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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재용, 서울 찾은 손정의와 담판 임박…삼성은 왜 ARM에 목매나 [뉴스 쉽게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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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디그(dig)'팀이 연재하는 '뉴스 쉽게보기'는 술술 읽히는 뉴스를 지향합니다. 복잡한 이슈는 정리하고, 어려운 정보는 풀어서 쉽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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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이 지난 2019년 7월 방한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오른쪽)과 함께 만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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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 부자 중 한 명이 지난 1일 한국을 방문했어요. 약 일주일 동안 머무를 예정인데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는 거래요. 이 일본 부자는 삼성전자를 상대로 회사 하나를 매각하려 해요. 이재용 부회장도 이 회사에 관심을 보이고 있죠.

이 회사의 이름은 'ARM'이에요. 영국에 본사를 둔 반도체 회사인데요. 그런데 삼성전자만 이 회사에 눈독을 들인 게 아니에요. 미국의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 인텔도 관심을 드러냈었고, SK하이닉스와 퀄컴 같은 글로벌 기업들도 이 기업을 인수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었죠.

2년 전에는 미국의 한 기업이 약 50조원에 ARM을 인수하기로 계약까지 맺었는데요. 미국 정부와 영국 정부가 반대해서 결국 올해 초에 그 뜻을 접었어요. 지금은 그 가격이 100조원까지 거론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대체 무슨 회사이기에 삼성전자가 이렇게 많은 돈을 주고 산다는 걸까요? 그리고 인수에 성공할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 걸까요?

ARM, 어떤 회산데?


ARM이란 기업의 남다른 매력을 이해하려면 반도체 산업의 구조를 알아야 해요. 반도체의 종류는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요.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정보를 연산하고 처리하는 시스템 반도체가 있죠. 그래서 전자를 공책에, 후자를 두뇌에 비유하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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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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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어요. 반도체 설계만 하는 회사를 팹리스(Fabless), 이렇게 설계한 반도체를 위탁받아 제조하는 회사를 파운드리(Foundry)라고 부르죠. 설계와 제조를 모두 하는 회사는 종합 반도체 회사(IDM)라고 하고요.

팹리스(Fabless)

반도체를 제조하는 생산시설을 팹(Fab)이라고 하는데요. 팹리스는 팹(생산시설)이 없는 반도체 회사를 의미해요. 반도체를 설계하는 기술력은 있지만, 대규모 생산 공장을 보유하지 못한 기업들이죠. 이 회사들은 직접 사용하거나 혹은 판매할 반도체를 설계만 하고 생산은 다른 회사에 맡겨요. 애플이 대표적인데요. 애플은 맥북이나 아이패드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설계하지만 직접 만들지는 않고 위탁 생산업체에 맡기죠.

파운드리(Foundry)

파운드리는 반도체 위탁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이에요. 팹리스가 만든 반도체 회로 설계도를 보고 그대로 반도체를 만드는 거죠. 대만의 'TSMC'라는 회사가 파운드리 시장에서 독보적인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어요.

종합 반도체 회사(IDM)

종합 반도체 회사는 반도체 개발과 설계, 제조까지 자체적으로 소화하는 회사예요. 삼성전자가 대표적이죠. 삼성전자는 직접 설계한 반도체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기도 하고, 고객사가 준 반도체 회로 설계도를 보고 위탁생산하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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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회사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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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인수하고 싶어 하는 ARM은 보통 팹리스로 구분돼요. 하지만 일반적인 팹리스와는 다른데요. ARM은 팹리스들이 설계도를 만들 때 필요한 '밑그림'을 여러 장 그려놨어요. 애플 같은 팹리스들은 이 밑그림 중에 적당한 걸 가져다가 필요에 맞게 덧그리거나 색을 칠해 설계도를 완성하는 거죠.

물론 공짜는 아니에요. ARM은 이런 밑그림에 대한 특허를 여러 개 보유하고 있어요. 다른 팹리스들이 이 밑그림을 가져다 쓰려면 특허 수수료를 내야 하죠. 결국 ARM은 한 번 밑그림을 잘 그려놓기만 하면 가만히 앉아서 수수료를 받으며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거예요. 다른 팹리스들처럼 새로운 반도체를 설계할 때마다 머리를 싸맬 이유도 없고, 파운드리처럼 열심히 공장을 돌릴 필요도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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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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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M의 밑그림을 사용하면 전력을 적게 사용하면서도 좋은 성능을 낼 수 있는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고 해요. 그래서 배터리 사용 시간을 늘리는 게 중요한 모바일 기기용 반도체를 만드는 데 널리 사용되죠. 전체 스마트폰의 90% 이상, 태블릿PC의 85%가 ARM의 밑그림을 이용해 만든 반도체를 사용하고 있대요.

