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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민들은 왜 ‘백지’를 들었을까… ‘백지 혁명’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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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들기를 불온하다며 금지할 수 있을까?

백지 들기가 사회주의 파괴 활동이라며 처벌할 수 있을까?

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57회>

조선일보

<2022년 11월 27일, 베이징의 시위대가 정부의 검열을 비판하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상징물로 백지를 손에 들고 시위하고 있다. 사진/Thomas Peter/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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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중국의 학생과 시민들 “공산당 물러나라!” “시진핑 물러나라!”

마침내 중국 인민이 일어났다. 지난 11월 29일 미국 CNN 보도에 따르면, 11월 25일부터 나흘 사이 중국 17개 주요 도시에서 최소 23건의 시위가 발생했다. 베이징, 톈진, 타이위안(太原), 시안(西安), 청두, 충칭, 우한, 난징, 상하이, 항저우, 광저우 등 대도시뿐만 아니라 신장(新彊) 서쪽 끝 인구 40여 만의 오아시스 도시 호탄, 77만의 도시 쿠얼러, 450만의 성도 우르무치에서도 성난 인민들이 시위를 벌였다. 1989년 이래 중국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처럼 큰 시위가 발생한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이 외치는 구호가 충격적이다.

“공산당은 물러나라(共産黨, 下臺)! 시진핑은 물러나라(習近平, 下臺)!”

공산당 일당독재의 나라 중국에선 머릿속 상상조차 쉽지 않은 구호다. 중국은 어느 공공장소든 무수한 감시 카메라가 실시간 오가는 인민의 일거수일투족을 모조리 촬영·녹화하는 나라다. 그런 중국에서 대도시 광장에 시민들이 모여서 목청껏 “공산당은 물러나라, 시진핑은 물러나라” 외쳤다면, 그 자체가 가히 혁명적 사건이다. 1989년 톈안먼 시위대도 최고 영도자 덩샤오핑을 비판하고 국무원 총리 리펑(李鵬, 1928-2019)의 퇴진을 외쳤지만, 중국공산당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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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9일경, 서울 홍대 부근에서 중국인 유학생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왼쪽 글귀는 “시진핑 물러나라, 중공 물러나라”이고, 사진 오른쪽 끝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가 적혀 있다. 사진/ https://twitter.com/GFWfr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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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공산당 비판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나라다. 중국 <<헌법>> “총강” 제1조는 명확하게 “중국공산당 영도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가장 근본적 특징”이라 못 박고 있다. 그러한 중국공산당을 향해서 중국 인민이 “물러나라” 소리쳤다. 당·정·관·군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최고 영도자 시진핑을 향해 퇴진을 외치는 인민의 용기는 실로 대단하지만, “공산당은 물러나라!”는 구호가 너무나 충격적이라 “시진핑은 물러나라!”는 약하게 느껴질 정도다.

미국에서 활약하는 중국 민주화의 아이콘, <<베이징의 봄>> 영예 주필, 후핑(胡平, 1947- )은 말한다.

“공산당은 물러나라는 구호는 경천동지의 메시지다. 그 의의는 매우 중대하다. 상하이 군중이 소리쳐 외친 이 구호는 떨어지는 한 장 이파리 가을을 알리듯이 중국 백성의 심중에 민주와 자유를 쟁취하려는 포부가 있음을 증명한다.”

공산당 물러나라 구호는 경천동지의 메시지...제2 텐안먼 민주화 운동의 시작인가

1989년 이래 중국의 대중 시위는 대부분 지방정부의 부패와 무능을 비판하고 고발하는 “지방화된 운동(localized movement)”이었다. 이번에는 성난 인민이 중앙정부의 최고 권력자뿐만 아니라 중국공산당을 향해 직접적인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시위 참여자를 보면, 위구르족과 한족이 함께 움직이고, 노동자, 중산층, 대학생이 한데 뭉치고 있다. 민족을 넘어, 계급을 넘어 다양한 집단이 뭉치는 광범위한 인민의 연대로 보인다.

