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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금리 급등’ 한국 경제, 겨울은 시작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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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정남구의 경제 톡

다가오는 ‘가계부채 폭탄’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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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금리 인상폭이 커지면서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환승을 위해 이동하는 사람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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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2020년 4월20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에 넘겨받는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값이 배럴당 -37.63달러를 기록했다. 가져갈 사람한테 돈을 주겠다는 사상 처음 있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대공황 수준의 경제위기가 닥칠 것이란 우려가 퍼졌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제로금리를 포함한 각국 중앙은행의 공격적 금리 인하, 큰 폭의 재정적자를 감수한 재정지출로 세계경제는 빠르게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돈이 어마어마하게 풀리면서 자산가격은 큰 폭으로 올랐다. 미국의 다우지수는 2020년에 7.2% 오른 데 이어 2021년에는 18.7%나 올랐다. 에스앤피 케이스-실러지수로 본 미국 집값도 2020년에 10.4%, 2021년에 18.9% 올랐다. 주가와 집값 폭등은 세계 주요국 대부분에서 일어난 일이다.

인플레이션이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2021년 6월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2%(전년동월대비)로 확인됐을 때다. 7월에는 5.0%로 뛰었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했다. 섣불리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파월 의장은 10월 상승률이 6.2%로 나오자, 12월1일 마침내 “일시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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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치는 세계 환율·금리


다우지수는 새해 벽두인 2022년 1월4일 3만6799에서 고점을 찍고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3월16일 미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연 0.00~0.25%이던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2020년 3월 이후의 제로금리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만 해도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위원들은 연말 금리를 1.9%(예측 점도표 중간값)로 예상했다.

예측은 계속 빗나가고 있다. 물가상승률은 6월 9.1%에서 8월에 8.3%로 조금 낮아졌지만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물가의 상승 추세는 이어졌다. 연준은 5월5일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린 데 이어, 이후 세차례 회의에서 계속 0.75%포인트씩 올렸다. 9월21일의 인상으로 기준금리는 3.0~3.25%가 됐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플레이션에 의미 있는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수준까지 금리를 올리는 것입니다.” 파월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개시장위원회 위원들의 올해 말 금리 전망은 4.4%로 뛰었다. 올해 남은 두차례 회의에서 1.15%포인트 더 올린다는 예고다.

미국의 금리가 빠르게 오르면서 달러 가치가 상승하고 있다. 제로금리 정책을 펴고 있는 일본은 금리를 올리지 않고 있고, 유럽중앙은행(ECB)도 7월에 0.5%포인트, 8월에 0.75%포인트 올려 합계 1.25%포인트 올린 데 머물렀다. 영국 중앙은행도 9월22일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렸지만 2.25%로 미국보다 한참 낮다. 금리차가 벌어지는 만큼 달러 가치는 로켓이 치솟듯 오르고 있다. 유로와 엔, 파운드 등 6개 주요 통화에 견줘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는 2021년 말 95.67에서 9월26일 114를 넘어섰다. 상승률은 20%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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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13년6개월 만에 1440원을 넘어섰다. 29일 오후 3시께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화면에 실시간 환율이 표시돼 있다. 통화가치 하락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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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은 자국의 물가 상황과 경기 흐름, 외환시장 안정 등을 고려해 통화정책을 조절하고 있다. 미국이 제로금리를 벗어나기 전날인 3월15일 이후 9월28일까지 달러에 견줘 각국 통화의 가치 변동폭을 보면, 일본 엔화가 22.5%(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집계) 떨어졌다. 영국 파운드가 17.6%, 유로가 12.3% 떨어졌다. 우리나라 원화는 16.3% 떨어졌고, 스웨덴 크로나가 18.1% 하락했다. 통화가치 하락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미국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은 인플레이션을 수출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금융시장이 불안정할 때 투기자본은 들소 사냥에 나선 사자와 같이, 약점을 드러내는 먹잇감을 찾는다. 영국 정부가 먼저 약점을 드러냈다. 영국 재무부는 9월23일 앞으로 5년간 450억파운드(약 70조원) 규모의 감세, 6개월간 600억파운드(약 92조7천억원) 규모의 가계·기업 지원을 뼈대로 한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이에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퍼지며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파운드화 가치가 폭락사태를 빚었다. 국제 금융시장 분석가들은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 파장이 얼마나 커질지 관심이 쏠린다.

주요국 주가는 연중 최저치를 계속 경신하고 있다. 자산가격 하락은 주택시장으로도 옮겨갈 조짐이 보인다. 영국의 부동산 종합컨설팅그룹 나이트 프랭크는 지난 6일 발간한 2분기 주택가격지표(Global House Price Index) 보고서에서 세계 56개국의 2분기까지 최근 1년간 실질 집값 상승률이 평균 1.6%로 1년 전 6.2%에서 큰 폭으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집값 실질 상승률은 -0.9%였다. 나이트 프랭크는 큰 폭으로 떨어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예상과 달랐다고 설명했다. 다만 방향이 바뀌는 조짐은 뚜렷했다. 최근 국내 통계에선 집값이 확연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은, 시장금리를 올려 저축 유인을 높이고 소비와 투자를 억제함으로써 경기 과열을 식히고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다. 각국의 통화 긴축은 교역도 위축시킨다. 미국 연준은 지난해 5.7% 성장한 미국 경제가 올해는 0.2% 성장에 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금리 인상이 너무 공격적이어서 경기가 침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골드만삭스는 9월16일 내년 미국 경제성장률을 1.5%에서 1.1%로 낮춰 전망했다. 곧 회복하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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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실물부문 충격 아직 적지만


한국도 심한 물가고를 겪고 있다. 예금은행 가계대출 평균 금리도 2020년 말 연 2.79%에서 8월 4.76%까지 뛰었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충격에 비하면 실물부문은 아직 큰 흔들림은 없다. 다만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경기 후퇴로 광공업 생산이 줄면서, 전산업생산이 7월(전월대비 -0.3%)과 8월(-0.3%) 두달 연속 나빠지는 등 경기 둔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앞날의 경기를 예고하는 선행종합지수(순환변동치)도 지난해 7월부터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8월 취업자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80만7천명 늘어나는 등 고용사정은 여전히 좋지만, 취업자수 증가폭도 조금씩 줄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가을이라 할 수 있다. 겨울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계속 내려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9월19일 2.2%로 제시했고, 신용평가회사 피치는 28일 1.9%로 제시했다. 그 정도 경기 하강은 힘들어도 견딜 수 있다. 문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난 ‘가계부채 폭탄’이다. 금리 인상폭이 커지면서 가계가 입는 타격이 경제 전반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지 많은 이들이 우려하고 있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정남구 _ 한겨레 논설위원. 경제부장, 도쿄특파원을 역임했다. <통계가 전하는 거짓말> 등의 책을 썼다. 라디오와 티브이에서 오래 경제 해설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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