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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윤평중 칼럼] 도둑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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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벼랑 끝에 섰다. 이 대표는 대장동 사태를 검찰의 정치 공작이라고 강변하지만 각종 인적·물적 증거는 이재명 대표를 가리킨다. 대장동 비리는 ‘누가 가장 이익을 보는가?’(쿠이보노·Cui bono)라는 법언(法諺)으로 조명 가능하다. 투자금 대비 1천배 이상 이익을 본 화천대유·천화동인을 최대 수혜자로 여기는 건 대장동 사태의 실체를 가린다.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를 위한 정치 비자금 저수지가 대장동 비리의 본질이라는 의혹이 수사와 재판에서 사실로 증명된다면 대장동 사태는 6공화국 사상 최악의 도둑정치로 비화한다.

조선일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참사 의료 및 심리지원을 위한 간담회에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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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정치인(kleptocrat)은 정치권력을 악용해 공공 자산과 국민 세금을 약탈하는 자다. 군사독재 시대 끝물에 출현했던 전두환·노태우 전(前)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권력을 이용해 천문학적 뇌물을 받은 전·노 두 사람은 실정법과 민심의 법정에서 준엄한 심판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공정한 수사·감사 기구, 언론자유가 살아있는 국가에선 도둑정치가 발붙일 자리가 없다. 그런데 세계 10대 경제대국에서 희대의 도둑정치인이 대통령이 될 뻔했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대장동 범죄는 정치 진화의 시계바늘을 무법천지로 되돌린 파천황(破天荒)의 반동적 사태다.

하지만 도둑정치인이라는 중대 혐의가 이재명 대표 정치 생명의 종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대표는 모든 범죄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의 정치 이력을 돌아보면 대장동 범죄 의혹이 대법원 최종심에서 확정된다 해도 이 대표는 불복할 가능성이 크다. 대법원 유죄 판결 후에도 결백을 주장하는 한명숙 전 총리 수뢰 사건이나 끝없는 변명으로 정치적 부활을 꾀하는 조국 전 법무장관 학습효과도 있다. 기사회생을 노리는 이재명 대표 최후의 보루는 법적 쟁송(爭訟)이 아니라 정치 투쟁이 될 것이다. 취임 반년 갓 지난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려는 ‘촛불’을 제1야당 대표인 그가 우회적으로 고무하고 있는 이유다.

‘순결하고 정의로운 우리가 적에게 탄압받고 있다’는 집단 환상은 이재명 대표와 ‘개딸’이 보여주듯 모든 것을 적과 동지의 대결로 환원하는 파시즘으로 이어진다. ‘청담동 심야 술자리’ 거짓말로 나라를 어지럽힌 김의겸 민주당 대변인의 당파적 맹신이 사실과 이성을 압살(壓殺)할 때 스키조 파시즘(schizo fascism·정신분열적 파시즘)이 등장한다. 특권과 반칙을 즐기면서도 입만 열면 정의를 외치는 스키조 파시스트들에게 사실과 허위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국민을 동원 대상으로 여기는 파시즘과 전체주의는 인간을 사물로 격하시킨다. 공권력을 비웃는 도둑정치인을 정의의 사도로 떠받드는 정치 팬덤은 문자 그대로 착란적 현상이다.

대장동 비리가 ‘조국 사태’같은 진영 대결로 비화할 때 가장 이익을 보는 쪽은 이재명 대표다. 대장동 사태를 ‘야당 탄압용 정치적 수사’라고 믿는 40% 국민이 그 자양분이다. 그러나 대장동 수사를 ‘부패범죄에 대한 정당한 수사’라고 확신하는 50% 국민도 엄존한다. 둘로 갈라진 여론 지형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과 합리성의 위대함이다. 보수·진보 정권을 불문하고 부정선거와 언론탄압은 척결되어야 하고 도둑정치인은 나라의 공적(公敵)이다. 정치의 근본에 대한 이런 기초적 동의가 부재할 때 정치공동체는 붕괴된다.

좌파와 우파가 통치권을 다투는 이중권력 상태인 윤석열 정부에서 검찰이 제1야당 대표이자 유력 대권주자를 ‘없는 죄를 만들어 감옥에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장동 범죄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데 민주당이 스스로의 미래를 도둑정치인에게 의탁하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에 가깝다. 2021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 과정에서 이낙연 전 총리는 예언적 경종을 울린 바 있다. 20대 대선 승리와 민주당의 미래를 위해선 ‘대장동 복마전과 요지경’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내부 경고였다.

트럼프 전(前)미국 대통령의 ‘미국판 도둑정치’는 지난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거쳐 퇴조하고 있다. 국가를 진영대결의 난장(亂場)으로 만들어 사적 이익을 극대화한 트럼프의 쇠락은 미국 정치의 회복탄력성을 입증한다. 이재명 대표는 대장동 범죄로 서민 재산을 약탈해 사욕을 채웠다는 도둑정치 혐의를 받고 있다. 도둑정치인과의 동행은 깨어있는 한국 시민에 대한 모독이다. ‘한국판 도둑정치’를 추방해야 우리가 살고 대한민국이 산다.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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