시민들이 지목한 공공의 적은 “공산당”과 “시진핑”이다. 탄압하는 경찰을 향해 시위대는 당당하게 외친다. “인민에 복무하라(爲人民服務)!” 그들의 혀끝엔 이미 “부자유 무녕사(不自由, 毋寧死)!”의 6자(字) 비결(秘決)이 들러붙었다. 1989년 톈안먼의 학생과 시민들이 외쳤던 바로 그 구호다. “자유가 아니면 차라리 죽겠다” 또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의미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언론자유(言論自由, 표현의 자유)”와 “신문자유(新聞自由, 언론·출판의 자유)!”를 요구하고 있다. 자유가 시대정신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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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7일 칭화(淸華)대 학생들이 들고 있는 백지에는 프리드만(Friedman) 공식이 인쇄되어 있다. “Friedman”의 “de”를 비슷한 발음의 중국어 단어 的(더)로 바꾸면, “Free的 Man,” 곧 자유로운 인간이란 의미가 된다. 중국 대학생들의 창의적인 저항이 “백지 혁명”의 역사적 의의를 증폭시키는 장면이다. 사진/https://twitter.com/nathanlaw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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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간 제로-코비드 방역의 결과 중공 정부의 대민 지배력은 최고조로 강화되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중공 정부에 전 인민의 언행과 생각까지 감시하고 처벌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부여했다. 현재 중국은 수천만 인민을 수개월씩 집안에 감금하고 날마다 불러내서 PCR 검사를 하는 전체주의 국가다. 인터넷의 댓글까지 샅샅이 감시하고, 인민의 생체 정보 및 언행 기록까지 빅 데이터로 집적해서 개개인에게 사회적 신용등급을 부여한다.

중국이 바로 그러한 나라이기에 더더욱 최근 전국 17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23개 시위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중대한 의미가 갖는다. 철옹성 같은 중공 정부의 방화벽에 균열이 생겨났나? 아니라면, 어떻게 수백 명 인민이 광장에 모여서 “시진핑은 물러나라” 외칠 수 있단 말인가? 돌아보면, 균열의 조짐은 이미 오래전부터 보였다. 공산당 퇴진의 구호를 외치기까지는 중국 인민은 지난 3년 실로 파란만장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모름지기 대중운동은 살아 숨 쉬는 생물(生物)과도 같다. 밟으면 꿈틀대고 아프면 피하게 마련이지만, 분노가 극에 달하면 무리 지어 싸운다.

제로-코비드 3년, 자유와 민주를 배운 중국 인민

팬데믹의 진원지 우한에 봉쇄령이 떨어져 시민들이 모두 집안에 갇혀버렸던 2020년 2월 초 칭화대학 법학원의 쉬장룬(許章潤, 1962- ) 교수는 “분노한 인민은 더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격문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쉬 교수는 중국공산당의 불합리하고 강압적인 방역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중국은 점차 세계의 외로운 섬이 되어버렸고, 지난 30년 개혁개방으로 힘겹게 일군 개방성은 하루아침에 훼손되었으며, 중국의 치리(治理)는 순식간에 전근대로 돌아갔다. 길을 막고 문을 닫아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야만적인 인도의 재만이 중세기를 닮았다······. 그렇다! 국민의 분노는 이미 화산처럼 폭발했다. 분노하는 인민은 이제 더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쉬장룬 교수의 무서운 예언은 이후 3년에 걸쳐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분노한 인민은 두려움이 없기에 광장에 모여서 “공산당은 물러가라, 시진핑은 물러가라” 외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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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화장실 낙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사진/https://twitter.com/lfh46123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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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정국이 시작된 이래 중국 전역에서 크고 작은 항의가 이어졌다. 급기야 지난 3월 말부터 시작된 상하이 봉쇄가 두 달 넘게 이어지면서 성난 시민들의 항의는 비등점으로 치솟았다. 중국의 SNS에 방역의 광기를 고발하는 동영상들이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그때마다 중공 정부는 신속하게 그 영상들을 삭제했지만, 시민들의 자발적인 소통을 완벽하게 차단할 길은 없다. 격분한 시민들은 굴하지 않고 고층 건물 창밖으로 괴성을 지르고, 인터넷에 항의문을 올리고, 동영상을 퍼뜨리며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했다.

