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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태원 출동 소방관 “죽어라 뛴 이들 추궁하는 것이 처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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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지난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맞아 인파가 몰려 대규모 인명사고가 발생, 소방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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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많이 빠져요. 참사 현장을 지킨 건 소방관들인데, 트라우마가 가시기도 전에 죄인 취급을 받는 것 같아 괴로워요”

15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다. 부실 대응을 수사 중인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 칼끝은 소방 당국을 향하고 있다. 참사 당일 현장에서 고군분투한 소방관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인천 남동소방서 119안전센터 소속 유병혁(32) 대원도 회의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현장 출동 당사자인 그는 지난 2일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선 소방 실무자들을 향한 책임론이 불거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책임져야 할 이들이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특수본은 소방 당국 윗선까지 수사를 확대해 부실 대응 규명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참사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구조활동을 벌인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에 대해서도 지난 26일 두 번째 소환조사를 진행했다. 최 서장은 참사 당일 소방 대응 2단계 발령이 늦는 등 현장 대응이 미흡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이밖에도 특수본은 지난달 2, 8일 각각 서울소방재난본부와 서울 용산소방서를 압수수색 했다. 서울에서 출동한 소방관 620명의 활동기록도 수사 중이다.

이런 상황을 마주한 소방관들의 심리적 부담감은 크다. 유 대원을 포함해 참사 당일 현장 출동한 소방관들에게 당시의 구조활동은 견디기 힘든 기억으로 남았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는 동료들도 여럿이다. 여전히 그날의 잔상과 희생자에 대한 죄책감이 따라다닌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경찰 수사까지 더해지자 이들의 고통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유 대원은 일부 현장 인력에게 책임을 돌리는 수사 방식이 적절하지 않다고 봤다. 그는 “구조 의무가 있는 소방관들이 현장에 없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게 아니지 않나”라며 “사명감 가지고 일하는 현장 책임자에게 책임을 따져 묻기 시작하면 누가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결과가 좋지 않으면 처벌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부담 때문에 재난 현장에서 지휘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현장에서 죽어라 뛴 이들을 추궁하는 게 진정한 책임자 처벌인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소방노조 반발은 거세지고 있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소방청지부는 “유일하게 참사 현장과 함께한 지휘관을 구속하려면, 7만 소방관을 다 구속하라”고 주장하며 지난 14일 이상민 행정안전부(행안부) 장관을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현행법상 행안부 장관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재난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한다는 점에서다.

일선 소방관들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경찰·소방 등의 재난 안전관리를 총괄하는 주무부처인 행안부와 그 수장인 이 장관이 책임에 자유롭지 않다는 주장이다. 유 대원은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매년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행사다. 사고 가능성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재난 컨트럴타워인 행안부의 대처는 미흡했다”라며 “현직 소방공무원들 사이에서도 권한을 가진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소방 조직 자체의 권한이 강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폭넓은 지휘권을 보장받아 재난 상황에 적극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유 대원은 “기본적으로 소방 조직의 권한이 너무 부족하다. 2020년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됐지만, 조직·예산·인사 등 중요한 부분은 여전히 자치단체에 귀속돼있다. 사실상 반쪽짜리 국가직인 셈”이라며 “유사시 소방 조직이 관계 부처를 모아 안전 대책을 논의할 수 있도록 지휘권이 향상돼야 한다”라고 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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