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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슈 미술의 세계

‘마라 맛’ 작가 2명이 떴는데 되레 ‘순한 맛’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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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만머핀 서울서 10일까지
검색엔진이 이어준 2작가
이근민·맨디 엘-사예
공감·연대의 힘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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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만머핀 서울에서 열리는 이근민-맨디 엘-사예 2인전 전경 <사진제공=리만머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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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마라’ 맛처럼 센 이미지로 가득한 두 화가가 만나니 오히려 순한 맛이 됐다. 이 알 수 없는 편안함은 뭐지?

도살장처럼 적나라한 이미지가 다소 부담스러운 이근민(40) 작가와 멍이 든 피부 등 상처를 표현해 온 작가 맨디 엘-사예(37)가 함께 하는 전시 ‘Recombinant(재조합 DNA)’가 서울 한남동 리만머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서울과 런던에서 각각 활동하는 두 작가는 놀랍게도 검색엔진 알고리즘으로 연결됐다. 엘 사예가 자신의 작업과 유사한 이미지로 서울의 이근민을 추천받아 코로나19로 격리된 기간 원격으로 교류해 2인전까지 이어졌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두 작가는 주로 이미지로 소통했고 서로 접점을 찾아갔다. 유기체의 유전 정보가 상호 교환하면서 분리된 DNA절편이 다시 결합하고 새로운 물질이 발현되듯 마련된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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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활동하는 이근민 작가 <사진제공=리만머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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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디 엘-사예 <사진제공=리만머핀>


전시장 1층에는 이근민 특유의 신체 장기나 살, 팔다리 등을 추상적 화법으로 표현한 거대한 삼면화가 압도한다. 작가가 병원에 입원할 때 경험했던 환각의 세계를 분절화된 인체 형상과 붉은빛으로 풀었다.

여기에 엘-사예가 멍 자국을 연상시키는 연둣빛에 혈흔을 연상시키는 붉은 빛을 뒤섞은 회화가 대중잡지나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함께 한 콜라주 위에 뒤섞여 있다.

엘-사예의 새로운 연작 ‘Editorial Alias’ 작품에는 ‘짝퉁’ 구찌 브랜드를 연상시키는 단어 ‘GOUCC’가 자꾸 시선을 끈다. 이 단어는 엘-사예의 아버지가 아마추어 무선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사용했던 개인 식별명(call-sign)인데 팔레스타인 서예가인 부친이 영국 이주한 후 안전을 위해 본인 출신을 감추고자 사용한 가명 중 하나다. 최근 젊은 작가들이 럭셔리 브랜드를 빌려 권력을 훔치는 방식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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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디 엘-사예, Piece Painting (I,O,U)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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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서는 두 작가 모두 신체와 관련된 이미지를 발산하지만 색감 탓인지 다소 순화된 분위기다. 이근민이 ‘다름’을 병리화하고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시스템을 비판하듯 엘-사예가 병원과 교도소의 제도적 조건을 탐구하는 작업을 해왔다. 서로 공감대를 형성한 두 작가를 통해 희망이 스며들고 참혹한 이미지가 순화되는 것 같다.

손엠마 리만머핀 서울 디렉터는 “두 작가 모두 개인의 고유성을 감추려 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알리기 위해 외부에 신호를 내보낸다는 점에서 연결되는 공통점이 있다”며 “특히 맨디가 직접 제작한 음향을 전시장에 설치하고 작품 배치 등 적극 전시 기획에도 관여했다”고 밝혔다.

실제 전시장에서는 엘-사예가 작곡가 릴리 오크스와 함께 한 사운드 작업 ‘En masse(collective body)’(2022)가 울려 퍼지고 있다. 전기 조명 마찰음 등 병원에서 추출한 음향과 작가가 경험한 이명 증상에 대해 읊조리는 목소리가 담겼다. 특히 전시개막 직전 발생한 이태원 참사를 기리기 위해서 작가는 인터넷에 급속히 확산했던, 질식사를 피하는 지시사항을 읽기도 한다.

엘-사예는 미국 북마이애미현대미술관, 아랍에미레이트 샤르자미술재단, 상하이 파워롱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됐고, 루마재단이 지원하는 치센헤일 갤러리 커미션 프로그램에 초대돼 주목받았다. 이근민도 스페인 마드리드 콜렉션 솔로와 스페이스K서울 등에 작품이 소장됐고, 미국 뉴욕의 파이오니어웍스 레지던시에 참여했다. 전시는 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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