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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오세훈의 서울시, 시민 참여 ‘마을미디어’마저 없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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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서울 지역 마을미디어 연대체인 서울 마을미디어네트워크가 지난 11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의 마을미디어 활성화 사업 종료 방침을 규탄하고 있다. 서울 마을미디어네트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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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2013년부터 추진해 온 마을미디어 활성화 사업이 오세훈 시장 체제를 맞아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서울시는 지난 10년간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지원할 만큼 지원해 왔다는 태도인 반면, 마을미디어 단체에서는 서울시가 사업 성과에 대한 공정한 평가나 당사자들과의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 종료를 밀어붙이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29일 <한겨레>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서울시는 최근 마을미디어 활성화 사업에 대한 신규 예산 지원 중단 방침을 사실상 확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종수 서울시 홍보담당관은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아직 (서울시의회의) 내년도 예산안 심의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내부적으로 마을미디어 사업은 끝내려고 한다”며 “3년짜리 기존 민간 위탁 기간이 내년 4월9일까지인데, 그때까지만 사업을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마을미디어 사업은 2020년부터 민간 위탁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위탁 계약이 끝나는 2023년 4월까지의 예산만 편성했다는 뜻이다. 서울시가 제출한 2023년도 예산안이 다음달 서울시의회까지 통과하면, 마을미디어 사업도 내년 4월 이후 막을 내리게 된다.

서울시가 꼽은 마을미디어 사업 종료 사유는 ‘서울시의 역할이 끝났다’는 점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 등 두 가지다. 김 담당관은 “2013년 사업 개시 이후 10년간 총 92억원의 예산 지원이 이뤄졌는데, 그사이 여러 자치구에서 관련 조례가 제정되고 이와 비슷한 사업을 하는 센터가 설립되기도 했다”며 “그 정도 했으면 서울시로서는 (마을미디어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을 충분히 하지 않았나 하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사실 지금의 마을미디어 사업은 라디오나 신문이라든지 이런 것 위주로 진행되고 있는데, 지금은 유튜브와 개인 에스엔에스(SNS)를 중심으로 미디어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며 “시에서는 그런 것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설명과 달리 마을미디어 관련 단체는 서울시가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마을미디어 사업의 배경과 역사적 맥락, 지난 10년의 성과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검토 없이 섣불리 종료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한다.

이들 단체의 설명을 들으면, 서울시의 마을미디어 사업은 박원순 전 시장 재임기인 2012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2013년 정식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라디오와 신문, 잡지 등 미디어를 매개로 주민 간 소통 활성화를 꾀하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등을 통해 미디어 소외 계층에 대한 격차를 좁힌다는 게 마을미디어 사업의 주된 목표였다. 지난 10년의 성과는 적지 않았다. 2012년 5곳에 그쳤던 마을미디어는 지난 7월 70곳(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등록 단체 기준)까지 늘었다. 이 중 50여곳이 서울시 지원을 받고 있다.

이에 서울 지역 마을미디어 단체의 연대체인 서울 마을미디어네트워크 등은 서울시가 내린 사업 종료 결정의 이면에는 ‘박원순 시장 흔적지우기’와 ‘시민 참여 영역 폐쇄’라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양승렬 서울 마을미디어네트워크 공동운영위원장(동작에프엠 방송국장)은 “서울시는 10년 동안 90억원 넘게 지원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는데, 한해 40조원이 넘는 서울시 예산 규모에 비춰볼 때 10년간 25개 자치구에 90억여원을 투입했다는 게 ‘충분히 지원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마을미디어 사업과 함께 마을공동체, 도시재생 등 ‘박원순표 사업’으로 꼽히는 것들이 예외 없이 예산 삭감이나 사업 종료 수순을 밟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서울시의 이번 결정은 전임 시장이 만든 시민 참여 영역의 폐쇄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유튜브 활성화 등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마을미디어 지원 중단 배경으로 연결짓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론이 나온다. 신유정 노원에프엠 대표는 “서울시의 논리는 유튜브 등 1인 미디어에 익숙해진 이들이 많아진 만큼 마을미디어가 필요 없다는 주장인데, 마을미디어는 노인과 장애인 등 미디어 접근이 어려운 분들과 함께 미디어를 직접 제작해보면서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유튜브 등을 마을미디어 사업 종료의 이유로 꼽는다는 것은 이 사업의 기본 취지에 대한 이해마저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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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 마을미디어인 <줌인네거리>에서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온라인 생방송을 제작하고 있다. 줌인네거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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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미디어 활동가들은 서울시가 마을미디어 사업에 관한 일방적·폐쇄적 의사 결정을 고집할 게 아니라, 이제라도 당사자들과 대화와 토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영리 공공미디어센터인 미디액트의 장은경 사무국장은 “문화진흥의 3단계를 ‘인프라 구축 단계’, ‘콘텐츠 완성도·활용도 향상 단계’, ‘수혜자 개발 및 플랫폼 발굴 단계’로 나눈다면 서울시의 마을미디어 지원은 아직은 인프라 구축 단계에 그친다”며 “디지털 격차 해소 등 현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공공적 가치를 실제 현장에서 실현하고 있는 만큼, 마을미디어에 대한 공적 지원은 이제부터 가장 집약적으로 이뤄져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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