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30 (토)

[정동칼럼] 노동자의 자유와 국민의 자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공공부문 총파업이 줄줄이 예고된 가운데 정부와 여당은 볼모론과 불법 규정, 침소봉대와 강경 대응의 논리를 반복하고 있다. ‘나 때 대통령 기자회견에서는 기자들이 넥타이 매고 정자세로 경청했다’는 말만큼이나 식상하다. 식상한 대응은 적절한 대응이 궁할 때 나오는 행동이다.

경향신문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번 총파업을 ‘국가 경제를 볼모로 한 이기적 행동’으로 규정하면서 이로 인해 국가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것처럼 과장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한걸음 더 나아가 ‘사실상 정권 퇴진 운동’이라며 확대해 이번 총파업을 정치적 파업으로 규정했다. 과연 우리나라 경제가 일부 공공부문 총파업으로 위기에 처할 수준인가. 물론 굳이 왜 이 어려운 시기에 파업을 하는가라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이 논리조차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위기 해결의 주체인 정부가 올바로 대응하지 못한 책임을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잘하고 있는데 노동계가 발목을 잡는다는 논리로 엮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파업으로 규정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에게 자충수가 될 수 있다. 막상 노동계는 노동 문제를 둘러싼 경제적 파업으로 규정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부가 정치적 파업으로 키워 정부와 노동계의 전면 대립으로 몰아가는 형국이다. 정부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약한 상태에서 이 대립은 노동계 전반으로 파업을 확대시킬 뿐 아니라 여타 시민 사회 단체와 노동계의 연대를 더욱 촉진해 실제 정권 퇴진을 목표로 하는 정치적 파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 지난 23일에 공공운수노조 소속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지부와 서울대병원분회가 파업을 시작했고, 24일에는 화물연대본부가 파업에 돌입했으며, 25일에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조와 학교 비정규직 노조가 파업을 단행했다. 이어 30일에는 서울교통공사 노조의 파업과 다음달 2일에는 전국철도노조 파업이 예고돼 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공공부문 파업의 주요 요구는 노동시간·임금체계 개악 저지,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법 2·3조 개정, 안전운임제의 지속 및 확대 적용, 인력 감축 철회와 민영화 중단 등이다.

특히 ‘노란봉투법’과 안전운임제, 인력 감축 문제는 노동자들의 파업권과 생계 및 안전 문제를 좌우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노란봉투법’이 제정되지 못함으로써 손배·가압류를 통해 노동자들의 파업권이 심각하게 제약되고 있으며, 안전운임제가 연말에 폐지됨으로써 화물운송 종사자들이 다시금 과로·과적·과속에 방치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5일 오봉역 사고 등 주로 부족한 인력에 따른 안전 사고로 철도 노동자는 올해 4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정부와 공사는 인력 확충 요구를 무시하고 수천명에 달하는 인력 감축 계획을 내놓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시간과 임금체계 등도 오래된 고질적인 문제다. 이러한 구체적 삶의 요구들이 어떻게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정치적 파업으로 비약하는가. 거듭되는 실정에 지지율이 추락하자 스스로 두려워하던 단어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것인가.

공공부문의 사용자는 정부다. 공익성이 강한 부문이므로 정부가 국민을 대신해 운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를 빌미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요구를 묵살해서는 안 된다. 하물며 노동하는 국민 전체에 미치는 요구일 경우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유감스럽게도 정부와 여당은 노동계 파업에 적대적 정치 논리를 적용해 노동자를 적으로 규정하며 대립을 부추기고 있다. 파업 노조들이 민주노총 산하 노조여서 그런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색깔론이나 진영론으로 국민을 양분해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노동조합은 이념과 직종 및 종교 등에 따라 다양하게 조직되어 있고, 이들은 동등한 자격으로 정부 및 사용자와 협상한다. 정부도 마찬가지여서 어떤 이념적 기반을 가진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노동조합에 대해 차별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다.

노동계에 적대적인 인물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할 때 이미 충분히 드러났지만, 윤석열 정부의 노동 정책이 불안하다. 오히려 정부가 국가 경제를 볼모로 잡고 노동계를 탄압할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 노동자를 적대시하는 강경 정책을 지속한다면, 이번 총파업은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파업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다. 노동자도 국민이며 게다가 국민의 다수가 노동자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될 수 있겠는가.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백래시의 소음에서 ‘반 걸음’ 여성들의 이야기 공간
▶ ‘눈에 띄는 경제’와 함께 경제 상식을 레벨 업 해보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