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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남의 말 빌려쓰는 윤석열 정부 ‘외교 전략’…국익에 부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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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권혁철의 안 보이는 안보

냉전 때 미국 기준에서 ICBM 거리 설정

소련이 미국 공격 가능 최단거리 5500㎞

전략핵 전술핵 구분도 동서 냉전 때 잣대

미국 인태전략 개념 본딴 한국 인태전략

남의 개념 빌려 국익 지키는 외교 가능?


한겨레

지난 11월18일 평양국제비행장(순안비행장)에서 이뤄진 “신형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포-17’형” 발사 장면.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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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올해 들어 37차례에 걸쳐 탄도미사일 84발을 발사했다. 이 가운데 대륙간탄도탄(ICBM)은 8번 쏘았다.

탄도미사일은 비행거리를 기준으로 단거리미사일(SRBM·300~1000㎞), 준중거리미사일(MRBM·1000~3000㎞), 중거리미사일(IRBM·3000~5500㎞) 대륙간탄도탄(ICBM·5500㎞ 이상)로 나뉜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군 당국과 기자들은 비행거리부터 먼저 따지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인지 등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한국과 미국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북한이 넘지 말아야 할 ‘레드라인’으로 간주한다. 특히 미국은 북한 단거리 미사일에 대해서는 “미국 영토와 시민, 동맹에 대한 즉각적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며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다가, 대륙간탄도탄에 대해서는 “자국 본토와 한국·일본 등 동맹국의 안전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하겠다”고 발끈한다. 북한 미사일 위협이 비행거리에 비례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비행거리에 따른 탄도미사일 분류 기준은 누가 만들었을까? 세계 공통 기준은 아니고, 대체로 미국을 포함한 서구사회는 사거리 5500㎞가 넘는 미사일을 아이시비엠이라고 부른다. 미국과 소련이 대결했던 냉전 시절 미국 본토의 동북 국경과 소련 본토의 북서쪽 국경을 잇는 최단거리가 5500㎞였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냉전 때 미국 본토를 겨냥한 소련 미사일은 대권 코스를 통해 북극권 상공을 비행하는데 이 최단거리가 5500㎞였다. 지구상의 두 지점 간의 최단거리 항로가 대권 코스(Great Circle Route)다. 아이시비엠은 한정된 연료을 사용해 최단 기간내 재빨리 표적을 타격해야 하기 때문에, 지구 중심을 초점으로 하는 최단 비행 경로인 타원 궤도인 대권 코스를 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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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탄도미사일 종류. <2020 국방백서> 갈무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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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술핵 국내 재배치 논의에서 파괴력이 엄청난 전략핵은 ‘사용할 수 없는 무기’이고, 파괴력을 낮춘 전술핵은 ‘사용 가능한 무기’라고 알려졌다. 대체로 100~20㏏(1kt은 TNT 1천t의 폭발력) 이하를 전술핵무기로 분류한다.

애초 전술핵·전략핵 구분은 국토 면적이 엄청나게 넓고 도시 간격이 멀리 떨어져 있고, 각종 핵무기를 수천발씩 보유한 미국과 러시아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한반도는 미국, 러시아에 견줘 종심(공간, 시간, 자원상의 작전범위)이 짧고 면적도 좁다. 지난 2005년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위협감소국(DTRA)은 서울 용산에 전술핵 규모인 20kt 규모 핵폭탄이 터지면 서울 시민 113만명 가량이 사망하며 전체 사상자는 약 275만명이란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놓았다. 한반도 특성을 감안하면 전술핵, 전략핵 구분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 미국과 러시아의 광대한 지리적 특성과 냉전 시대 역사적 경험에서 나온 전술핵·전략핵 구분을 한반도에 바로 적용하기 어렵다.

대통령실은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이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최초로 공개한 한국판 인도·태평양(인태) 전략에 대해 “최초의 포괄적 지역 전략으로 우리 국격과 위상에 맞게 외교 시야가 확장됐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일부는 맞는 말이다.

그동안 한국은 각종 외교안보 정책·전략 사안에 대해 북방정책, 햇볕정책, 신남방정책 등과 같이 ‘정책’이라 부르고, ‘전략’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동안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합의된 전략 개념이 정립되지 못했다. 심지어 일부 전문가들은 외교안보전략을 수립하거나 공포하는 것은 강대국의 전유물이며, 수시로 변하는 강대국의 요구와 강대국 국제질서에 적응하는 것이 최고 미덕인 한국에는 별도의 외교안보전략이 필요 없다고 주장해왔다. 한국 외교에 없던 전략이 등장한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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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13일(현지시각)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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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담 뒤 나온 프놈펜 성명은 “3국 정상은 자유롭고(free), 개방되고(open), 포용적이고(inclusive), 회복력 있으며(resilient), 안전한(safe) 인도태평양 지역을 위해 우리 공동의 노력을 조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목은 미국 인태전략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을 옮겨 온 것이다. 외교는 말로 하는 전쟁이다. 대통령실은 최초의 포괄적 지역 전략을 남의 말로 짜고 있다.

근동, 중동, 원동이란 말을 생각해보자. 19세기 세계를 지배하던 영국은 서유럽을 기준으로 근동(Near East), 중동(Middle East), 극동(Far East)이란 말을 만들었다. 유럽에서 가장 가까운 근동은 발칸반도 등이고, 그다음 가까운 중동은 아랍 등, 가장 먼 극동은 동아시아 등이다. 서구 중심주의 관점에서 세계를 분류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중동이란 말을 일상적으로 쓰고, 가끔 극동이라고 자처하기도 한다.

서 있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고 했다. 외교안보에서 위협의 실체를 파악하고 대처하려면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부터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를 소홀히 하면 남의 장단에 휩쓸려 춤추게 된다.

△인용한 자료

<ICBM 그리고 한반도:북한과 한반도 주변 열강의 탄도탄>(정규수, 지성사)

<한국 외교를 위한 전략의 역할과 방법>(전봉근,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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