이렇게 좋은 회사를 왜 팔아?


이재용 부회장이 만나기로 한 일본 부자는 바로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이에요. 원래 이름은 '손 마사요시'이지만, 한국에선 보통 손정의로 부르죠. 현재 ARM의 주인은 일본 최대 정보기술(IT) 기업인 소프트뱅크 그룹인데요. 소프트뱅크 그룹은 2016년에 ARM을 약 33조원에 인수했어요.

문제는 몇 년 전부터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투자한 기업들이 연달아 적자를 기록하고 주가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소프트뱅크를 중심으로 여러 나라의 국부펀드(정부 자산으로 투자하는 펀드)와 대기업이 모여 만든 펀드인데요. 소프트뱅크는 비전펀드의 손실을 메꾸기 위해 그나마 '잘나가는' ARM을 주식 시장에 상장시켜 투자금을 회수하려 한 거예요. 그런데 요즘 전 세계 주식시장에 찬바람이 불면서 이마저도 어려워졌어요. 결국 삼성전자 같은 회사에 직접 파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아무리 ARM이 좋은 회사라 해도 가격이 너무 비싼 게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 회사의 연간 매출액은 2조원을 조금 넘는데, 인수 가격으로 최대 100조원까지 거론되고 있거든요.

삼성은 왜 산다는 거야?


삼성전자는 ARM이 만든 밑그림을 사용하기 위해 매년 수천억원에 달하는 특허 수수료를 내고 있어요. '어차피 매년 수수료를 내야 하는데, 차라리 아예 그 회사를 사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죠. 애플 같은 회사들도 ARM에 수수료를 내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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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업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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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다각화하려는 목적도 있어요.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는 독보적인 1위이지만,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선 점유율이 높지 않아요. 그런데 반도체 산업 전체를 놓고 보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비중은 30%도 채 안 되거든요. 게다가 시스템 반도체가 메모리 반도체보다 구조가 복잡하고 만들기도 어려워서 팔았을 때 남는 것도 많죠.

또 파운드리 사업을 하는 삼성전자가 업계 1위인 TSMC를 잡기 위해서도 ARM 인수가 필요할 수 있어요. ARM을 인수하면 고객사인 팹리스들의 관심을 끌 만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거든요. '우리한테 위탁 생산을 맡기면, 설계하는 데 필요한 밑그림 사용 수수료도 좀 깎아줄게'라는 식으로 흥정할 수도 있는 거고요.

그럼 바로 살 수 있는 거야?


일단 돈은 충분해요. 삼성전자가 회사 인수에 쓸 수 있는 돈이 125조원 쯤 되거든요. 물론 최대 100조원에 달하는 인수 금액을 선뜻 내놓긴 쉽지 않겠지만요. 문제는 돈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사실 2년 전에 이미 미국의 한 반도체 회사가 ARM을 인수하려고 했어요. 소프트뱅크 그룹이랑 합의하고 계약까지 맺었는데요.

이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의 다른 반도체 경쟁업체들이 반대하고 나섰어요. '공정한 경쟁'을 해칠 수도 있다는 이유인데요. '지금 다 ARM이 만든 설계도를 쓰는데, 한 회사가 ARM을 인수해서 우리 같은 경쟁업체는 못 쓰게 하거나 가격을 크게 올려 받는다고 하면 어떡하냐?'라는 거예요.

결국 미국 정부는 '한 회사가 ARM을 인수하면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며 이 거래를 허락하지 않았어요. ARM의 본사가 있는 영국 정부도 마찬가지고요. 유럽연합(EU)과 중국까지 뜻을 함께하면서 결국 올해 초 이 회사는 ARM 인수를 포기했어요.

이런 이유로 삼성전자가 다른 회사들과 함께 ARM을 인수해 지분을 조금씩 나눠 가질 거란 전망도 나와요. 앞서 ARM 인수에 관심을 드러냈던 인텔이나 SK하이닉스도 이 방법을 검토했고요.

하지만 이 방법을 쓰면 ARM 인수의 장점이 퇴색돼요. 모두의 것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잖아요. 아직 이재용 부회장은 어떤 방식으로 ARM을 인수할지 그 전략을 밝히지 않았는데요. ARM을 인수하겠다는 그의 구체적인 계획은 과연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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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영 기자 /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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