과 인프라, 인력, 장기 개발 계획 등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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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항 주변에는 현재 전기 비행기를 포함한 미래 모틸리티산업과 관련해 각종 건물 및 인프라 개발이 한창이다. 하트 에어로스페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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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에어로스페이스는 15일 세베 공항을 세계 최초의 상업용 전기 비행기 공항으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노던 런웨이(Northern Runway)’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항공 부지를 건설해 미래 모빌리티 허브로 성장시킬 계획이다. 예테보리시도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이 프로젝트를 전폭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앤더슨 포슬런드 하트 에어로스페이스 최고경영자(CEO)는 “예테보리는 전기 모빌리티 발전에 큰 야망이 있어 세베 공항에 대한 투자를 결정했다”면서 “현재 130명인 직원 수를 500명으로 늘리고 전기 항공 여행을 현실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베 공항의 변신은 국내 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도 도심항공교통(UAM) 사업 등을 추진 중이지만, 관련 인프라 구축은 걸음마 단계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다. UAM 이착륙장인 ‘버티포트’는 아직 착공은커녕 부지조차도 ‘김포공항과 서울역 인근’이라는 정도로만 정해져 있을 뿐이다.

UAM 컨소시엄 참여기업 관계자는 “K-UAM 컨소시엄이 등장하고 있지만, 김포공항 정도만 인프라 계획이 구체성을 갖고 있다”며 “앞으론 전기 비행기도 들여올 수밖에 없는데, 기업과 정부가 합작해 세베 공항처럼 미활용 활주로를 미래 모빌리티 클러스터로 만드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테보리=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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