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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공안 밤새 경계… 휴대폰 검열… 中 당국 ‘백지시위’ 원천봉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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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도시 추가시위 대부분 무산

美 백악관 “평화 시위 권리 지지”

외국공관 밀집지역에도 경찰차 투입

상하이선 도로 양편 대형 장벽 설치도

英 수낵 총리, BBC기자 구타사건 비판

전세계 주요 도시로 연대시위 이어져

국경지역 北 무역 간부들도 촉각 세워

톈안먼 주역 “33년만에 독재종식 요구”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28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중국 내 시위에 대한 질문을 받고 “백악관은 평화적으로 시위할 권리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커비 조정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 내 시위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은 중국 내에서 진행되는 일에 대해서 보고받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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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중국 베이징 칭화대에서 학생들이 백지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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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정책에 대한 항의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퇴진을 요구하는 등 정치적 저항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보이자 수도 베이징을 비롯해 상하이(上海) 등 주요 도시에 대규모 공안, 무장경찰부대(무경·武警) 투입을 통한 조기 진압을 시도하고 있다.

29일 외신 등에 따르면 28일 심야 베이징 도심 곳곳에는 공안과 무경이 배치돼 시위발생 가능성을 원천 봉쇄했다. 시위진압, 국경경비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무경은 사실상 군사조직이다. 27일 정부에 항의하는 백지시위가 발생했던 외국공관 밀집지역 량마차오루(亮馬橋路) 일대에도 경찰차 20여대가 배치돼 주변 행인을 감시했으며 시위대 집결을 막기 위해 조명을 모두 소등했다.

또 28일 오후 6시 베이징 시내 쓰퉁차오(四通橋)로 모여 우루무치 화재 사과, 오프라인 수업 재개, 강제 유전자증폭(PCR) 검사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자는 글이 올라왔지만 경찰의 삼엄한 경비로 무산됐다. 베이징시 주요 공원, 백화점, 지하철역 및 대학교 인근에는 2~3대 경찰차가 배치돼 밤새 경계를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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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서도 공안 당국이 후속 시위를 막기 위해 우루무치중루 거리를 중심으로 도로 양편에 대형 장벽을 설치하고 고강도 단속을 벌여 시위는 소강상태다. 상하이 주요 도로에서 청년 등을 대상으로 스마트폰에 트위터나 유튜브를 비롯해 인터넷 우회 접속 프로그램인 가상사설망(VPN)이 설치됐는지 검사했다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기도 했다.

◆국제사회 “평화시위 보장을”

국제사회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이례적인 중국의 시위 사태를 주목하고 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제러미 로런스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중국 당국이 국제인권법과 기준에 따라 시위에 대응할 것을 촉구한다”면서 “누구도 자신의 의견을 평화적으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구금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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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상하이 한 거리에서 공안들이 한 시위자를 체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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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28일 도이체벨레와 인터뷰에서 “(독일보다) 훨씬 엄격하고 오늘날까지 지속한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조처가 중국인들에게 얼마나 무거운 짐일지 짐작만 할 수 있다”며 “중국 당국이 사상과 집회의 자유를 존중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제임스 클리버리 영국 외무부 장관도 “중국 정부는 국민이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이 옳다”고 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이날 취임 후 첫 주요 외교정책 연설에서 영국 BBC방송 기자가 백지시위 취재 중 공안에게 붙잡혀 수 시간 구타당한 사건을 거론했다. 그는 “우리는 중국이 우리의 가치와 이익에 체계적인 도전을 제기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며 “중국이 더 강력한 권위주의로 나아가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국민의 항의에 귀 기울이는 대신 BBC 기자를 폭행하는 등 단속 강화를 택했다”고 비판했다.

중국 외교부 자오리젠(趙立堅)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시위 참가자를 탄압하지 말라는 국제사회 목소리에 대해 “중국은 법치 국가이며 중국 국민이 향유하는 각 항의 합법적 권리와 자유는 법에 의해 충분히 보장된다”며 “어떤 권리나 자유든 법률의 틀 안에서 행사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BBC 기자 폭행에 대한 수낵 총리의 문제 제기에 “흑백전도이자 난폭한 내정간섭”이라고 반박했다.

