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75년 프랑스 식민지’ 튀니지, 월드컵서 설욕... 16강 실패에도 “역사적 승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별 리그 최종전서 프랑스에 1대0 승리

덴마크 꺾은 호주에 밀려 조 3위

조선일보

1일(한국 시각) 열린 카타르 월드컵 D조 3차전 프랑스와 튀니지의 경기에서 와흐비 하즈리(튀니지)의 결승골이 터진 뒤 튀니지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카르타고의 독수리’ 튀니지가 프랑스에 식민 지배를 받았던 설움을 축구로 갚았다. 튀니지는 1일 카타르 월드컵 D조 조별 리그 3차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를 1대0으로 제압했다. 같은 시간 덴마크를 이긴 호주에 밀려 조 3위로 16강 진출은 좌절됐지만,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A매치 사상 처음으로 프랑스를 꺾으며 자국민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튀니지는 1881년부터 1956년까지 75년간 프랑스 식민 지배를 받았다. 왕실은 유지됐지만 이름뿐이었고 외교·국방·행정 등 내정에 대해서 프랑스가 주권을 행사했다. 독립 이후에도 설움은 지속됐다. 프랑스 본토로 넘어간 튀니지 출신 이주 노동자들은 온갖 차별을 겪으며 열악한 환경 속에 살아야 했다. 그 좌절감은 축구장에서도 표출됐다. 200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양국의 친선경기에서 프랑스 국가가 흘러나오자 튀니지계 프랑스인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이에 격분한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다시는 튀니지와 홈에서 친선전을 치르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번 맞대결에서도 프랑스 국가 연주 때 튀니지 관중들이 호루라기를 불어 방해했다.

조선일보

괜찮니? - 프랑스 공격수 란달 콜로 무아니가 1일 카타르 월드컵 D조 조별예선 3차전에서 튀니지의 선수와 볼 경합 도중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튀니지가 프랑스를 1대0으로 눌렀다. 튀니지는 16강 진출엔 실패했지만, 프랑스를 상대로 한 역대 A매치 첫 승리를 거뒀다. /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 튀니지 선수 26명 중 10명이 프랑스 태생이고, 6명이 프랑스전에 선발 출전했다. 이날 결승골을 터뜨린 와흐비 하즈리(31)도 그중 하나다. 하즈리는 나폴레옹의 고향인 프랑스령 코르시카에서 태어나 현재 프랑스 리그 몽펠리에에서 뛰고 있다. 그는 후반 13분 센터 서클 부근부터 드리블로 프랑스 수비 3명을 벗겨낸 뒤 왼발 슛으로 상대 골망을 흔들었다. 하즈리는 “프랑스와 한 조가 되길 바랐다”며 “나는 많은 나라를 대표한다. 나는 100% 튀니지 사람이자 100% 프랑스 사람이고, 100% 코르시카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승리는 튀니지가 프랑스를 상대로 거둔 첫 공식전 승리였다. 튀니지는 이날 전까지 프랑스를 상대로 A매치 4경기에서 두 번 지고, 두 번 비겼다. 1971년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스포츠 대회인 지중해 게임에서 프랑스에 2대1로 이긴 적이 있으나 FIFA(국제축구연맹) 공식전이 아니었다. 당시 프랑스는 아마추어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 출전했다. 튀니지는 이전까지 월드컵 본선에서 11차례 유럽 국가를 만나 4무 7패를 거뒀는데, 프랑스를 상대로 첫 승리를 따냈다.

조선일보

튀니지의 와흐비 하즈리. /로이터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잘랄 까디리 튀니지 감독은 “역사적인 승리다. 16강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영광과 자부심을 가지고 물러간다”며 “후회는 없다. 강팀들을 만나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튀니지 언론 ‘라프레세’는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선수들은 당당했다(head held high)”고 했다.

프랑스는 경기 종료 직전 앙투안 그리에즈만(31·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이 동점 골을 터뜨렸지만, 비디오 판독(VAR) 끝에 오프사이드로 인정돼 골이 취소됐다. 프랑스 축구협회는 경기 후 ‘골이 인정된 상태로 40초가량 경기가 진행된 상황에서 비디오 판독으로 판정을 뒤집는 것이 규정에 위배된다’며 FIFA에 문서로 이의를 제기했다. 받아들여져서 그리에즈만의 골이 인정돼도 D조에서 프랑스와 호주가 조 1·2위로 16강에 진출하는 결과에는 영향이 없다.

프랑스는 이날 패배로 월드컵 본선 연승 행진을 마감했다. 2018 러시아 대회 16강 아르헨티나전부터 이번 대회 조별 리그 2차전 덴마크전까지 6연승을 달리다 튀니지에 발목을 잡혔다. 프랑스는 역대 월드컵 본선에서 자신들이 식민 지배했던 국가와 3번 맞붙어 2번이나 패배한 불명예도 썼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세네갈을 만나 0대1로 졌고, 이번에 튀니지에 일격을 당했다. 2006 독일 대회 땐 토고를 2대0으로 꺾었다.

[김영준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