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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불량' 20대女 의문사→"벗을 권리 있다" 대통령 퇴진 시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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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이란 대통령, 대국민 연설 "유감" 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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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진행된 '이란 히잡 의문사' 시위에서 한 여성이 항의의 표시로 가위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다. /ⓒ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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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벌어진 '히잡(머리를 가리는 스카프)' 반대 시위가 국경을 넘어 전 세계 주요 도시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여성들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시작된 시위에 사회 전 계층·민족이 합세하며 정권 퇴진 운동으로 번지자 급기야 이란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통해 유감 표명에 나섰다.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국영방송을 통한 대국민 연설에서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은 우리 모두를 슬프게 했다"며 "사건을 보고받고 유족에게 전화를 걸어 애도를 표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조만간 아미니 사건과 관련해 법의학자들의 보고서가 나올 것"이라며 철저한 진상 규명을 약속했다.


이란 여성들이 불 댕긴 시위, 세계가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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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느슨하게 썼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던 중 사망한 사건이 이번 히잡 반대 시위를 촉발했다. /ⓒAFP=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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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일째 이어지고 있는 이번 이란 국민들의 시위는 22세 여성인 아미니의 사망 사건으로 촉발했다. 아미니가 지난 13일 테헤란 도심에서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지도 순찰대(Morality Police·도덕경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던 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6일 숨졌다.

경찰은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지만, 유족들은 아미니가 평소 심장질환을 앓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여기에 "경찰이 진압봉으로 아미니의 머리를 때렸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전국에서 시위가 격화했다.

'히잡 의문사'로 촉발된 이번 시위는 대통령 퇴진 등 반정부 운동으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이란 정부는 인터넷을 차단하고,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억압하고 있지만 성난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본부를 둔 이란인권단체(IHR)에 따르면 이란 당국의 강경 진압으로 지난 16일부터 26일까지 열흘간 76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외신들을 종합하면 이번 시위 부상자는 500여명, 체포돼 구금된 사람은 2000여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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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히잡 반대 시위가 펼쳐지고 있다. /ⓒAFP=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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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내 젊은 세대, 특히 여성들이 시위에 불을 지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란의 여성 시위대들이 아미니의 죽음에 항의하며 히잡을 불태우고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전했다. 처음엔 사태를 지켜보던 남성들도 시위에 가담하고 있다. 이란 공화국 건국 이후 처음으로 테헤란 북부 고층 아파트에 거주하는 부유층과 남부 시장 상인들, 쿠르드족, 튀르크족 등 거의 모든 계층과 민족들이 뭉쳤다고 NYT는 짚었다.

유명 배우와 예술가, 스포츠 선수들이 이란 시위대에 지지를 표명하면서 관련 시위는 전 세계 80개 도시로 확산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이란 국민들도 지난 28일 서울 용산구 주한이란이슬람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여성 인권 자유", "독재자는 물러가라", "이란의 자유를 위하여" 등 구호를 연신 외쳤다.

같은 날 저녁 세네갈과 친선경기를 펼친 이란 축구 선수들도 시위에 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란 선수들은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검은색 재킷을 입고 자국 국기와 배지를 숨겼다. 이란의 축구 스타 사르다르 아즈문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히잡을 강요하는 것이 무슬림이면 나는 이단자가 될 것"이라며 "이란 여성들의 생명과 자유를 위해서라면 대표팀에서 해고돼도 상관없다"는 메시지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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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히잡 반대 시위에서 한 시위 참가자가 삭발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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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율법 강요 그만" 달라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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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역에서 대규모 히잡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시작된 이번 시위는 전 계층으로 합세하며 반정부 운동으로 번지는 분위기다.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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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반정부 시위가 폭발적으로 번진 것은 그동안 지나친 이슬람 율법 강요에 대한 불만이 누적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도 성향이던 호자토레슬람 하산 로하니 전 이란 대통령 집권 시절엔 히잡 착용 규범이 느슨했지만, 지난해 보수 성향의 율법 학자 출신인 라이시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이후 이란 당국은 여성들을 더욱 엄격하게 통제해 왔다. 라이시 대통령은 도덕경찰의 권한을 확대하는가 하면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의 사회적 권리를 박탈하는 새 법령에 서명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란 젊은 세대들이 과거와 같은 이슬람식 통제를 거부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봤다. 다른 중동국가에 비해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 정부 통제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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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위가 단순히 히잡에 대한 반대 시위가 아니라 권위적인 이슬람 정부에 대한 퇴진 운동 성격이 짙다는 해석도 나온다. 최근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 경제제재가 부활하면서 경제난이 심각해졌고, 이것이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으로 분출됐다는 풀이다.

이란 정부는 반정부 시위를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사망·부상 등 인명 피해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라이시 대통령은 아미니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누구나 의견을 표현할 수 있지만 혼란을 초래하는 폭력시위는 용납할 수 없다"며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고 재산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 엄정히 대처하겠다"며 반정부 시위대에 경고했다.

송지유 기자 cli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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