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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美 세액공제 25%로 반도체 투자 ‘싹쓸이’… ‘K칩스법’은 연내 통과도 불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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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TSMC 반도체 공장이 들어설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 일대 부지. 6일(현지시각) 장비 반입식이 열리기 전 현장의 모습.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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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요 국가 간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지원법인 이른바 ‘K칩스법’(국가첨단전략산업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해를 넘길 전망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 경쟁국들이 반도체 기업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놓고 있는 반면, K칩스법이 정치권의 정쟁(政爭)에 이용되면서 한국 반도체 경쟁력이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여야, 세액공제 최소 10% 제안에도 기재부 반기

8일 국회와 업계에 따르면 K칩스법은 여야 공전을 거듭하며 연내 통과가 사실상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업계에서 가장 시급하다고 보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조특법)은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조특법은 국내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현행 6~16%인 세액공제를 10~30%로 늘려 적용해주는 것이 골자다.

당초 여당이 발의한 조특법은 기업의 시설 투자에 대해 세액공제율을 ▲대기업은 현행 6%에서 20% ▲중견기업은 8%에서 25% ▲중소기업은 16%에서 30%로 높이는 내용이 담겼다. 민주당은 이를 대기업 특혜라고 비판하고 ▲대기업 10% ▲중견기업 15% ▲중소기업 30%를 공제하는 조특법 개정안을 내놨다. 하지만 기재부는 세액공제율을 높이는 만큼 세수가 감소한다는 이유로 대기업 기준 8% 이상의 세액공제는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공제율 8%를 고수하는 기재부의 입장이 글로벌 스탠다드와 괴리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은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25% 세액공제를 해주고, 반도체 시설 투자와 연구개발(R&D) 등에 520억달러(약 73조원)를 지원한다. EU도 지난 1일(현지시각) 반도체 생산 확대를 위해 430억유로(약 59조원) 규모의 민관 투자 펀드를 조성하는 ‘유럽반도체법’에 합의했다. 일본 역시 반도체 기업 설비 투자의 40%가량을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최근 자국 내 반도체 기업의 R&D에 대한 세액공제를 15%에서 25%로 늘리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조특법이 ‘대기업 특혜’라는 야당 주장과 달리, 소부장 중견·중소기업도 적극적으로 세액공제 확대를 원하고 있다. 반도체 후공정 장비업체 관계자는 “반도체는 클러스터로 움직이기 때문에 대기업이 투자를 해야 우리 같은 중소기업에도 기회가 온다”며 “이미 국내 소부장 생태계는 경쟁국에 비해 많이 뒤처져있는데 투자까지 활성화가 안 되면 경쟁력은 더 낮아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기재부는 세수가 줄어든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오히려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늘려 파이가 커지면 세수는 당연히 더 늘어날 것이다”라며 “경쟁국들이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걸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공제율 8%에서 머무는 건 경쟁에서 싸워보지도 않고 지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 앞다퉈 경쟁국에 공장 설립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1위인 대만 TSMC는 각국 지원책에 힘입어 미국에 400억달러(약 53조원), 일본에 1조2000억엔(약 11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특히 TSMC 미 애리조나 피닉스 공장엔 3nm(나노미터·10억분의 1m) 미세 공정이 적용될 예정이다.

지난 6일(현지시각) 이곳에서 열린 장비 반입식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팀 쿡 애플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이 참석해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자축했다. 쿡 CEO는 “애리조나 사막에 씨앗이 심겨졌다”며 “오늘은 시작일 뿐이며 애플은 이 씨앗이 성장하도록 도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TSMC 반도체를 아이폰 등에 쓰겠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향후 반도체 공급망은 이곳 미국이 담당할 것이다”라며 “TSMC는 미국에 하이테크 일자리 1만개를 만들고 사람들의 삶을 실제로 나아지게 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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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현지시각) 팀 쿡 애플 CEO가 미 애리조나 피닉스에 지어지는 대만 TSMC 반도체 공장 장비 반입식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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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반도체 첨단 공장이 경쟁국에 몰리는 상황이 지속되면 국내 반도체 생태계가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업계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세계 1위 삼성전자도 국내보다 지원책이 다양한 해외 각국의 ‘러브콜’을 받고 있고 메모리 세계 2위 마이크론 역시 미국 뉴욕주(州)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공장을 세우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결국 반도체 인재들이 한국에 모이지 않고 밖으로 떠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업계에 30년 이상 몸담았던 양향자 무소속 의원(국민의힘 반도체특위 위원장)도 “반도체 시설 투자만큼 중요한 게 인재를 유치해 생태계를 발전시키는 일인데, 국내에 남아있으려고 하는 반도체 관련 석사·박사 인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글로벌 첨단 산업 지형이 하루가 다르게 빨리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을 반도체 허브 국가로 키우지 않으면 많은 인재가 한국을 떠나 경쟁국과의 격차는 급속도로 커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기재부는 세수 관리 상황을 감안해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일회성으로 지출되는 보조금이 아닌, 지속적인 세액공제를 적용하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다”라며 “미국은 25% 세제공제에 비우호국 수출 여부 등 지원 조건을 까다롭게 따지고 있고, 대만은 반도체 기업만 따로 분류하지 않고 이들을 첨단 산업군에 묶어 시설 투자 5% 세액공제를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양한 해외 국가의 지원책을 모니터링하고 있고, 이를 충분히 감안해 국내 지원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현재 논의 중이기 때문에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지희 기자(h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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