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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세계 각국서 러브콜 보내는 'K반도체'… 한국에서만 찬밥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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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흐름 속에서 세계 각국이 앞다퉈 '리쇼어링(생산시설 국내 복귀)'에 뛰어들고 있다. 저마다 자국에 생산시설을 유치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한국은 정쟁과 지역 이기주의 등으로 생산시설의 착공 시점도 잡지 못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은 설립 발표부터 착공까지 단 4개월이면 충분했다. 반면 SK하이닉스가 추진 중인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사업은 발표한 지 3년10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제대로 된 공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미국 텍사스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반도체 공장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170억달러(약 22조4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당시 테일러시는 2000여 개의 하이테크 일자리와 수천 명의 간접 일자리, 6500여 명의 건설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테일러 공장은 지난 3월 착공에 들어갔고 지난 8월부터는 기초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계획 발표부터 착공까지 불과 약 4개월이 걸린 셈이다.

반면 120조원 규모의 국책사업인 용인반도체클러스터는 2019년 2월 계획이 발표됐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용인반도체클러스터는 용인시 처인구 일대 415만㎡에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생산기지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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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반도체 용수 공급 문제도 지난달에야 해결됐다. 지난해 5월 클러스터 쪽에서 공업용수 시설을 구축하기 위한 인허가를 용인시에 요청했지만 여주시의 반대로 절차가 지연된 것이다. 여주시는 이미 합의된 사안을 뒤집고 '몽니'를 부리다 국회와 정부 등의 중재로 겨우 사안을 매듭지을 수 있었다. 용인반도체클러스터는 계획을 발표한 지 8년 후인 2027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계획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한국과 달리 미국, 유럽, 일본, 인도 등 경쟁국들은 반도체 생산시설을 유치하기 위해 파격적인 인센티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공급망 붕괴를 경험한 세계 각국이 제조업 공급망을 확충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고, 특히 산업 안보와 직결되는 반도체 부문에서 이 같은 경향이 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배터리 등 핵심 부품을 자국 내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인식이 국가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며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지면 국민의 삶과 산업 근간이 흔들린다는 것을 팬데믹 때 목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은 반도체 공장이나 장비 생산시설을 건설하면 25%의 투자 세액공제를 제공하고 있다. 연방정부가 제공하는 지원 외에도 주·시 단위 정부가 기반시설 조성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 반도체 회사인 인텔의 경우 미국 오하이오주 뉴올버니시에 200억달러(약 26조4000억원)를 투자해 신규 반도체 공장 2곳을 건설하기로 했다. 오하이오주는 투자금액의 10%에 해당하는 20억달러(약 2조6000억원) 이상 규모의 인센티브를 패키지로 제공한다. 뉴올버니시는 여기에 더해 앞으로 30년간 사업장 개발에 대한 토지 재산세를 전액 면제하기로 했다. 일자리 창출과 공장 설립 이후 들어올 세금 등을 고려할 때 이 같은 인센티브는 기업에 필요하다는 게 이들 지방정부의 판단이다. 대만 반도체 회사인 TSMC가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에 신축 중인 공장도 지방정부 단위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애리조나주는 반도체 공장 용수 공급을 보장하고 2억5000만달러(약 3300억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피닉스시 의회는 시 예산으로 TSMC의 공장 용지 관련 도로, 하수 등 기반시설 구축 지원을 승인하기도 했다.

인도는 반도체 공장 신설 비용의 50%를 정부가 부담한다는 내용을 담은 100억달러(약 13조2000억원) 인센티브 패키지를 발표했다. 일본 역시 68억달러(약 9조원) 규모의 인센티브 패키지를 조성했다. 일본 정부는 TSMC가 추진 중인 구마모토현 반도체 공장 건설 비용 1조2000억엔(약 11조1000억원) 중 40%에 육박하는 4760억엔(약 4조5000억원)을 지원한다.

세계 각국 정상들도 저마다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인 구애에 나서고 있다. 특히 반도체 세계 최강국으로 꼽히는 한국에 대한 '구애'가 특별하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정상들이 세계 최대 반도체 단지인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단골로 찾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지난달에만 외국 정상 2명이 이곳을 찾았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생산라인을 살펴본 데 이어,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도 주요 부처 장차관과 함께 방문했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이곳을 찾은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7월 백악관으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초청한 일화도 유명하다. 바이든 대통령과 최 회장은 코로나19 확진에 따른 격리 문제로 벽을 사이에 두고 영상으로 면담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반도체 등 분야에 대한 대규모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생큐 토니(최 회장의 영어 이름)"라는 말을 9차례나 반복하기도 했다.

이들 해외 정상은 반도체 공장 유치에 대한 인센티브로 한국 기업에 양질의 인력을 공급하겠다고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력 확보 차원에서 미스매치가 심각한 한국 상황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학교·공장 총량을 규제하는 수도권 총량규제가 한국의 반도체 기업에는 허들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최승진 기자 / 오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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