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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블랙핑크·레드벨벳…K팝, '클래식 샘플링' 다시 주목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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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셧 다운', 파가니니 '라 캄파넬라'
'필 마이 리듬', 바흐 'G선상의 아리아'
1세대 K팝 아이돌부터 꾸준히 인용
공동 창작 작업으로 뜸하다 세계서 K팝 붐 불며 다시 조명
뉴시스

[서울=뉴시스] 블랙핑크. 2022.09.26. (사진= YG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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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친숙한 클래식과 힙합의 만남으로 까다로운 리스너들을 또 한 번 만족시켰다."

K팝 걸그룹 최초이자 아시아 걸그룹 처음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 200'과 영국 오피셜 앨범 차트 정상을 동시 석권한 그룹 '블랙핑크(BLACKPINK)'의 정규 2집 '본 핑크(BORN PINK)'의 타이틀곡 '셧 다운(Shut Down)'에 대한 빌보드의 평가다.

'셧 다운'은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 100'과 오피셜 싱글 차트에 각각 25위와 24위로 데뷔했다. 특히 이 곡은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인 스포티파이에서 K팝 최초 주간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셧 다운'의 인기로 K팝의 클래식음악 샘플링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셧 다운'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 만든 곡이 아니냐는 극찬을 받은 역작인 이탈리아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3악장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를 샘플링한 힙합이다.

원곡은 "피아노계의 파가니니가 되겠다"고 결심한 리스트가 투명한 울림의 피아노곡으로 편곡해 더 널리 알려졌다. 총 6곡으로 이뤄진 리스트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대연습곡' 중 제3번곡이 바로 '라 캄파넬라'다.

이처럼 어둡지만 맹렬하고, 다른 이들에게까지 영감을 주는 곡의 아우라는 블랙핑크와 YG엔터테인먼트가 지향하는 강렬한 분위기가 잘 어울린다. 특히 "간판 내리고 문 잠가" 등 블랙핑크 식 스웨그를 뽐내는 '셧 다운'이 그런 주제를 가장 내포하고 있는 만큼 '라 캄파넬라'를 선택한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원곡의 날카로운 바이올린 연주에 묵직한 비트가 잘 녹아들어간다.

'셧 다운' 작사·작곡에 참여한 YG 간판 프로듀서 테디는 샘플링 힙합 곡에 일가견이 있는 뮤지션이다. 앞서 그는 그룹 '투애니원(2NE1)'의 '날 따라 해봐요'에서 동명의 동요를, 엄정화의 '디스코(D.I.S.C.O)'에선 1970년대 영국 그룹 '델리게이션(Delegation)'의 '하트에이크 넘버 나인(Heartache #9)'을 샘플링다.

올해 이미 그룹 '레드벨벳'이 클래식 샘플링을 해 주목 받았다. 지난 3월 공개한 미니앨범 '더 리브 페스티벌 2022 - 필 마이 리듬'의 타이틀곡 '필 마이 리듬'이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샘플링한 것이다. 심지어 이 앨범이 발매된 당일은 바흐의 생일이었다. 엑소, 샤이니 등과 작업한 스웨덴 스톡홀름 출신의 작곡가 안드레아스 오버그(Andreas Oberg) 등이 작곡에 참여했다. 레드벨벳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와 꾸준히 호흡을 맞춰온 서울시향은 지난 7월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버전의 '필 마이 리듬' 음원을 공개하기도 했다.

또 서울시향과 SM은 지난 2020년 SM 스테이션(STATION)을 통해 공개한 샤이니 종현의 '하루의 끝(End of a day)' 오케스트라 버전 전주에 드뷔시의 '달빛'을 샘플링했다.

글로벌 수퍼 그룹 '방탄소년단'(BTS)도 클래식을 인용했다.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의 '라이(Lie)'가 파야의 오페라 '허무한 인생' 중 '스페인 무곡' 일부를 샘플링했다. 그룹 '여자친구'의 '여름비'는 슈만의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 op.48-1'을 샘플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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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레드벨벳 '필 마이 리듬'. 2022.04.21. (에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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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K팝 아이돌 원형을 만든 SM 소속 그룹들은 꾸준히 클래식 음악을 샘플링해왔다. K팝 그룹의 시작인 1세대 아이돌 'H.O.T.' 3집에 실린 곡으로 SM 사가(社歌)가 된 '빛'(Hope) 중간엔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의 제4악장 '환희의 송가' 멜로디가 인용됐다. H.O.T는 4집 타이틀곡 '아이 야(I Yah)!' 도입부에도 모차르트 교향곡 25번을 사용했다. 1.5세대 그룹 '신화'의 'T.O.P'는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중 정경, 2세대 그룹 '동방신기'의 '트라이앵글'은 모차르트 교향곡 40번을 샘플링했다.

우리나라 대중음악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아이돌 노래 밖으로 범주를 넓히면, 샘플링한 곡들은 훨씬 더 많다.

이현우 '헤어진 다음날'은 비발디 '사계' 중 '겨울', 양파 '사랑…그게 뭔데'는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 아이비 '유혹의 소나타'는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씨야의 '사랑의 인사'는 엘가의 '사랑의 인사' 등을 각각 샘플링해 크게 히트했다.

저작권은 저작자 사후 70년까지 보호된다. 모차르트, 베토벤 등 클래식 음악가의 곡들은 대부분 저작물 권리가 소멸됐다. 특정 연주자가 녹음한 곡을 그대로 인용할 경우 저작인접권을 적용 받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이로 인해 한 때 클래식 샘플링을 한 곡들이 난무해 너무 쉽게 대중성을 확보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여러 작곡가가 공동 창작하거나 각각 만든 멜로디를 이어 붙이는 K팝이 우리 대중음악계 중심이 되면서 한동안 샘플링이 주가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한류를 이끄는 K팝이 전 세계를 상대로 하고 한국어를 넘어서는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한 고민이 더해지면서 영어 가사와 함께 샘플링도 고민의 대상이 됐다. 그래서 서구 사람들에게 익숙한 클래식 샘플링을 택하는 경우의 수가 많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랙핑크의 '셧 다운'이 그런 흐름 중 하나인 곡으로, 신곡이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형태로 다가갈 수 있었다.

또 SM처럼 레이블 'SM 클래식스'를 만들어 K팝의 고급화를 꾀한 것도 이러한 흐름을 부추기고 있다. SM은 클래식 성지로 통하는 미국 뉴욕의 링컨센터의 초청을 받고 서울시향과 협업하는 등 꾸준히 클래식에 대한 관심을 가져왔다.

대중음악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클래식업계 관계자는 "K팝은 모든 장르를 흡수할 수 있는 유연성이 특징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악을 끌어안더니 최근엔 클래식에 손을 뻗고 있다"면서 "특히 클래식 샘플링은 국내 청자뿐만 아니라 전 세계 청자에게서도 대중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고급화를 꾀할 수 있는 영리한 전략"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블랙핑크 '셧 다운'과 레드벨벳 '필 마이 리듬'은 영리하게 샘플링을 잘 사용했지만, 자칫 잘못하면 원곡의 아우라에 짓눌릴 여지가 있다. 조심해서 사용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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