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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이중근 칼럼] 여당, 침묵은 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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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다시 인용해보자. 요즘 우리로선 너무나 낯설고, 또 부럽기도 해서다. 바로 미국 백악관과 행정부 고위 관리들의 ‘미친 트럼프 막아내기’ 이야기다. 첫번째 주인공은 명령에 죽고사는 군인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다. 트럼프는 2020년 5월 백악관 앞 라파예트 광장을 메운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시위대를 거론하며 “총으로 그들을 쏴버릴 수 없나. 다리든 어디든 그냥 쏘라”고 밀리에게 명령했다. 지하벙커로 피신할 만큼 트럼프가 위협을 느낀 터라, 단순히 화풀이식 명령으로 치부할 상황이 아니었다. 밀리는 발포를 거부했다. 또 그는 대선을 즈음해서는 흥분한 트럼프가 우발적으로 전쟁을 벌일 것을 염려해 중국에 두 차례 비밀전화를 했다. “우리는 중국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며 안심시켰다. 트럼프가 대선 결과에 불복할 기미를 보였을 때에는 평화적 이양을 위해 막후 협의를 진행했다. 트럼프와 함께 퇴임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여기에 참여했다(<분열자: 백악관의 트럼프>).

경향신문

이중근 논설주간


앞서 2017년 4월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트럼프의 망동을 저지한다.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민간인을 향해 화학무기를 쓰자 트럼프는 매티스에게 “쳐들어가서, 아사드를 죽이자”고 했다. 매티스는 “즉시 작전에 나서겠다”며 전화를 끊은 뒤 참모에게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신중히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이 분야의 백미는 역시 ‘문서 빼돌리기’다. 백악관 경제참모인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파기하려는 트럼프를 막기 위해 트럼프의 집무실 책상 위에 있는 문서를 훔쳐 숨겨버렸다. 콘은 훗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문서를 훔쳤다”고 술회했다(<공포: 백악관의 트럼프>).

그렇다면 밀리나 매티스 등은 대쪽 같은 소신파이기만 할까. 아니다. 그들 역시 자신의 자리를 아끼고, 트럼프와의 관계를 쉽게 끊지 못한 사람들이다. 밀리는 트럼프가 시위대를 해산하고 백악관 맞은편 교회로 가 성경을 든 채 기도하는 정치 쇼를 벌일 때 군복 차림으로 동행해 ‘병풍’ 역할을 했다. 군의 정치 중립을 훼손했다고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트럼프가 미군을 정치화한다고 비난하는 내용으로 사직서를 써놓고도 제출하지 않았다. 매티스 역시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가 나오자 사실과 다르다며 트럼프를 두둔했다. 그들은 단지 민주주의 가치를 실천한 것이다. 공직자로서 헌법정신을 지킴으로써 미국이라는 공동체를 지켜냈다.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의 저자 밥 우드워드는 “트럼프의 국가 안보 파괴를 막기 위해 백악관 참모들이 서류를 훔치는 일은 반복적으로 이뤄졌다”고 전했다. 이런 장면들이 미국을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트럼프의 참모들이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것은 그에 대한 불충이 될지언정, 미국을 위해서는 충성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MBC에 대한 대응은 명백한 퇴행이자 자충수다(동의하지 못하겠으면, 민주당 정권이 보수언론을 건드렸을 때 보수당과 언론이 어떻게 대응했을지를 상상해보라). 그런데 여권 내에서 이를 막고 나선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유승민 전 의원 홀로 광야에서 외치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실과 여당의 이런 침묵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중단에 이어 출입기자실을 대통령 집무실과 다른 건물로 옮기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를 버리고 용산으로 갈 때 윤 대통령 자신이 “언론과 소통하기 위해 같은 건물에 두겠다”고 한 약속을 깨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일을 막아서는 사람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예스맨 일색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추진할 때, 환경부 공무원들은 침묵했다. 사석에서는 반대한다고 하면서도 누구 하나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무섭게 돌아섰다.

독일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는 ‘그들이 처음 왔을 때’라는 시에서 나치에 침묵한 대가를 신랄하게 지적했다. “나치가 공산당원을 잡아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회민주당원을 가뒀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당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에게 갔을 때, 또 유태인에게 갔을 때도 나는 침묵했다. (…) 그들이 나에게 왔을 때, 나를 위해 말해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여당의 침묵은 머지않아 독이 되어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들의 침묵을 지켜보던 시민들이 목소리를 분출할 때는 눌려 있었던 만큼 더 크게 튀어오를 것이다.

이중근 논설주간 harub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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