5월 베이징 대학과 톈진의 난카이 대학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학생 기숙사 주변에 철판으로 만든 방역 벽이 세워지자 캠퍼스 안에 갇혀버린 학생들 수백 명은 캠퍼스 광장에 모여앉아서 일방적인 정부의 시책을 비판하며 시위를 벌였다. 학교 당국은 기숙사로 돌아가라며 학생들을 설득했지만, 일부 학생들은 반쯤 지어진 철벽을 밀어서 무너뜨리려 했다.

5월부터 7월까지 허난성에선 예금을 동결한 지방 은행에 항의하는 인민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사전 정보를 입수한 정부는 참가자들의 여행권을 제한하기도 했지만, 시위를 막을 수는 없었다.

10월 13일 오후 2시 베이징 하이뎬(海淀)구 쓰퉁차오(四通橋) 다리 난간에 “나라의 도적 독재자 시진핑을 파면하라!”는 구호가 내걸렸다. 그날 다리 위에서 일인시위를 벌인 펑리파(彭立發, 1974- )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지금도 구금된 상태지만, 현장의 동영상은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감시 카메라가 없는 화장실에서 펑리파의 구호를 거침없이 옮겨적는 “화장실 혁명”을 연출했다. 지난주 베이징과 상하이에 결집한 시위대는 펑리파가 내걸었던 바로 그 구호를 외쳤다. “코비드 검사 말고 밥을 달라! 수령 대신 선거를 원한다! 노예가 아니라 공민의 되고 싶다!” 베이징에서 발생한 단 한 사람의 시위가 전국 인민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준다.

지난 10월 28일 티베트의 라싸에서도 3개월간 지속된 봉쇄 조치에 맞서 수백 명이 모여서 정부를 규탄하는 집단 시위가 발생했다. 2008년 이래 처음으로 발생한 티베트의 시위였다. 당시 수백 명 시위대 속엔 티베트 원주민과 한족 이주노동자들이 섞여 있었다.

10월 29일, 매일 수십만 대의 I-Phone을 생산하는 정저우의 팍스콘(Foxconn) 공장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짐을 싸서 철조망 방호벽을 넘어 공장에서 탈출해서 집으로 걸어가는 동영상이 위챗에 유포되어 전 세계에 충격파를 주었다. 정부의 일방적인 제로-코비드 방역에 대한 집체적 저항의 움직임이 일어나는 듯했다.

11월 24일 오후 충칭에선 한 젊은 남자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외치면서 거리의 시민들을 향해 그릇된 방역 정책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는 “세상엔 오직 하나의 질병이 있고, 바로 그 병명은 부자유와 빈곤”이라 주장해서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경찰이 그를 붙잡아 목조르기를 하면서 제압하려 했지만, 시민들이 몰려가 완력으로 경찰의 손아귀에서 그를 구출했다. 그 장면이 고스란히 동영상으로 찍혀 중국 전역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용감하게 정부를 비판한 그에겐 “초인 형님(超人哥)”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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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칭에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며 시위하는 일명 ‘초인 형님’의 모습. 그는 경찰에 목을 잡혔지만, 시민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탈출했다. 사진/ 인터넷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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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저녁 8시경 우루무치에서 10명이 사망하고 9명이 중상을 입는 참혹한 화재가 발생했다. 인명을 앗아가는 안전사고는 중국에서 심심찮게 발생한다. 2015년 톈진의 화학물질 창고에서 대폭발이 발생해서 165명이 사망했다. 2019년 3월에는 옌청의 화학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해서 78명이 사망하고 반경 7킬로미터 이내 주거지가 파괴되는 사고도 있었다. 우루무치 화재가 일어나기 불과 이틀 전인 11월 22일 허난(河南)성 안양(安陽)의 한 공장에선 전기용접의 잘못으로 화재가 발생해서 38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도 발생했다.

