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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과학 놀이터] 지구는 80억 명을 먹여 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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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이투데이

지난달 15일 유엔은 세계 인구가 80억 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70억 지구촌 인구가…’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한 지 11년 만에 앞자리 수가 바뀐 것이다. 2020년부터는 연간 인구 증가율이 1% 밑으로 떨어졌지만 당분간 인구가 늘어 한 세대 뒤인 2050년에는 97억 명에 이르고 2080년 104억 명으로 정점을 찍고 2100년까지 이 선을 유지한 뒤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지역과 소득에 따라 인구 전망이 크게 엇갈린다. 14억 명으로 1위를 차지한 중국은 내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서 2050년에는 11억 명대로 줄어들 것으로 보이지만 간발의 차이로 2위인 인도는 내년부터 1위로 올라서고 2050년에는 16억 명이 넘을 전망이다. 인도를 포함해 아시아 3개국과 아프리카 5개국 등 여덟 나라가 2050년까지 늘어날 17억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서구와 한국, 일본 등 선진국은 대부분 인구가 줄어든다.

인구 증가는 안 그래도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에 큰 부담이지만 당장 먹을 게 부족해 만성적인 굶주림과 영양결핍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급증할 것으로 보여 걱정이다. 1960년대 녹색혁명으로 굶주리는 사람들의 비율이 꾸준히 낮아졌지만 2015년을 기점으로 농업 생산성 향상이 인구 증가를 따라잡지 못하게 되면서 이 비율이 다시 늘고 있다. 유엔세계식량계획에 따르면 이미 8억 명 이상이 매일 밤 굶주린 배를 움켜쥐며 잠든다고 한다.

이투데이

유엔은 11월 15일 세계 인구가 80억 명을 돌파했다고 추정했다. 인구는 당분간 꾸준히 늘어 2080년 104억 명으로 정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지만, 최근 증가 폭 감소세가 두드러져 좀 더 일찍 100억 명에 못 미쳐 정점을 찍고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제공 ‘네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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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는 굶주림의 비극을 막기 위한 행동을 촉구하고 있는데, 크게 세 가지 방향이다. 먼저 육식을 줄이는 것으로, 건강을 고려해도 지금의 3분의 1 수준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옥수수와 대두 같은 곡물을 사람이 먹는 것과 비교할 때 가축 사료로 써 고기로 변환해 얻는 칼로리는 10%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지난 50년 사이 육류 소비량이 무려 10배로 늘었고 올해는 56.5㎏으로 예상돼 소비량이 줄고 있는 쌀(54.1㎏으로 예상)을 처음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런 추세라면 육류에 상당한 탄소세를 매기지 않는 한 3분의 1은 고사하고 세계 평균(44㎏)에 맞추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다음은 식량 손실을 줄이는 것이다. 놀랍게도 현재 세계 식량 생산량은 40억 톤으로 지구촌 사람들이 먹는데 충분한 양이지만 이 가운데 3분의 1인 13억 톤이 생산과 운반, 저장, 조리 과정에서 버려진다. 따라서 관련 시스템을 개선하면 꽤 줄일 수 있지만 주로 과일과 채소, 유제품, 육류 같은 신선식품이라 한계는 있다.

끝으로 궁극적인 해결책인 식량 생산량을 늘리는 것인데 역시 쉽지 않다. 기존 육종법은 거의 한계에 다다랐고 기후변화로 고온, 가뭄, 홍수, 병충해 등 각종 스트레스가 심해져 현상 유지도 버겁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유전자변형(GM) 농작물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GM 농작물에 대한 거부감의 뿌리가 깊고 아이러니하게도 만성적인 식량난을 겪고 있는 나라들이 더 심하지만 최근 상황이 워낙 심각해지다 보니 입장이 바뀌고 있다. 인도의 경우 겨자씨를 짜 식용유로 쓰는데 토양이 부실해 생산성이 낮다. 그런데 최근 델리대 유전학자들이 토양박테리아의 유전자를 도입해 수확량을 획기적으로 높인 GM 겨자를 현장 시험 재배할 수 있게 허용해 상업 재배의 길을 열었다.

인구 급증 여덟 나라에 포함된 필리핀에서는 8월 황금쌀 상업 재배가 시작됐다. 황금쌀은 비타민A의 전구체인 베타카로틴을 만드는 옥수수 유전자가 들어가 색이 노란 쌀로 채소 부족으로 비타민A 결핍을 겪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날 지구촌에서 비타민A 결핍으로 매년 100만 명이 사망하고 50만 명이 실명하고 있다. 황금쌀은 10여 년 전 개발이 완료됐지만, GM 작물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반대에 부딪혀 왔다.

인구가 가장 빠르게 늘고 있어 굶주린 사람 수도 머지않아 아시아를 제칠 아프리카 역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올해 극심한 가뭄과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식량난을 겪고 있는 케냐는 GM 작물 수입과 재배를 허용하기로 정책을 바꿨다. 내년에 가뭄에 견디는 GM 옥수수가 재배될 예정이다. 굶주림 앞에 작물 정체성 논란은 사치인 셈이다.

오늘날 GM 작물 재배 면적은 전체 경작지의 12%에 이르는데, 미국과 캐나다에서 재배하는 옥수수, 대두, 유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GM 작물을 재배하면 농약 사용량이 37% 줄고 수확량이 22% 느는 것으로 분석됐다. GM 작물이 지구를 망친다는 우려와는 달리 20여 년 동안 현장에서 이렇다 할 부작용이 보고되지 않고 관련 연구 수백 편도 문제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자 2016년 노벨상 수상자 107명이 GM 작물을 지지한다는 서한을 발표하기도 했다.

새로운 과학기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굶주림에 대한 실제적인 두려움을 통해서 서서히 극복되고 있는 현실이 씁쓸하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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