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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논란의 ‘윤석열차’… 전문가들 “표절 아니다”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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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윤석열차 표절 의혹 제기하며 ‘본질’ 전환 나서

만화 전문가들 “표절 아닌 클리셰… 작품의 본질 몰이해”

“카툰은 풍자의 예술인데 정치 소재 문제 삼는 건 모순”

문화예술단체 비판 성명… 자유외친 尹 대통령 비꼬기도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이 학생이 2019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를 비판하는 정책 카툰을 표절한 것.”

이른바 신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으로 불리는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이 전날(5일) 대법원 등에 대한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한 말이다. 이날 회의에서 조수진 의원, 정점식 의원 등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도 최근 윤 대통령을 풍자한 만화인 ‘윤석열차’에 대한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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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5일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윤석열차’ 관련 질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윤석열차’는 지난 7∼8월 진행된 제23회 한국만화영상진흥원(진흥원)이 최근 개최한 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고등부 카툰 부분에서 금상을 받았다. 그러나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정치적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했다며 진흥원에 ‘엄중 경고’ 조치를 내렸고 일부 여당 의원들은 학생의 작품에 대한 표절 의혹을 제기하며 지원 사격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해당 작품은 표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들은 해당 작품과 타 작품간의 유사점은 ‘클리셰’(문학·예술에 흔히 쓰이는 소재나 흐름)로 봐야 하며, 만화와 예술에 대한 몰이해에서 빚어진 주장이라는 등의 견해를 내놨다.

◆영국 일간지 만평 표절? 전문가 “클리셰에 가깝다”

6일 세계일보의 취재에 따르면 만화업계에 있는 전문가들은 모두 해당 작품이 표절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학생이 표절했다고 하는 작품과 비교했을 때 유사성이 높지 않고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표현법도 그동안 정치 풍자 만평에서 자주 사용되어 오던 ‘클리셰’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다른 만평을 표절한 게 아니라, 영국 아동용 애니메이션인 ‘토마스와 친구들’ 속 기차를 패러디했다고 보는게 타당하다는 설명이다.

해당 학생이 따라 했다고 의심하는 작품은 2019년 영국의 일간지 더 선에 실린 만평으로 당시 보리스 존슨 총리가 브렉시트를 강행하기 위해 조기 총선을 추진하자 이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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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일간지 더 선(The Sun)에 올라온 브렉시트 풍자 일러스트. 더 선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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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만화가인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두 작품에 대해 “그나마 비슷한 부분은 기차에 사람의 얼굴을 그려 넣은 것인데 이는 만화에서 자주 사용되던 표현법으로 일종의 클리셰라고 볼 수 있다”며 “저작권법상으로도 기차에 얼굴을 그려 넣는 것은 단순한 아이디어에 불과한 것이라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윤석열차’와 더 선에 실린 만평은 컨셉 자체가 다르고 하나하나 뜯어봐도 비슷한 부분이 거의 없다는 의견을 냈다. 예컨대 윤석열차에 나오는 기차는 철도에 쌓인 눈을 치우기 위해 열차 앞부분에 날을 세우는 기차로 영국에는 없는 기종이고 배관기관 위의 형식과 위치가 다르고 바퀴 부분도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작품의 콘셉트도 영국의 만평은 존슨 총리가 내각이 당황해할 정도로 브렉시트와 관련해 폭주 한다는 의미이고, 학생의 작품은 김건희 여사와 검사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고경일 상명대 디지털만화영상학과 교수는 “구글에 검색하면 토마스 기차를 패러디한 정치 풍자 카툰을 쉽게 볼 수 있다”며 “토마스 기차는 인간의 표정과 묘하게 닮아 불쾌감을 주는 효과가 있어 그동안 정치 패러디에 많이 사용된 작품이고, 윤석열차는 이를 국내 이야기에 빗댄 것이기 때문에 영국의 작가 것을 봤든, 프랑스 작가 것을 봤든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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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서 검색한 토마스 기차를 패러디한 만화들. 구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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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의원들의 이런 주장은 표절과 패러디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표절은 원작이 무엇인지 모르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패러디나 오마주는 오히려 원작을 드러내놓고 차용함으로써 원작에 대한 존경이나 재미를 더하는 장치란 얘기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표절은 원작이 무엇인지 모르게 속이려고 하는 것이지만 패러디는 보는 순간 원작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느껴지게 하는 것”이라며 “토마스와 친구들을 모티브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해서 무조건 표절이 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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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 금상 수상작인 ‘윤석열차’.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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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성 떨어지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수상했다?

일부 여당 측 인사들은 해당 작품이 선정된 배경으로 진흥원과 심사위원들의 정치적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심사위원들은 심사위원 풀에서 무작위로 선정되기 때문에 진흥원이 입맛에 맞게 고를 수 없고 ‘윤석열차’에 대해서도 작품성이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고경일 교수는 “나도 심사위원 풀에 들어가 있지만 이번에는 선정되지 않았고 무작위로 돌리기 때문에 누가 될지 예측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김헌식 평론가는 “(윤석열차는) 풍자적인 요소도 잘 갖췄고 기본기도 탄탄하다”며 “성인도 그렇게 그리기 쉽지 않다. 상을 받을만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문화계는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며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카툰의 사전적 의미는 ‘주로 정치적인 내용을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한 컷짜리 만화’인데 정치적인 내용이 들어갔다고 문제 삼는 것이야말로 모순이라는 것이다.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 저질렀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언급하기도 한다.

전국시사만화협회는 전날 ‘윤석열차’ 외압 논란에 대한 성명서를 내며 규탄이나 우려 대신 5열7행 구조로 ‘자유!’라는 단어를 33회에 걸쳐 적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UN 총회나 광복절 경축식 연설에서 ‘자유’를 반복해서 외친 것을 겨냥해, 말과 행동이 다른 정부를 비판한 셈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에서 13분 길이의 경축사를 읽는 동안 ‘자유’를 33회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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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사만화협회의 ‘윤석열차 외압 논란에 대한 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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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문화연대)도 전날 공동성명을 내고 “문화예술인들은 ‘윤석열차’ 검열 사건이 국가범죄 블랙리스트가 재발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문체부에 엄중 경고한다. 문체부는 보도 설명자료와 카드뉴스까지 내며 ‘윤석열차’ 검열 정당화를 멈추고 피해 학생에게 사과하라”고 비판했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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