중국 인민들에겐 그 모든 안전사고보다 11월 24일 우르무치의 화재가 더 큰 충격을 주었다. 모두가 불시에 봉쇄당할 위험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의 검열 직전 전국으로 퍼져나간 동영상을 보면, 아파트 봉쇄 구조물 때문에 소방차는 건물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고, 호스에서 발사된 물은 치솟는 불길에 닿지 못함이 확인된다. 불길에 휩싸인 채 목숨을 잃은 10명 사망자 중엔 위구르족 여인과 네 명의 아들딸이 포함돼 있었다. 시민의 분노는 집체적 행동을 낳고, 행동은 결국 운동으로 발전한다. 바로 다음 날부터 격분한 시민들이 중국 전역에서 집결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중국의 대학생들은 손에 백지를 한 장씩 들고 시위를 벌였다. 한 글자도 적히지 않는 종이 한 장이 대하소설 한 질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를 궁지로 몰아넣는 기발한 아이디어다. 베이징, 상하이, 난징, 광저우 등의 중국의 시민들이 백지를 들고 침묵시위를 벌인다면, 중공 중앙은 어떻게 대응할까? 백지 들기를 불온하다며 금지할 수 있을까? 백지 들기가 사회주의 파괴 활동이라며 처벌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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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7일 저장(浙江) 우전(烏鎭)의 관광지에서 한 시민이 백지 혁명을 선전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있다. 사진/https://twitter.com/wurenhua>


2004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 2011년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 2014년 홍콩의 “우산 혁명,” 2020년 홍콩, 대만, 태국을 잇는 “밀크티 동맹” 등에서 보듯, 시민운동이 성공하려면 그 운동의 정신을 압축하는 혁명의 상징물이 필요하다. 중국 인민은 백지를 들었다.

누구였을까, 맨 처음 백지를 손에 들고 거리로 나간 그 인물은? 우연히 한 사람의 머리에 번뜻 떠오른 생각이었을까? 어느 누군가, 아니 어떤 조직이 고심해서 만들어낸 혁명의 내러티브(narrative)일까?

백지 혁명의 저작권은 2020년 6월 홍콩의 시위대에 있다. 당시 베이징의 인민대표대회에 만장일치로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과된 후, 홍콩의 시위대는 흰 종이를 들고 베이징의 탄압에 저항했다. 홍콩에서 시작된 시위 문화를 베이징, 상하이의 학생들이 받아서 대륙 전역으로 확산한 셈이다. 땅 밑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1911년 공화 혁명에서 1989년 톈안먼 민운(民運)을 거쳐 2022년까지 오늘날 중국에서도 자유와 민주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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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8일경 후난성 장사에서 백색혁명에 동참하는 시민들의 퍼포먼스. 사진/ https://twitter.com/GFWfr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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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5일, 공산당 일당독재 치하 중국에서 백지 혁명의 물꼬가 터졌다. 젊고 발랄한 중국 청년들은 시위 현장에서 실시간 핸드폰으로 찍은 동영상을 재빨리 VPN으로 중공 정부의 감시망을 따돌리고 해외 SNS로 퍼 나르고 있다. 런던, 뉴욕, LA, 시드니, 토론토, 서울 등 세계 각국의 대도시에서 백지 혁명에 동참하는 세계시민의 시위가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비관주의자는 중공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시위는 곧 멈춘다고 전망하지만, 2022년 백지 혁명은 이제 막 시작됐다.

백지 혁명의 행동 강령은 “백지를 손에 들고”이다. 구호는 “공산당은 물러나라, 시진핑은 물러나라!”이다. 1989년 이래 중국 인민을 이끄는 도도한 시대정신은 “부자유(不自由) 무녕사(毋寧死)”이다. “자유롭지 못하면 차라리 죽겠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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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 칭화 건축학원의 석사과정 학생들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구호를 들고 시위하고 있다. 사진/ https://www.wilsonquarterly.com/quarterly/_/tiananmen-square-at-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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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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