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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박선영 교수 “가상화폐 열풍? 비정상 코인 거래 너무 많았어…투자자 보호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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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원래는 상당히 내성적인데, 일과 관련해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용기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더라고요. 사람들이 꼭 알아주면 좋겠다 싶은 정보가 있으면 먼저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요.”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상자산 투자자를 법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앞장서서 주장해온 학계 인사다. 지난해 4월 박 교수는 전 세계 가상화폐 거래의 절반(시가총액 기준)이 비트코인이고 전체 거래량의 30%를 차지하지만, 한국의 경우 비트코인 비율이 6%에 불과하고 나머지 94%는 알트코인(비트코인 이외의 코인)이라는 사실을 밝혀 화제를 모았다. 당시 조선일보는 박 교수의 분석 결과를 1면 기사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후 박 교수는 공청회·토론회·인터뷰 등 목소리를 낼 기회가 생길 때마다 알트코인 중심인 우리나라 가상화폐 시장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정부 차원의 투자자 보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경제학자의 행보로선 이례적이라는 시선도 있었다. 11월 22일 오후 서울 중구 동국대 사회과학관에서 만난 박 교수는 ‘가상화폐 투자자의 잔다르크’가 된 사연에 대해 “사기꾼 목소리만 들리는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현실이 안타까워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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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11월 22일 서울 중구 동국대 사회과학관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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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생인 박 교수는 지난 2004년 서울대 경제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학부 시절 그의 지도교수였다. 미국으로 건너간 박 교수는 예일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11년 한국으로 돌아와 29세의 젊은 나이에 카이스트(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가상자산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도 카이스트에 합류하면서다.

“공대에서 금융경제학을 가르치는 사람이어서 그랬는지 가상자산 관련 분석 요청이 종종 들어왔습니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량이 하루에 20조원씩 나오고 언론 기사도 ‘비트코인 가격 얼마까지 간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던 시절이죠. 하지만 데이터를 뽑아보면 비정상적인 코인들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거래되는 현실이 보였어요.”

박 교수는 경제학자의 눈에 뻔히 보이는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힘없고 선량한 투자자가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안타까움이 그를 행동하게 만들었다. 박 교수는 “작년에만 국회·정부 등 공개적인 자리에 30회 이상 나가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 입법의 필요성을 전투적으로 제안했다”며 “솔직히 왜 그렇게 열심히 뛰었는지 모르겠으나 후회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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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교수가 2021년 11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공청회에 참석해 가상자산 법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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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루나 가격 폭락, 글로벌 3대 거래소 FTX 파산 등 최근 가상화폐 시장에서 잇달아 터진 대형 악재는 박 교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특히 FTX 파산 사태를 계기로 국회는 가상화폐 투자자 보호 법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국회 정무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이달 10일 낸 법안과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이 지난달 낸 법안이 새로 만들어지는 가상화폐 투자자 보호법의 근간이 될 전망이다.

FTX는 고객 돈 10조원을 유용해 자기 발행 코인인 FTT의 가치를 자전거래로 부풀리고, 이를 담보로 레버리지를 일으켜 회사 덩치를 키우다가 발각돼 파국을 맞이했다. FTX 창업자인 샘 뱅크먼프리드(SBF)가 미국 내에서 매사추세츠공대(MIT) 물리학과를 졸업한 천재 기업가로 주목받으며 블랙록·세쿼이아캐피털·소프트뱅크 등 유명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시장이 받은 충격은 더 컸다.

FTX 사태와 관련해 박 교수는 “뒷수습을 위해 투입된 구조조정 전문가 존 레이 3세가 ‘이 기업은 지배구조가 완전히 부재한 상태고, 회계 정보도 믿을 만한 게 하나도 없다’고 폭로했다. 부채는 66조원에 달하고, 채권자는 10만명에 육박한다”며 “FTX에 크게 배신당한 기관 투자자가 돌아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에서 FTX와 가상자산 시장은 신뢰를 회복하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한국도 불공정 거래 차단과 투자자 보호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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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전반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며 파산한 FTX와 창업자인 샘 뱅크먼프리드. /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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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 과감히 발을 딛고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알리려는 박 교수의 성격은 가상자산 외 분야에서도 잘 드러난다. 최근 국내에서 강원도 레고랜드발(發) 자금시장 경색 사태가 발생하자 박 교수는 정부의 강도 높은 대응을 촉구했다. 현재 거시경제 여건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으로 얽힌 건설사와 금융사의 연쇄 붕괴를 초래할 정도로 불확실한 만큼 정책 당국은 국내 모든 부동산 PF를 전수조사한다는 각오로 시장 점검에 나서야 한다는 게 박 교수의 주장이다.

“카이스트에서 7년 동안 일하고 2018년 9월 자본시장연구원으로 둥지를 옮겨 연기금(국민연금)과 부동산 PF 관련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자본시장연구원과 동국대 사이에는 청와대 근무 이력도 있죠. 제가 청와대에 있을 때 코로나19 사태가 터져 금융시장 안정화 대책이 시리즈로 쫙 나왔거든요. 가상화폐와 자금시장 경색 이슈에 나름 의견을 낼 수 있는 건 이런 다양한 경험이 깔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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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11월 22일 서울 중구 동국대 사회과학관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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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의 예일대 유학 시절 전공은 ‘뱅킹’이었다. 당초 계량경제학을 공부할 생각으로 떠난 미국이었지만,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에 따른 금융위기를 눈앞에서 경험한 뒤로 전공을 바꿨다. 한국에서 다소 낯선 뱅킹은 쉽게 말해 금융기관의 행동 특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뱅킹 분야에서 유명한 학자로는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있다. 버냉키 전 의장은 1983년 발표한 논문에서 1930년대 뱅크런(bank-run·현금 대량 인출 사태)이 은행 파산을 초래해 대공황으로 이어졌을 뿐 아니라, 해당 뱅크런이 위기를 더 키우고 장기화하는 결정적 요인이었음을 증명했다. 이 학문적 성과로 버냉키 전 의장은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박 교수는 자신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금융기관의 행동을 연구하게 됐고 이후 학교·정부·연구기관 등에서 다양한 시각을 확보한 만큼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유익한 정보와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는 학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예민한 이슈에 관한 의견을 공개적으로 내는 일이 많다 보니 반대쪽에서 비합리적으로 비난하는 경우가 있다”며 “그럴 때일수록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세종=전준범 기자(bbeo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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