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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불량해서', '꿈 때문에' 애꿎은 사람 고문…이춘재 사건 관련 인권침해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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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진실화해위, 제48차 위원회 열고 진실규명 결정
전과자·불량배 등 용의자 지목돼 고문·증거조작
범행 입증 증거 없자 '허위 증거물'로 자백 강요
'불량해서' '다방 종업원 첩보로'…강제연행·감금
"국가가 피해자에 사과 및 피해 회복 조치" 권고
뉴시스

[서울=뉴시스] 2020년 7월2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이춘재 1987년 8차사건 관련, 수사 참여 경찰관과 검사 등 8명에 대해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그래픽=안지혜 기자) hokm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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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전재훈 기자 =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 화성, 수원, 충북 청주 등에서 여성을 상대로 살인과 강간을 저지른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당시 용의자로 지목된 복수의 시민들이 경찰 수사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경찰은 당시 수사 과정에서 전과자나 독신자, 불량배 등을 범행 현장 인근에 거주하거나 배회했다는 이유로 피의자로 지목, 장기간 불법체포·감금·복역·가혹행위와 함께 자백을 강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8일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에서 제48차 위원회를 열고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용의자 등 피해자에 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에 회복 조치를 권고했다고 9일 밝혔다.

'20년 옥살이' 윤성여씨 외에도 6명 진실규명 신청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은 이춘재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화성, 수원, 청주에서 여성을 상대로 연쇄적인 살인과 강간을 저지른 사건이다. 이춘재 검거 전까지 '화성 연쇄살인사건'으로 불리며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았지만, 2019년 8월 증거물 DNA 분석 결과 이춘재가 범인으로 지목됐다.

연쇄살인 8차 사건 용의자로 지목됐던 윤성여씨가 20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인 파장이 컸는데, 윤씨 외에도 여러 피해자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씨를 포함해 총 7명이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수사과정에서 용의자로 지목돼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지난해 1월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지난 5월 조사에 착수한 진실화해위는 "조사 결과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고 결론냈다.

진실화해위가 경기남부경찰청 및 수원지검에서 입수한 자료와 전 화성·수원·서대문·청주경찰서 소속 경찰관 43명을 조사한 결과, 수사과정에서 ▲불법체포 및 불법 구금 ▲수사과정에서의 가혹행위 ▲자백강요 및 증거조작 및 은폐 ▲일상적인 동향감시 및 피의사실 공표 등 인권침해 ▲김현정 사건의 은폐 조작 등의 인권침해가 있었던 것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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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뉴시스] 김종택기자 =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춘재가 34년 만에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2020년 11월2일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사진은 이춘재가 출석한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 501호 법정. 2020.11.02. jtk@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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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해서' '다방 종업원 첩보로'…엉뚱한 사람 잡은 경찰


이춘재 살인사건 수사 당시 수사본부는 세 차례에 걸쳐 이춘재를 용의자로 수사하였으나, 비과학적인 증거방법에 매몰돼 이춘재를 용의선상에서 배제했다고 한다.

대신 전과자, 불량배, 독신자 등이 뚜렷한 혐의가 없음에도 범행 현장 인근에 거주하거나 배회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영장 없이 연행당해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자백을 강요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명모씨와 정모씨는 당시 '현장 주변 불량성 있는 자'로 지목돼 연행돼 약 3일간 불법 구금된 채 조사를 받았고, 정모씨는 '사건 발생지 인근 거주' 때문에 연행돼 불법 구금됐다.

심지어 김모씨는 '제보자의 꿈' 때문에, 홍모씨는 '다방 종업원의 수상하다는 첩보'로 연행돼 불법 구금당했다.

이 사건 진실규명 신청인 7명은 최소 8시간에서 최대 10일(237시간) 동안 불법 구금돼 허위자백을 강요 받으며 가혹행위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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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뉴시스] 김종택기자 = 2020년 7월7일 오전 경기 화성시 한 근린공원에서 연쇄살인 사건 피의자 이춘재에 희생된 초등학생의 위령제가 열려 유가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2020.07.07. semail377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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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안 재우고, 공중에 매달아 때리고…경찰의 '범인 만들기'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당시 엉뚱한 용의자를 검거한 경찰은 허위자백을 받기 위해 피해자들을 구타 및 고문한 것으로 드러났다.

6차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7일간 불법 구금됐던 홍씨는 물적 증거가 없자, 경찰들이 잠을 재우지 않고 때리는 등 자백을 받기 위해 위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강압수사를 벌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그가 연행되던 당시 소지하고 있던 물건을 범행에 사용했다고 허위 자백할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수원 화서역 여고생 강간·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린 명씨와 정씨는 주먹과 발, 몽둥이로 안면, 흉부 등 전신을 맞았으며, 공중 매달리기 등 고문을 당했다고 밝혔다. 명씨는 자필로 진술서를 작성하지 못할 정도로 상해를 입었고, 결국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1차 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린 문모씨는 반성문, 메모지, 진술서, 자수서 등을 28회 이상 작성하면서 짜맞추기식으로 허위 자백을 강요 받았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손톱깎이가 나오자, 손톱깎이로 범행했다는 자백을 새로 받아내기도 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 위원장은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수사과정 중에 발생한 피해자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낙인효과로 인해 피해 사실을 드러내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어서 매우 안타깝다"며 "두 번 다시 이런 수사피해자들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kez@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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