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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울산서 사육곰 3마리 탈출 후 농장주 사망···비극은 왜 반복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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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기도 한 농장에서 곰이 녹슨 철장과 철조망 사이로 주둥이를 내밀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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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밤 울산에서 사육곰 3마리가 탈출하고 농장주는 숨진 채 발견되는 사고가 벌어졌다. 이 농장에서는 지난해 5월에도 사육곰이 탈출했다. 전문가와 환경단체는 곰 사육 농가가 관리 사각지대에 오랜 시간 노출됐는데도 환경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불법에 불법 반복된 결과


9일 환경부와 낙동강유역환경청(낙동강청)에 따르면 울산 울주군에 있는 사고 농가는 ‘미등록’ 사육시설이다. 해당 농가는 경기 용인에 있는 한 농가가 ‘불법 증식’한 사육곰을 2018년에 받아와서 키우고 있었다. 이번 사고가 일어난 농가에서는 지난해 5월에도 사육곰이 탈출했다.

반달가슴곰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따라 국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 있다. 야생생물법에 따라 국제 멸종위기종을 수출·수입할 때, 양도·양수할 때, 증식할 때는 환경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국제 멸종위기종을 사육하려는 농가는 적정한 사육시설을 갖춰서 환경부 장관에 등록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하지만 국제 멸종위기종의 ‘임대’에 대한 별도 규정은 없다. 한강유역환경청은 용인 농가가 울산 농가에 반달가슴곰을 불법 양도·양수한 것으로 보고 2019년 7월에 과태료 100만원을 부과했다. 하지만 용인 농가 농장주는 양도·양수한 것이 아니라 ‘임대’한 것이라며 과태료 처분에 대한 이의 신청을 했다. 용인 농가가 울산 농가에 사육곰을 ‘임대’한 것인지, ‘양도·양수’한 것인지에 대한 수원지법의 판단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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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한 농장에서 사육 곰이 깨진 시멘트 바닥과 녹슨 철장이 있는 시설에서 길러지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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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청은 2020년 7월 강은미 의원실의 질의로 미등록 상태이던 울산 농가에서 곰 사육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파악하고 고발에 나섰다. 이후 지난해 10월까지 낙동강청은 두차례 농가에 대한 고발을 해 농장주에게 300만원의 벌금이 두 번 부과됐다.

낙동강청은 지난해 5월 이후 지금까지도 곰을 몰수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는 어려웠다고 설명한다. 울산 농가에서 키우고 있는 반달가슴곰 시설에 대해 총 6차례 점검을 나갔고, 농가가 점검을 거부한 두 차례를 제외하고는 모두 점검했다. 낙동강청은 울산 농가가 용인 농가로부터 불법 양수·양도를 받은 게 법원에서 확인되어야만 몰수할 수 있다고 봤다.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지자체장은 유실·유기 동물이나 피학대 동물 중 소유자를 알 수 없는 동물, 소유자로부터 학대 받아 적정하게 치료·보호 받을 수 없다고 판단되는 동물은 구조하여 보호조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낙동강청은 4차례 조사에서 신체적 학대 등을 발견하지 못했다.

환경부가 몰수·보호조치를 한다고 해도 곰이 머물 수 있는 시설이 없다. 환경부는 지난 1월 사육곰협회, 4개 시민단체, 전남 구례군, 충남 서천군과 함께 ‘곰 사육 종식을 위한 협약서’를 발표해 2026년부터 곰 사육을 금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사육곰을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은 2024년 구례에, 2025년 말까지는 서천에 완공될 예정이다. 당시, 사육곰협회는 농가가 사육곰이 보호시설로 이송되기 전까지 안전하고 건강하게 관리하겠다고 협약했다. 이번에 사고가 난 울산 농가는 사육곰협회 소속이 아니다.

최태규 곰보금자리 프로젝트 대표는 “환경부는 이미 불법 증식한 곰을 몰수한 적 있는데, 불법 증식한 곰을 임대했다는 이유로 몰수하지 못했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은정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2020년 이 농가의 사례가 알려진 이후 2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최소한 곰들이 원주인에게 돌아갈 수라도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 사고”라며 “야생생물법에 국제 멸종위기종을 ‘임대’할 때의 조항이 없지만, 불법 증식으로 태어난 멸종위기종 곰을 임대한 것 자체가 낙동강청·환경부가 문제에 대해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환노위 계류 중인 ‘사육곰특별법’ 통과시켜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는 지난 5월 발의된 ‘곰 사육 금지 및 보호에 관한 특별법안’이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곰이 부적절한 환경에서 사육되거나 학대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곰 사육을 금지해 곰을 인도적으로 보호하고 관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법안은 “누구든지 곰의 부산물 채취 등을 목적으로 사육곰을 사육하거나 증식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곰 사육을 포기한 농가가 보호시설에 곰을 이송하기 전까지 곰의 보호·관리를 위한 비용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최태규 대표는 “법은 웅담채취용으로 곰을 키우는 것 자체를 금지하기 때문에 곰 사육을 합법으로 풀어두면서 생기는 곰 탈출 문제를 원천적으로 막게 된다”며 “사육을 포기한 농가의 곰을 위한 보호시설을 만들고, 지원할 수 있는 실마리도 들어가있다”고 말했다.

정환진 환경부 생물다양성과장은 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환경부에 등록하지 않은 채 곰을 기르고 있는 곳이 더 있는지 전수조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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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국민동의청원에 ‘곰 사육 금지 및 보호에 관한 특별법안 통과에 관한 청원’이 9일 오후 3시 기준 1만639명의 동의를 받았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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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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