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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휘청이는 공급망⑨] "탈중국 딜레마…자원 재활용ㆍ대체소재 개발로 극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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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中의존도 불구 수입처 다변화 난항
정제와 제련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 등 절실
“안정성 더욱 중요해질 것…우리 기술 필요”


이투데이

왼쪽부터 도원빈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 조성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광물자원연구본부장, 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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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와 배터리의 핵심 원자재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수입처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최근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반도체산업지원법 제정 등이 이어지자 ‘탈중국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탈중국화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라고 설명했다. 반도체·배터리 산업에 필수적인 광물들의 중국 내 매장량에 더해 정·제련 기술, 비용 문제, 환경 문제 등 자원 확보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사안이 많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광물 확보, 정·제련 기술 등에 많은 투자를 해온 중국의 광물 공급 능력을 배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 풍부한 매장량, 해외 광산 투자도= 중국의 광물 생산량은 압도적이다. 최근 사용량이 많은 일부 광물만 보더라도 중국은 희토류, 불화수소, 텅스텐, 갈륨 등 반도체에 쓰이는 광물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다. 리튬, 흑연 등 이차전지·배터리 생산에 사용되는 광물에서도 주요 생산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중국이 다양한 광물을 생산해낼 수 있는 것은 자원 채굴 단계에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조성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광물자원연구본부장은 “배터리에 쓰이는 니켈, 리튬, 코발트, 망간 등은 순도가 높아야 하는데, 중요한 게 원료(광물)”라며 “가령 리튬은 전 세계적으로 칠레,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부근에 많다. 중국은 이곳에 매장된 고품위 제품에 대해 장기공급계약을 맺고, 광산 투자에 나서는 등 자원 채굴 단계에도 많이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광물 정·제련 등 가공 단계 장악= 자원 채굴에 이어 중간 가공 단계도 문제다. 채굴된 광물은 산업에 활용하기 위한 형태로 가공하기 위해 정·제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정·제련 과정을 중국이 꽉 틀어쥐고 있다.

조 본부장은 “호주에서 생산하는 리튬이 배터리 양극재 회사에 공급되려면 탄산리튬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제련공장이 중국에 있다”며 “호주에서 광물을 생산해도 결국 중국을 거쳐서 나와야 우리가 탄산리튬을 공급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리나 철 등 일부 광물은 국내 기업인 포스코에서도 중간 단계 가공을 거칠 수 있지만 다른 광물들은 이야기가 다르다. 중국은 니켈, 코발트 등 다양한 광물의 정·제련을 맡을 수 있는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다.

◇생산 제반 비용 저렴해 경쟁 못 해= 생산 비용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자원 생산을 위한 부대비용과 인건비가 지속해서 상승하며 일부 자원은 자체 생산하는 경우 오히려 비용적인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학회장은 “(일부 자원은) 사업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서 필요한 자원이라도 우리나라에서 생산하기에는 사업성이 부족할 수 있다”며 “중국은 아직 우리나라보다 인건비도 저렴하고 환경규제도 덜하기 때문에 같은 것을 한국에서 하려면 비용 문제, 안전 문제 등으로 투자에 나서는 회사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국내에서는 단가 때문에 생산하지 않는 자원이 있고 유럽이나 미국도 부가가치가 낮은 자원을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에 의존하는 것”이라며 “밸류체인이 원활하게 돌아간다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각국이 기술과 자원으로 패권 전쟁을 하면서 공급망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러 공급처를 두고 관리하는 것이 비용적, 행정적으로 기업에 불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원빈 한국무역협회 국제통상연구원은 “기업 입장에서 원자재를 직접 생산할 수 있더라도 생산에 드는 비용이 수입하는 비용보다 비싸다면 직접 생산할 이유가 없다”면서 “여러 개의 공급처에서 소량 구매하는 것보다 하나의 공급처에서 대량 구매를 하는 것이 가격적으로도, 행정적으로도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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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처 선택권 거의 없어”= 이처럼 중국은 압도적인 자원 보유량, 생산량은 물론 생산에 드는 비용과 위험까지 부담하는 거의 유일한 국가로 전 세계 자원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다. 원자재 시장조사업체 벤츠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중국의 광물 채굴 비중은 전 세계의 20%에 그치지만 광물 정·제련 과정에서 90%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한다. 배터리·반도체 산업에 쓰이는 원자재 공급망에서 중국은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이외의 국가에서 자원을 확보하는 ‘공급처 다변화’는 쉽지 않은 문제다. 다른 국가에서 자원을 확보해도 정·제련 단계에서 중국을 거쳐야 한다면 탈중국에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박 회장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면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찾아 원자재를 공급받아야 하는데, 중국처럼 생산 능력을 갖춘 국가가 드물다”며 “원자재 수입처 다변화의 선택권이 별로 없는 셈”이라고 진단했다.

◇대체 소재 개발, 정·제련 기술 투자 확대를= 전문가들은 수입처 다변화보다 원자재 대체 소재 개발, 폐배터리 재활용 등 산업 전반의 기술력 강화와 정부의 지원을 현실적인 대책으로 제시했다.

도 연구원은 “영역과 용도에 따라 범용성이 높은 원자재의 대체 소재를 개발하는 것이 현실적인 옵션이 될 수 있다”며 “원자재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등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이 핵심 원자재 공급망을 장악한 배경에는 정·제련 기술력 영향이 큰 만큼 한국도 투자를 확대해 저품위 광물이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시추 기술 개발도 중요한 과제로 지목됐다.

조 본부장은 “땅속에 웬만한 광물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품위가 낮기 때문”이라며 “구리의 경우 이전엔 광물에 3~4% 포함된 수준이면 개발을 했는데 지금은 0.5%에서도 개발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폐유전에 남아 있는 염수를 통해 리튬을 뽑아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기차 시장이 성장하며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도 중요도가 커지고 있다. 폐배터리를 분해한 후 핵심 광물을 추출해 새로운 배터리 제작에 활용할 수 있는 만큼 이와 관련된 기술력 강화도 자원 관리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조 본부장은 “배터리를 사용하고 난 후에도 광물은 사라지지 않는다”며 “폐배터리를 다시 분쇄해서 리튬, 니켈, 코발트를 추출할 수 있으므로 향후 시장이 성장할 폐배터리 재활용을 통해 고순도 물질을 뽑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급망 안정 이슈 계속 커질 것= 공급망 안정의 중요성은 앞으로도 계속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우리나라는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와 올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갈등, 최근 이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으로 인한 통상 이슈 등으로 피해를 보기도 했다. 향후 미국과 중국의 배타적인 경제 정책이 강해질 수 있는 만큼 공급망 안정성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도 연구원은 “미국 등 외국의 자국중심주의적인 정책이 대세가 된다면 공급망 안정성은 훨씬 중요하게 부각될 것”이라며 “우리나라도 공급망 안정성이 중요하다는 가치 판단이 전제된다면 기업이 공급처를 다변화할 인센티브를 부여하거나 신소재 연구개발(R&D), 원자재 사용량 감축, 대체 소재 개발 등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 부회장은 “자국에서 모든 것을 생산하는 경제 시스템이면 좋겠지만 어떤 국가도 그렇게 하기는 어려운 만큼 상대방과 대등하게 거래할 수 있는 상품이나 기술이 있어야 한다”며 “메모리반도체와 같이 세계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한국 만의 품목을 더욱 늘리는 방향으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투데이/이민재 기자 (2mj@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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