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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사우디에 ‘감산’ 뒤통수 맞은 미국, 사우디 전략 수정 여론 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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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 또는 현 수준 유지 원한 바이든 정부에 ‘뒤통수’

미국 내 유가 상승 압박에 우크라전 전략에도 영향

“사우디는 가혹한 대우를 받아야” 국내 압박 거세져

경향신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가 11월부터 하루 200만 배럴씩 감산을 결정한 5일(현지시간) 미국 시민이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의 한 주유소에서 자동차에 기름을 넣고 있다. 알렉산드리아|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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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미국의 중동 지역 최대 동맹국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에 파열음이 들려오고 있다. 사우디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가 오는 11월부터 원유 생산을 하루 200만 배럴씩 줄이기로 결정하면서다. 증산 또는 현재 수준 유지를 위한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노력과는 정반대 결과였다. 이번 감산 결정은 전보다 못한 미국·사우디 관계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인식되면서 미국의 사우디 정책에 변화가 예상된다.

OPEC+의 감산 결정에 대해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선 동맹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았다는 격앙된 반응이 터져나왔다. 백악관은 5일(현지시간)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장 공동명의 성명을 통해 “근시안적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CNN방송 등에 따르면 백악관이 재무부에 회람한 성명서 초안에는 ‘총체적 재앙’ ‘총체적 대응’ 같은 표현까지 들어 있었다.

바이든 정부는 OPEC+ 회의를 앞두고 증산 또는 최소한 현 수준 유지를 위해 사우디를 위시한 중동 산유국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로비를 해 왔다. 특히 사우디의 인권 탄압 전력과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책임을 눈감아줬다는 비판을 무릎쓰고 지난 7월 사우디를 방문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나 주먹 인사를 나눴던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미국은 체면을 구긴 데서 그치지 않고 정치적·경제적으로 만만찮은 파장에 직면하게 됐다. 중간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미국 내 휘발유 가격 상승을 다시 걱정하게 됐다. 석윳값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더욱 자극할 수도 있다. 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에겐 악재 중의 악재다. 유가를 낮춤으로써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전비 충당을 차단하겠다는 전략도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겨울철이 다가오는 가운데 원윳값이 급등할 경우 유럽 국가들의 에너지난이 가중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서방의 대오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

사우디는 이번 감산 결정이 세계 경기 침체에 따른 석유 소비 감소로 유가가 하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미국의 시각은 다르다. 사우디가 감산 결정의 정치적 의미와 파장을 모를 리 없다는 것이다. 장피에르 카린 백악관 대변인은 “OPEC+는 오늘 발표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보조를 맞추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라고 말했다. 크리스 머피 민주당 상원의원은 “사우디 사람들은 막상 일이 닥치면 미국 대신 러시아를 선택한다”라면서 이번 감산 조치를 “미국과 사우디 동맹에 대한 총체적인 재평가”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 칸나 민주당 의원은 강대국인 미국이 사우디에 굽실거릴 필요가 없다면서 “사우디는 가혹한 대우를 받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톰 말리노스키, 션 캐스틴 민주당 하원의원은 사우디의 결정이 미국에 대한 ‘적대적 행위’에 해당한다면서 사우디에 주둔한 약 3000명의 미군 병력을 철수시키는 법안을 발의했다. 상원에 이미 발의돼 있는 ‘석유생산수출카르텔금지법’(NOPEC)에도 관심이 쏠린다. OPEC+ 산유국 정부나 기업들의 가격 담합 행위를 미국 반독점 법률에 적용되지 않도록 한 면책 조항을 없애는 내용이다. 이 법은 상원 법사위원회를 통과한 상태인데 최종 통과될 경우 미 법무부가 OPEC+ 산유국들을 상대로 미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설리번 보좌관과 디스 위원장은 성명에서 “에너지 가격에 대한 OPEC의 통제력을 줄이기 위한 추가 수단과 방법에 관해 의회에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이 대목을 두고 백악관이 NOPEC을 지지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일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 법에 대한 사우디와 중동 주유 산유국들의 반대가 워낙 심한 데다 실효성에 대한 의문,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아 실제 제정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전망이 많다.

사우디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 나갈지는 쉽지 않은 과제다. 빈살만 왕세자가 부상한 이후 부쩍 중국·러시아와 가까워지고 있는 사우디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중동 지역 최대 동맹국인 사우디와의 관계를 급속하게 냉각시킬 경우 중동 문제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더욱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상황인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안보 제공과 사우디의 안정적 석유 공급이라는 두 나라 사이의 오랜 교환 공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김재중 기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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