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59)
국경 없는 손실과 피해, 그리고 책임 (하)
기후변화 대응 위해 COP27서 다시 머리 맞댄 국제사회
"온실가스 줄이자" 선언 넘어 구체화된 논의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 마련하기론 뜻 모았으나…
'누가, 얼마나' 그 기준은 어떻게 될까
점점 커지는 국제사회의 압박과 기대…
우리는 얼마나 준비되어있나
우리측 수석 대표였던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세계 각국, 기구, 기관의 대표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한 장관은 게라시모스 토마스 EU 조세총국장과는 양국의 탄소가격 제도에 관한 논의를 나눴습니다. 11월 24일 기준, EU의 탄소 가격은 톤당 78.27유로입니다. 한국(KAU22)의 경우 톤당 1만 5,850원으로, 유럽의 약 7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는 곧, 유럽의 CBAM(탄소국경조정제도)이 우리의 대(對) EU 수출에 미칠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에서 저렴한 탄소 가격에 제품을 생산했던 우리 기업은 EU에 그 가격 차이만큼의 값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양측은 이 자리에서 CBAM의 도입 단계별 상세한 정보공유 체계를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COP27에 대한민국 수석 대표로 참석한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세계 각국, 기구의 대표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우리가 한 약속은 또 있습니다. 미국, 일본 독일, 호주, 캐나다 등 주요 국가들과 함께 탄소중립 정부 구상(Net-Zero Government Initiative)에 참여한 것이죠. 정부를 운영하는 데에 있어서도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것인데, 이를 위해 정부는 정부 운영 부문에서의 온실가스 감축 및 에너지 절약 이행 로드맵을 마련, 추진할 계획입니다.
지난주 연재에서도 말씀드렸듯, 이번 총회의 키워드는 바로 '손실과 피해(Loss & Damage)'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키워드는 재생에너지로의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었고요. 하지만, COP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주무부처인 환경부의 COP27 주요 결과 설명에선 재생에너지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재생에너지의 실종'은 존 케리 특사와 한 장관의 면담 결과에서 먼저 나타났습니다. 케리 특사가 언급한 ① 재생에너지 확대, ② 석탄 감축, ③ 메탄 감축 가운데 한 장관이 화답한 것은 ②번과 ③번뿐이었죠. 물론, 이는 케리 특사와의 회담 소식을 담은 보도자료에서만 '실종'된 것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COP27을 통해 나온 〈샤름 엘 셰이크 이행계획〉의 주요 내용 가운데 국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부분들을 추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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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손실과 피해'라는 단어는 분명 공식 어젠다가 됐습니다만, 이러한 손실과 피해와 함께 오는 표현인 '책임과 배보상'은 철저히 배제됐습니다. 선진국들이 강력히 반대한 결과입니다. 대신 대응과 지원이라는 표현이 등장했고요. '그게 무슨 차이라고 예민하게 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누가 얼마나 지원하느냐'를 놓고도 첨예한 갈등이 예상되는 만큼, '책임과 배보상'이라는 표현은 선진국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자칫 개도국 대 선진국의 법적 다툼으로 비화할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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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누적 배출량은 5,165.92MtC로 세계 17위였습니다. 이미, 과거 교토의정서 체제서부터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부여됐던 Annex B 국가 가운데 일부 나라보다도 많습니다. 한국은 교토 체제 하에선 아무런 감축 의무가 없는 개도국의 입장이었습니다. 선진국들 입장에선 '왜 한국이 아직도 아무 의무가 없는 개도국으로 분류되는가' 따져보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대륙별로도 살펴보면, 아시아의 배출량은 어느덧 전체 배출량의 28%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유럽보다는 여전히 적지만, 북미의 누적 배출량을 넘어선 겁니다. '한국은 아직 개발도상국이다', '선진국 반열에 오르려면 경제발전이 더 필요해 온실가스 배출이 불가피하다'와 같은 설명은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통할 수 없는 상황인 셈이죠.
