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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벤투가 빌드업? 오해였다...히딩크 보니 더 알것 같은 '팀 벤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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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벤투호 vs 2002 히딩크호



‘2022 팀 벤투’는 ‘2002 팀 히딩크’와 얼마나 닮았고 또 얼마나 다른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이 이끈 한국 축구 대표팀은 월드컵 첫 승을 넘어 4강 신화를 만들었다. 20년 뒤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감독은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을 16강으로 이끌었다. 두 그룹을 비교 관찰하면 20년을 관통하는 한국 축구 진화의 맥락이 보인다.

히딩크 오대영, 벤투는 삼대영 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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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루 벤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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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감독은 2002 월드컵 직전 대회인 1998 프랑스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한국을 5-0으로 무자비하게 눌렀다. 차범근 감독은 현장에서 경질됐다. 히딩크는 네덜란드를 4강에 올려놨다.

2002 월드컵을 앞둔 대한축구협회는 히딩크를 콕 집어서 모셔왔다. 개최국으로서 체면은 서게 조별리그는 통과시켜 주기를 바랐다. 입시를 코앞에 두고 ‘족집게 1타 강사’를 모시는 심정이었다.

2018년 축구협회에는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가 있었다. 당시 김판곤 위원장은 “‘어떤 방식으로 경기를 이길 것인가’ 질문을 던진 뒤 ‘경기를 주도하고 지배하면서 이긴다’는 철학을 가진 감독을 찾기 위해 다면 인터뷰를 했다”고 말했다. 2002년 히딩크에게 16강이라는 ‘성과’만을 바랐다면 2022년을 준비하는 감독에게는 한국 축구의 체질을 업그레이드 하는 ‘목표’를 원했던 것이다.

올해 2월 말레이시아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기 직전 김 위원장은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왜 벤투였는지’를 밝혔다. “그가 보여준 축구 철학, 경기를 이기는 방식, 지도자로서 걸어온 길 등을 꼼꼼히 체크했다. 또 벤투가 데리고 있는 코칭 팀이 탁월한 게임 모델과 훈련 프로그램을 갖고 있어서 선수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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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 히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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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는 최상의 환경에서 시작했다. 숙소·이동·경기장 등 홈 어드밴티지를 맘껏 누렸다. 축구협회는 K리그 개막을 9월로 미루면서까지 대표팀을 지원했다. 다만 선수 자원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유럽파는 이탈리아에서 뛰는 안정환(페루자), 벨기에의 설기현(안더레흐트) 뿐이었다.

벤투는 이와 반대였다. 그에게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손흥민(토트넘)을 필두로 황희찬(울버햄튼), 이강인(마요르카), 김민재(나폴리) 등 포지션마다 든든한 유럽파 8명이 있었다. 이들이 최상의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벤투는 충분한 지원을 받지는 못했다. 코로나19로 인해 A매치를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바람에 축구협회 곳간이 비었다. K리그 팀들이 월드컵 개막 직전까지 대표선수를 경기에 투입해 이들이 부상과 컨디션 저하로 힘들어했다. 오죽하면 벤투가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돈과 스폰서인 것 같다”고 분통을 터뜨렸을까.

히딩크는 네덜란드식 토털 사커를 지향했다. 체력을 끌어올려서 90분 내내 강력한 압박 축구를 하도록 주문하고,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골을 노렸다.

벤투에게는 ‘빌드업 축구’라는 이름표가 붙었다. 그런데 빌드업은 말 그대로 ‘공격 전개’라는 뜻이기 때문에 벤투 축구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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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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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는 ‘능동적인(PRO-Active) 축구’를 지향한다. 그는 “팬을 감동시키는 매력적인 축구를 하면서 이기고 싶다”고 말해왔다. 그의 축구를 간략히 정리하면 ①상대 분석을 바탕으로 게임 플랜을 세운다. ②수적 우위를 확보해 ‘프리맨’을 만든다. ③프리맨이 침투한 공간으로 전진패스를 보내 골 찬스를 만든다. ④공간이 안 나오면 타깃맨(최전방 스트라이커)에게 롱 볼을 보낸다.

수비에서도 능동적인 플레이를 지향한다. 상대 실수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볼 탈취를 시도한다. 여기에서 ‘채널링(Channeling)’ 개념이 등장한다. 공 잡은 상대를 사이드 쪽으로 몰아서 압박한 뒤 볼이 나올 구멍을 지키는 것이다. ‘토끼몰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벤투는 “공격을 하든 수비를 하든 90분 내내 우리가 경기를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비수끼리 패스를 주고받는 것도, 골키퍼에게 백패스를 하는 것도 상대를 끌어내고 프리맨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다. 벤투의 축구가 가장 잘 구현된 게 조별예선 1차전 우루과이전이다. 0-0으로 비겼지만 우리가 주도했고 우루과이는 자신들의 플레이를 전혀 하지 못했다. 가나전에선 타깃맨 조규성(전북·189㎝)이 헤딩으로 두 골을 따냈다.

