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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입 속의 어떤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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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영민의 문장 속을 거닐다]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김현, 김훈의 애도에 관하여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해진 시인 기형도, 소설가 김훈, 그리고 문학평론가 고(故) 김현. 이들은 내 대학 시절 기억 속에 함께 있다. 기형도의 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 시절 친구의 하숙방에서였던 것 같다. 기형도는 ‘오래된 서적’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나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당시 나와 친구들은 기형도의 이런 우울한 시가 좋았다.

그 무렵, 지금은 고인이 된 문학평론가 김현이 학교에 와서 강연을 했다. 강연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강연 후 질의 응답 시간에 어느 여학생이 한국문학 전체에 대한 어떤 큰 질문을 던졌다는 것, 그리고 큰 뿔테 안경을 쓴 김현이 그런 큰 질문에는 대답하기 어렵다고 대답한 기억은 또렷이 난다. 그때 김현을 초청한 것으로 보이는 교수가 일어나서 학생들에게 한마디했다. 그렇게 막연한 질문을 하는 게 어딨어요.

그 시절까지만 해도 소설가보다는 기자로 알려졌던 김훈을 본격적으로 인지하게 된 것은 조금 뒤 일이다. 다른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던 선배 누나가 언젠가 그의 책을 선물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번 읽어 봐. 그리고 이 사람, 마음에 들게 생겼어. 낭만적인 문인처럼 잘생긴 기자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조선일보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의 그림 '여자와 아이(침묵)'. /시카고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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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사람은 기형도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에서 함께 만난다. 그 시집에 김현이 ‘영원히 닫힌 빈방의 체험’이란 해설을 썼다. 일찍 세상을 뜬 후배 문인에 대한 애정이 흘러넘치는 그 글에서 김현은 김훈을 인용한다. 기자 출신 시인 기형도가 1989년 3월 7일 3시 30분경 종로 2가의 한 극장에서 죽자, 역시 기자였던 김훈은 김현에 앞서 그를 애도하는 글을 썼던 것이다. “나는 기형도가 죽은 새벽의 심야극장-그 비인간화된 캄캄한 도시 공간을 생각하고 있다. 그가 선택한 죽음의 장소는 나를 늘 진저리치게 만든다.”

그리고 김훈은 원효의 게송을 인용하며 말하는데, 그 대목이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았다. “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생사를 거듭하지 말아라. 인간으로도 축생으로도 다시는 삶을 받지 말아라. 썩어서 공이 되거라. 네가 간 그곳은 어떠냐… 누런 해가 뜨고 흰 달이 뜨더냐.” 이 대목이 모질다고 생각한 김현은 ‘영원히 닫힌 빈방의 체험’에서 오마르카이얌의 시 ‘루바이야트’ 한 부분을 대신 인용한다. “우리 모두 오고가는 이 세상은/ 시작도 끝도 본시 없는 법!/ 묻는들 어느 누가 대답할 수 있으리오/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를!”

기형도의 시집을 함께 읽던 대학 시절 친구는 어떻게 되었나. 당시 많은 운동권 대학생들처럼 그 역시 소련의 몰락 이후 길을 잃었다. 한동안 방황 끝에 결국 영화판에 들어갔다. 한두 편의 단편영화를 찍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으나, 그는 점차 내 생활의 현장에서 멀어졌고, 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십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대학에서 정치사상을 가르친 지도 한 세월이 지난 지금, 새삼 이 옛 기억을 소환하게 된 것은 영화평론가 허문영의 글을 접했기 때문이다.

허문영은 ‘전조들-1988년의 기억’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형도가 생의 마지막 몇 시간을 보낸 그 극장에서 상영되던 영화는 <뽕2>였다. 김훈과 김현의 애도문에서, 그리고 그의 죽음을 말하는 글들에서 이 영화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애마부인’ ‘산딸기’만큼이나 유명하고 외설스러운 제목, 게다가 제목 뒤에 붙은 ‘2′라는 숫자의 파생적이고 조잡한 뉘앙스가 젊은 시인의 고독한 죽음이라는, 얼마간 신화적 분위기마저 풍기는 장면에 어울리지 않는 민망한 소품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바로 그 이유로 이런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은 ‘비인간화된 캄캄한 도시 공간’에 더없이 어울리는 무대 장치이기에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못 느껴서였을까. 우리는 왜 극장에 가는가. 물론 영화를 보기 위해 간다. 하지만 다르게 말할 수도 있다. 우리는 종종 세상을 보지 않기 위해 극장에 간다. 그 극장이 1980년대의 남루한 변두리 재개봉관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허문영의 이 글로 인해 나는 삼십몇 년 만에 기형도가 무슨 영화를 보다가 죽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기형도를 사랑하는 문인들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 영화제목에 대해 침묵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연, 세상에 떠도는 기형도의 이미지와 뽕2는 어울리지 않는다. “뽕”이라는 발음조차 어울리지 않는다. 그의 시집 제목은 <입 속의 검은 잎>이지 <입 속의 검은 뽕잎>이 아니다.

내가 유학 가서 배운 정치사상 사조 중에는, 위대한 정치사상가일수록 위험한 진실을 다루며, 위험하기에 함부로 발설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담은 것이 있다. 그에 따르면, 위대한 정치사상가는 다수에게는 그 위험한 내용을 침묵하고, 소수에게만 침묵을 거쳐 넌지시 전달한다. 오직 명민한 독자만이 그가 남긴 텍스트를 꼼꼼히 읽은 끝에 그가 왜 무엇을 침묵했는지 파악해낸다.

이러한 침묵이 어디 위대한 정치사상가의 경우에만 해당하겠는가. 어떤 이유로든 발설하면 박해를 받게 되거나, 위험에 처하게 되면, 사람은 대개 침묵하게 된다. 그 침묵한 내용에 대해서는 끝내 알 수 없을지 몰라도, 침묵이라는 현상은 그 두려움의 존재와 침묵이 뿌리내린 사회에 대해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김훈이나 김현, 그리고 그들에게 공감한 사람들은 <뽕2>에 대해 침묵함을 통해 시인 기형도의 낭만적이고 고고한 이미지를 지켜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심지어 세월이 지나 그 사실을 지면에 공개적으로 밝힌 허문영조차도 “우리는 종종 세상을 보지 않기 위해 극장에 간다”라고 낭만적으로 말한다. 이리하여 시인 기형도는 에로물이 보고 싶어(?) 심야극장을 찾은 통속적인 사람이 아니라, 불편한 세상을 외면하기 위해 <뽕2>를 보러 간 고독한 사람이 된다. 고인이 된 기형도는 왜 그가 그때 그 영화를 선택했는지 우리에게 끝내 알려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선택을 둘러싼 침묵의 궤적은 이 사회 일각이 지키고 싶었던 어떤 이미지에 대해 알려준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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