집계 기준이 달라진다 하더라도 한국의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여전히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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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출 상품이자 다배출 업종인 철강 산업을 살펴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철강 산업의 2020년 순 수출량(수출량에서 수입량을 뺀 값)은 16.1Mt으로, 러시아(26.4Mt), 일본(24.8Mt)에 이어 세계 3위입니다. 그 누구보다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철강 산업의 현실은 어떤지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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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만 문제일까요. 또 다른 주력 수출 상품, 자동차를 살펴봐도 우리의 안일함이 드러납니다. EU는 지난 2020년, 자동차 제조사들의 평균 온실가스 배출 기준을 95g/km로 대폭 강화했습니다. 각 제조사가 판매한 자동차의 평균 탄소 배출량이 km당 95g을 넘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당시 여러 금융기관과 컨설팅 업체들은 “한국 제조사에 거액의 과징금이 부과될 것”이라는 우려를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우려와 다르게, 국내 제조사들은 그 즉시 기준을 충족했습니다. '턱걸이로 달성했다'고 비아냥대기엔 전년 대비 괄목할 만큼의 감축 성과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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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현실이 이러한데, 과연 국제사회의 감축 압박에 '한국은 제조업 비중이 높아 다량의 온실가스 배출이 불가피하다'고 항변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COP27 이후 걱정 하나가 더해졌습니다. 국제사회의 감축 압박과 더불어 앞으론 지원 압박도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정부 시절, 한국서 열린 P4G 정상회의 당시 우리나라는 ODA 확대를 공언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을 강화하고, 이를 통한 '글로벌 리더십'을 함양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한 통계를 살펴보는 순간 이러한 공언은 불안을 키웠습니다. 바로, 녹색기후기금(GCF) 납부율 통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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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축 압박의 경우, 어느 정도 방어하는 데에 시간적 여유가 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의 집계부터 발표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감축 약속을 지켰는지 확인하려면 적어도 2년 안팎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죠. 그런데, 지원 압박은 다릅니다. 약속을 지켰는지, 어겼는지. 다시 말해, 돈을 보냈는지 안 보냈는지는 너무도 금방 확인이 가능합니다. “20○○년까지 ODA를 ◇◇◇% 늘리겠다”며 선언하는 것보다, 차라리 이미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 더 시급한 상황인 것이죠. 차라리, 이같은 선언 없이 '선 지원, 후 공개'를 하는 편이 한국의 기후 리더십 측면에선 더 좋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COP27 기간, 존 케리 특사를 비롯해 해외 각국에서 '한국 역할론'을 이야기했습니다만, 이같은 목소리는 이미 곳곳에서 나온 바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에너지 정책을 설계한 존 번 미국 델라웨어 대학 바이든스쿨 석좌교수는 JTBC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존 번 미국 델라웨어 대학 바이든스쿨 석좌교수가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한국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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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엔, 한국은 이미 선례를 보여준 바 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좋은 선례죠. 바로, 한국이 녹색성장에 나섰던 때 말입니다. 당시 많은 신흥 개발도상국들은 한국의 정책을 지지하고 응원했습니다. 중남미, 동남아, 아프리카 등의 지역에선 한국 사례에 대한 상당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리더십은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행동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아시다시피 모든 대륙에 걸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가 함께 노력하는 가운데, 유럽과 미국이 이들 지역에 선례로써 갖는 리더십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있어 한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JTBC와 인터뷰를 진행한 크리스 니코이 유엔 WFP(세계식량계획) 서아프리카 본부장 또한 한국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크리스 니코이 유엔 WFP 서아프리카 본부장이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한국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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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27은 나름의 성과와 함께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새 정부의 어깨 위엔 무거운 짐이 더해졌습니다. 대내적으로는 적극적인 감축 과정에서의 반발에 맞서야 하고, 대외적으로는 우리의 감축량이 적든, 많든 나름의 방어 논리를 세워야 하죠. 지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기 침체로 모두가 고통받는 상황에서 해외 지원을 위한 기금에 대한 반대에 맞서야 하고, 대외적으론 그러한 우리의 결정과 행동을 적극 홍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022년이 저물어 갑니다.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 이행에 있어 이젠 선언의 시간을 지나 행동의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곧, 국제사회 차원의 검증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진실의 방'에 들어갔을 때, 한국이 노력한 결과가 뚜렷하기를, 한국이 처한 상황에 대한 주도면밀한 분석을 마쳤기를, 이를 통해 국제사회로부터 '진정한 기후 리더십' 국가로 인정받기를 바라보며 이번 주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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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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