히딩크는 2001년 프랑스와 체코에 잇따라 0-5로 참패하면서 ‘오대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럼에도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월드컵을 넉 달 앞두고 열린 북중미 골드컵 기간에도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했다.

벤투는 2021년 3월과 올해 6월 숙적 일본에게 잇따라 0-3으로 참패했다. 축구 전문가들이 “벤투는 고집불통이다. 매번 같은 선수만 쓴다” “빌드업에 너무 집착한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벤투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2021년 일본에 진 뒤 축구협회 임원에게 “내 축구에 대한 확신이 있다. 결코 변하지 않는다. 이런 축구를 할 수 없다면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히딩크와 벤투에게는 ‘선수들의 전폭적 신뢰’라는 공통점이 있다. 히딩크는 측근에게 “한국 선수들을 맡을 수 있어서 행운이다. 그들은 충성도가 매우 높고, 씨를 뿌리면 쑥쑥 자라난다”고 했다.

두 감독 선수들 대폭 신뢰 닮은 꼴

벤투는 ‘벤버지(벤투+아버지)’라 불렸다. 김판곤 감독은 “벤투호가 비판을 받을 때마다 선수들 반응을 봤다. 감독에게 쏟아진 질책을 알고 있었고, ‘우리가 더 잘 해야 한다’는 내부의 결속은 더 단단해졌다”고 회고했다.

벤투가 절대적인 신뢰를 받은 이유는 꼼꼼한 준비, 납득할 수 있는 트레이닝에만 있지 않다. 그는 ‘철저히 선수 편’이다. 컨디션이 나쁜 선수는 절대 무리해서 내보내지 않는다. 부상 치료 중이던 황희찬을 아꼈다가 포르투갈전에 투입해 극적인 결승골을 만들어 낸 게 대표적인 사례다.

‘2002 히딩크 팀’은 “잘 살아보세”를 외치던 70년대를 연상시킨다. ‘우리도 한번 안방에서 축구 강국들과 맞장 떠 보자’는 의지로 명장을 모셔왔고, 강력한 리더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지원하고 따랐다. 결국 월드컵 4강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2022 벤투 팀’은 1인당 소득 3만 달러 시대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하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우격다짐이 아니라 매력 있게 경기하고 아름답게 이기는 축구를 벤투는 심어주고 싶어 했다. 그리고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벤투호의 항해는 끝났고 선장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세상 흐름을 읽고 자신의 방향을 관철시키는 리더, 그를 신뢰하고 헌신하는 팔로워, 리더에게 시간을 주고 기다려줄 줄 아는 대중이 역사를 만들어간다. 벤투와 그의 조력자들이 남긴 경험과 데이터는 한국 축구가 소중하게 발전시켜야 할 자산이다.

■ ‘절대 의심하지 마라’ 손흥민의 강철 멘탈 분석한 책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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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 다우트(NEVER DOUBT)


“(벤투) 감독님께서 어떤 축구를 하는지 많은 분들이 의심을 하는데, 우리는 의심을 한 적이 없다.”

카타르 월드컵 16강을 확정한 뒤 주장 손흥민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어떤 순간에도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 ‘강철 멘탈’의 소유자 손흥민은 “누군가는 저에 대해 의심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제 능력을 의심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그는 2021~22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뒤 2022~23 시즌 개막 후 8경기 연속 골이 없었다. 그러나 손흥민은 스스로를 믿어 흔들리지 않았고, 아홉 번째 경기에서 후반 교체 투입돼 3골을 터뜨렸다.

손흥민의 놀라운 마인드셋을 분석한 『네버 다우트(NEVER DOUBT)』(중앙북스·사진)가 최근 출간됐다. 손흥민을 영국 현지에서 7년 동안 밀착 취재하고 있는 스포츠조선 이건 기자가 쓴 책이다. 전 세계 기자 중 손흥민과 가장 오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저자는 지금의 월드클래스 손흥민을 만든 과정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다섯 단계로 나눠 친절하게 설명한다.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즉각 반응하지 않는 연습’ ‘태풍이 불면 풍차를 달아라’ ‘N개 국어 능력자의 비밀’ 등 소제목만 봐도 손흥민의 고민과 분투, 용기와 미소를 떠올리게 된다. 인기 축구해설가 박문성·장지현 위원, 책벌레인 안익수 FC 서울 감독이 ‘강추’한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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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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