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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과 감시’ 모순의 이란…히잡 시위도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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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지정학의 풍경 _ 이란의 지정학(하)

한겨레

지난 28일 독일 베를린에서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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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핵협상이 계속 교착 상태인 가운데 히잡 착용과 관련한 대규모 국내 시위에 봉착했다. 테헤란에서 지난 13일 히잡을 안 쓴 여성이 체포된 뒤 치안기관에서 숨지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을 휩쓸고 있다. 국영언론 보도만으로도, 경찰을 포함해 41명이 숨지고 1200명이 체포됐다. 이란 정부에 비판적인 국내 단체들에 따르면, 76명이 사망했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중대한 기로에 다시 처하게 됐다. 향후 대외 정책을 가를 핵협상이 어떤 방향으로 결론 날지 불투명한 가운데 내부의 균열까지 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먼저 제국을 성립시킨 이란의 지정학에서 2개의 주요 과제는 내부의 단속과 외부로의 팽창이다. 핵협상은 외부로의 팽창을 위한 대외 정책을, 시위 사태는 내부 단속과 관련된 것이다. 내부 단속과 외부 팽창은 모든 나라의 과제이기는 하나, 이란에는 특히나 절실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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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과 감시 사이


페르시아 제국을 성립시킨 페르시아족의 발상지는 카스피해 남부 연안에서 페르시아만까지 이어지는 지대로, 대부분 산악지대다. 이 산악지대의 두 주축인 남쪽의 자그로스산맥과 북쪽의 엘부르즈산맥은 평균 고도가 3000m이고, 이 두 산맥이 품은 페르시아족의 거주지도 평균 고도가 1000m가 넘는다.

이런 광대하고 높은 산악지대가 이란의 지정학을 규정해왔다. 높은 지대에 있어서 중동의 다른 지역과 달리 강수량이 적당해 농업 경제성이 높았다. 이는 페르시아 문명을 발원시키고 지속시킨 가장 중요한 배경이었다. 중동에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등이 발원했으나, 그 지속성과 안정성에서는 페르시아에 미치지 못했다. 산악지대가 외부로의 침략을 방어해준데다 안정적인 강수량은 주산업인 농업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산악 지형은 통치 시스템에서 관용과 감시라는 두가지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먼저 관용 정책이다. 산악지대가 만들어낸 고립된 지역에서 발원한 다양한 부족과 종족의 융화와 단결을 위해서는 그들의 독자성과 문화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관용 정책이 필요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이 바빌론 제국을 멸망시킨 뒤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으로 귀환시킨 유명한 사례도 그 관용적인 정책을 상징한다. 페르시아 제국의 관용 정책은 그 문화와 문명을 발전시킨 원동력이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안보 정책이었다.

현재 이란의 이슬람공화국도 선거로 대통령과 의회를 구성하고, 소수민족과 여성에게 의석을 할양하는 한편 공공기관에서 여성들이 일하고 있다. 이는 중세적인 왕정을 유지하고, 여성의 외부활동을 금하는 사우디아라비아뿐만 아니라 다른 중동국가에 비해서는 훨씬 대의성이 높고, 관용적인 정책을 펴는 것이다.

둘째, 감시 시스템이다. 페르시아 제국이 관용 정책을 펼치기는 했으나 수많은 부족과 종족, 더 나아가 수많은 이방 민족을 품은 제국으로서는 이들을 단속할 내부 기제가 필요했다. 역대 페르시아 제국의 정보망이나 감시 시스템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전의 샤 국왕 체제에서 비밀경찰인 사바크, 현재 이슬람공화국 체제에서 혁명수비대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란의 산악지대에 발원한 페르시아족은 안정적인 문명과 체제를 발판으로 외부로 확장했는데, 이 확장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 서남쪽의 메소포타미아 지역, 즉 현재의 이라크다. 이란은 산악, 사막,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 오직 이라크 국경 쪽으로만 평지로서 진출이 용이하다. 메소포타미아는 또 페르시아의 추가적인 확장을 위한 전초기지였다. 본토는 산악지대라서 보급이 어려웠기 때문에 농업생산성이 높고 사방으로 탁 트인 메소포타미아가 페르시아의 세력 발진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메소포타미아는 중동에서 가장 풍요롭고 중요한 동지중해 연안으로 가는 길목이다. 역대 페르시아 제국한테 확장과 수축은 메소포타미아 장악 여부에 달렸다.

현대에 들어서도 이라크는 이란에 사활적인 안보 대상이다. 외부 세력도 산악지대인 이란 본토를 직접 공격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서, 이라크에서 이란을 상대로 분열과 개입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19세기 영국이 이라크에서 세력을 주둔하고는 이란에 개입하거나 견제를 한 것이었다. 이슬람혁명 뒤 이라크가 이란을 상대로 침공해 8년간이나 전쟁을 벌인 것도 대표적이다. 이 전쟁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라크의 배후에 있던 반혁명전쟁이었다.

페르시아 제국 이래 메소포타미아 쪽으로의 ‘확장 디엔에이(DNA)’가 내재된 이란에 2003년 이라크전쟁은 호기였다. 미국이 사실상 패전하고 이라크를 떠나자, 주민의 다수인 시아파가 정권을 잡아 이란의 영향력이 커졌다. 시리아 내전으로 시아파의 일파인 알라위파 바샤르 아사드 정권의 이란 의존도는 더 증대했다. 레바논에서는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가 더욱 성장해 중동 지역의 분쟁에서 이란 쪽을 위한 기동타격대로 활약하고 있다. 또 예멘에서 시아파의 일파인 후티 반군이 내전을 벌이고 있어 이란을 반대하는 주축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배후를 시끄럽게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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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 경계한 트럼프, 이란 제재 나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이라크에서 미군 철수 뒤인 2015년 이란의 핵개발을 평화적 목적에만 한정하고 국제제재를 해제하는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을 체결했다. 중동 지역 안정이 이란을 적대시·배제하고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에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대이란 제재를 강화했다. 트럼프의 조처는 중동 전역으로의 이란 세력 확장은 이란에 내재된 본질이라고 보는 쪽들의 시각이 작용한 것이다. 2020년 1월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암살 사건과 11월의 이란 핵 과학자 모흐센 파흐리자데 암살 사건 등 이란에 대한 사보타주 공작과 테러 공격이 가해졌다. 이란 당국은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 핵협정 파기 이후 잦아지는 시위 등이 공작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이 1953년 이란 석유 국유화 등 민족주의 정책을 펼친 모하마드 모사데크 당시 총리 정부를 전복하는 쿠데타를 사주해, 왕정을 복귀시킨 전력이 있다.

이란에 내재한 관용과 감시, 외부 확장 사이의 갈등과 긴장 관계에서 터져나오는 것이 현재 이란에서 벌어지는 히잡 시위와 핵협상 교착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한겨레>에서 국제 분야의 글을 쓰고 있다. 신문에 글을 쓰는 도중에 <이슬람 전사의 탄생> <지정학의 포로들> 등의 책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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