◆지구촌 연대시위… 북한 주민도 관심

중국에서 시작된 백지시위는 전 세계 주요 도시로 확산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27일과 28일 대만 자유광장, 영국 런던 중국대사관 앞, 미국 예일대, 캐나다 토론토 중국영사관 앞, 일본 신주쿠(新宿)역 등에서 중국계 현지인을 포함한 시민이 모여 우루무치 화재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 등을 들고 연대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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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난징에서 벌어진 시위 현장.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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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톈안먼 시위 주역인 저우펑쒀(周鋒鎖)는 WP와 인터뷰에서 “중국공산당과 시진핑 독재의 종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중국에서 이렇게 광범위하게 울려 퍼진 적은 지난 33년간 한 번도 없었다”며 “이번 시위는 점점 권위주의화하는 중국 통치방식에 대한 응답”이라고 평가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댄 북한의 무역 간부들도 백지시위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29일 자유아시아방송(RFA)이 현지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한 소식통은 “조선(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 당국이 (시진핑)주석 퇴진까지 요구하는 시위 참가자들에 대해 어떻게 나올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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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역에서 '제로 코로나' 반대시위가 일어나는 가운데 지난 27일 쓰촨성 성도 청두에서 벌어진 시위에서는 시민들이 연설 및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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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백지시위 확산이 세계 2위 경제 대국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를 불러일으켜 글로벌 증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가 28일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미국 S&P 500 지수와 나스닥 종합지수는 27일 각각 1.5%, 1.6% 하락했다. 이는 미국의 11·8 중간선거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외세개입설·금전매수설 등 확산… 中당국, 시위 차단 선전전 본격화

중국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등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에 항의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 시위 사태에 대해 외세개입설, 금전매수설이 퍼지고 있어 저항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당국의 선전전, 여론전이 본격화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중국공산당 기관지나 관영매체는 이번 시위 사태에 대해 일절 보도하지 않고 있으며 웨이보나 위챗(중국의 모바일 메신저) 등에도 시위 상황과 직접 관련 있는 내용은 대부분 삭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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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중국 베이징에서 코로나19 봉쇄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백지'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시민들은 정부에 항의하는 의미를 담은 ‘백지’를 들고 28일 새벽까지 시위를 이어갔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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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보 등에서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9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밝힌 “외부 세력의 ‘색깔혁명’ 책동을 막아야 한다”는 문구와 함께 ‘색깔혁명을 경계해야 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색깔혁명은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처럼 서방 주도로 권위주의 정권을 무너뜨린 민주주의 개혁 운동을 말한다.

특히 많이 공유된 ‘색깔혁명 세력 만연: 미리 모의한 소동에서 외부 세력이 드러났다’는 글에서는 “많은 지역에서 미국식 자유 구호, 홍콩이나 대만 말투의 참가자, 서방 선교사들이 뒤섞여 있다는 얘기가 있다”며 “이들이 소란을 피우는 방법은 전형적인 색깔혁명 수법”이라고 외세 개입을 암시했다.

이어 ‘시위에 참가한 이들이 인터넷에서 ‘500위안(약 9만5000원)을 주고 시위에서 팻말 드는 역할을 제안했다’, ‘중국 간체자(약자)가 아니라 대만 번체자(정자) 필획으로 글씨를 쓰는 이들이 있었다’, ‘홍콩·대만식 발음이 뒤섞여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의견 표현과 대중을 모아 소란을 피우는 것은 엄연히 다르며, 때로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좋은 사람인 척 대열에 섞여 소란을 피우는 경우가 있다”고 외부 세력이 개입했음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관변 논객 후시진(胡錫進) 전 환구시보 편집장도 시위 사태를 ‘최근 일부 민감한 사건’으로 지칭한 뒤 외세 개입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열 저항 의미 ‘아무런 글 없는 백지’ 들고 집회

중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 항의 시위는 참가자들이 아무런 글이 쓰여 있지 않은 흰색 종이를 들고나와 백지시위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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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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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백지시위의 유래는 소련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타임스는 베이징 시위 참가자 발언을 인용해 백지시위가 소련 반체제 인사의 백지 전단 배포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소련의 한 반체제 인사가 광장에서 전단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혔는데 이 전단은 아무런 글씨가 쓰여 있지 않은 백지였다. 이 반체제 인사는 백지를 배포한 이유에 대해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말이 필요 없다”고 답했다.

백지시위는 2020년 홍콩의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 때도 등장했다. 당국이 정치적 구호에 경고하자 많은 사람이 아무런 글도 쓰지 않고, 말도 하지 않은 채 백지만 들었다. 경찰이 처벌할 법적 근거를 찾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에서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도 침공 항의 시위에 백지가 사용됐다.

흰색 종이는 이제 중국 민중저항의 상징으로 부상했다. 대만 등의 매체에서는 백지혁명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트위터 등에선 해시태그로 ‘A4혁명(A4Revolution)’이 달리기 시작했다.

베이징·워싱턴=이귀전·박영준 특파원, 유태영·나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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