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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르포 대한민국] 중국도 3년 후 인력 3000만명 부족, 우리에겐 도약의 기회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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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문득 식당에서 대기 중인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 궁금해졌다. 금리 인상과 경기 둔화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소비는 여전히 굳건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10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월 대비 2.6포인트 감소한 88.8로 나타났다. 소비 둔화에도 불구하고 식당에 긴 줄을 만들게 하는 원인은 인력 부족이다. 과거에 비해 적은 인력으로 식당을 유지하다보니 회전 속도는 낮아지고 대기 줄은 길어지고 있다. 인력 부족으로 영업 시간을 단축하는 현상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인력 확보에 따른 스트레스로 업장 규모를 스스로 축소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조선일보

그래픽=송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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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뿐만 아니라 모든 곳에서 인력 부족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얼마 전 만났던 대형 병원 관계자는 “여기는 인력 부족 문제가 없죠?”라는 질문에 대해 “사람이 없어 난리죠”라고 답했다. 만성적인 간호 인력 부족을 넘어서 의사 역시 부족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공의 근무 시간이 80시간으로 제한된 제도적 변화와 더불어 다른 한편으로는 전문의 과정을 중도에 포기하는 인력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던 수련 기간을 포기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찾거나, 개업을 통한 실리를 찾는 것이 대세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조선업은 오랜 불황 끝에 주문이 증가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급기야 조선 업체 간에 인력을 둘러싼 법적 다툼도 벌어지고 있다. 반도체 부문의 경우 정부가 나서고 있지만 효과는 미심쩍다. 농업 분야에서는 이제 수박과 참외의 재배 면적이 감소하고 있다. 땅에 엎드려서 일을 할 인력을 더 이상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영향이 본격화되면서 인력 부족은 이제 업종과 시기를 가리지 않고 상시적 현상이 되고 있다. 한정된 인력을 둘러싼 쟁탈전이 격화되면서 임금은 상승하고 있다. 전국의 용접사, 배관사, 제관사 등은 모두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에 몰려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기능공이라면 평택 삼성전자 현장에서 바싹 일하면 월 1000만원을 훌쩍 넘는 급여를 챙겨갈 수 있다. 특별한 기술이나 경험이 없는 중년 여성들도 현장에서 보조 업무를 수행하면서 400만원 넘는 급여를 받는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러다 보니 창원, 울산, 여수, 거제 등 전통적인 제조업 지역에서는 필수 인력 확보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되고 있다.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우수하고 저렴한 인력은 이제 소멸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력 부족은 전 세계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기업 90% 이상이 노동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미국 전역에 10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있지만 실업자는 600만명에 불과하면서 인력 부족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 역시 제조업, 도·소매업, 교육 및 의료 서비스 부문의 인력 부족 현상이 심하며, 이에 따라 2021년 하반기를 기준으로 400만명 이상의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미국 기업이 추가적으로 부담한 비용은 2조5000억달러(약 3345조원)에 이르고 있다.

고질적으로 높은 실업률을 기록하던 유럽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국가별로 일부 차이는 있지만 전체 일자리의 3% 이상이 노동력 부족으로 비어있는 상태이다. EU의 실업률은 지난 7월 6%를 기록했는데 이는 2001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중국의 경우도 제조업 인력 부족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판매원, 식당 종업원, 택배 직원 및 가사 도우미 등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호주 인구보다 많은 약 3000만명의 제조업 근로자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이 존재하고 있는 아세안 국가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 지역 역시 지난 20년 사이에 20세 미만 인구의 비율이 42%에서 33%로 축소되고 있다. 고령화 속도 역시 예상보다 빨라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7%에서 14%로 증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한민국이 18년이었던 것과 비교해 보면 베트남 18년, 태국 20년 등 우리와 비슷하게 급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여전히 폭발적인 인구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아프리카를 제외한다면 이제 노동력 부족은 특정 국가와 지역의 문제가 아닌 세계 공통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과 고령화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인력난은 어쩌면 기회가 될 수 있다. 모두가 겪고 있는 문제는 경쟁에서 출발선을 같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노동력 부족에 대한 해답은 더 많은 이민과 적극적인 자동화와 로봇의 활용 등인데 우리의 경우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화와 산업용 로봇 밀도를 기록하고 있으며, 전체 인구의 5% 수준의 외국인 비율을 기록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생각보다 대응을 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력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 올해 10월 미국에서 발간된 ‘티타늄 경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고용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미국 기업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러한 관점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직원들에게 숙련도 향상을 통한 대폭적인 급여 인상 및 승진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기업의 이익을 우리사주 제도를 통해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한정된 인력을 산업 현장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돈을 주고 부리는 존재가 아닌 성장을 위한 파트너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인구 증가를 위한 무의미한 노력에서 탈피해 노동력 부족의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가속화해야 한다. 여성, 장애인 및 외국인 등이 차별받지 않고 일할 수 있으며, 능력에 맞는 대우와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체제의 마련이야말로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는 핵심일 것이다.

[최준영·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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