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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빌라왕'은 장기판의 말…배후엔 '컨설팅업체'가 있었다[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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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정다운의 뉴스톡 530

■ 방송 : CBS 라디오

■ 채널 : 표준FM 98.1 (17:30~18:00)

■ 진행 : 정다운 앵커

■ 패널 : 사회부 민소운 기자

편집자 주
가장 안전하고 포근해야 할 집이 끔찍한 악몽의 장소로 전락한다. 피땀 흘려 모은 전세금은 자취를 감추고 전세대출은 빚더미가 되어 삶까지 위협한다. 치밀한 전세사기 전면에는 소위 '빌라왕'으로 불리는 바지사장들이, 그 뒤에는 '배후세력'들이 판을 주도한다. 경찰이 집중 단속을 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전세사기꾼들은 '덫'을 놓고 서민들을 유혹하는 중이다. 피해 규모가 천문학적인 수준이라는 관측까지 나오는 가운데, CBS노컷뉴스는 전세사기가 드리운 어두운 그늘을 밀착 취재했다. 파멸로 이끄는 '검은 미로'를 만드는 조직과 체계는 예상보다 더욱 악랄했다.


[앵커]
최근 논란이 된 전세사기, 이제는 피해 규모가 어디까지 불어날지 예측하기도 어려운 상황인데요. 빌라 수백 채 명의를 가진 이른바 빌라왕들은 바지사장이라는 점, 앞서 보도했는데요. 그래서 이번에는 그 배후를 알기 위해 잠입 취재, 위장 취업을 해봤습니다. 연휴에도 쉬지 않는 CBS 사회부 민소운 기자 어서오세요.

[기자]
안녕하세요.

[앵커]
잠입 취재 내용을 말씀드리기 전에, 이 빌라왕 사건의 개요부터 잠깐 짚고 가야 해요. 구조가 복잡하거든요. 저희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빌라왕은 큰 장기판의 말일 뿐이고, 이 판을 주도하는 세력은 따로 있었다는 거죠?

[기자]
네 맞습니다. 이 전세사기 판을 주도하는 건 사실상 '부동산 컨설팅업체'입니다. 우선 이 판에는 여러 등장인물이 등장합니다. 건축주 등 매도인이 있고요, 공인중개사와 명의대여자, 즉 바지사장 등이 동원되는데요. 일단 컨설팅업체는 매도인에게 '빌라 거래를 도와주겠다'고 접근하고요. 그 다음엔 전세 매물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공인중개사를 통해서 세입자를 구하러 나서게 됩니다.

[앵커]
여기까지는 통상적인 부동산 컨설팅처럼 보이는데요, 문제는 뭔가요?

[기자]
문제는 '동시 진행' 수법인데요. '동시 진행'은 매매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전세를 놓은 다음 세입자와 전세계약을 맺고, 그 전세금으로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입니다. 남은 전세금은 컨설팅업체와 공인중개사가 나눠 가지고, 건축주도 매물을 팔아준 컨설팅업체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합니다.

이 다음 단계에서 '바지사장', 즉 '명의 대여자'가 등장하는데요. 매매계약까지 끝나면, 컨설팅업체는 어디선가 '바지사장'을 구해와서 바지사장 앞으로 명의를 돌려요. 바지사장은 100만 원 안팎의 리베이트를 받고 집주인이 됩니다. 이 바지사장이 이런식으로 계속해서 수십 번 명의를 대여해주면 결국 '빌라왕'이 되는 구조입니다.

[앵커]
애초부터 전세금을 떼어먹기로 작정하고 벌어지는 일이네요. 명목상 바지사장이 전세금 못 돌려주는 책임을 지는 주범이 되고 컨설팅 업체는 어디로 사라져요?

[기자]
정체를 찾기 어렵게 사라지는 거죠. 서울시복지재단 전가영 변호사 말 들어보시죠.

[인서트/서울시복지재단 전가영 변호사]
"(컨설팅)업체가 점조직처럼 다 움직이는 것들이라…그리고 사실은 그 정체를 찾기가 되게 어려운 상황이고.. 그 전화하셨던 번호로 다시 전화하면 없는 번호라고…"

노컷뉴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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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실체를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민소운 기자가 그 실체를 보기 위해서 직접 컨설팅업체에 취업해본거잖아요?

[기자]
네 제가 한번 일명 토스실장에 지원해봤습니다.

[앵커]
토스실장이 뭐에요?

[기자]
컨설팅업체의 '명의 사냥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명의 대여자, 즉 바지사장을 구해서 그들의 명의를 컨설팅업체에 '토스'해주고 건당 수수료를 챙기는 사람들입니다. 무주택자 명의를 구해올 경우 컨설팅업체는 한 건당 150만 원의 수수료를 토스실장에게 지급하는데요, 이 돈은 토스실장 70만 원, 바지사장 80만 원 정도로 나눠 가집니다. 그러다보니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토스실장은 바지사장을 많이 데려오거나, 한 명의 바지사장에게 명의를 계속해서 넘기라고 독촉할 수밖에 없게 되는 거죠.

[앵커]
직접 업체 사무실에 가서 취업 면접을 보고, 취업을 하고, 업체 담당자들이랑 같이 일을 해본건데. 어땠어요?

[기자]
가장 크게 든 생각은 '바지사장은 사람이 아닌 물건이었다' '사람의 이름이 돈을 버는 '수단'에 불과했다'는 겁니다.

업계에서 통상 바지사장, 즉 명의대여자는 '명자'나 '물건'으로 통용됩니다. 업체는 그냥 명의만 구하면 그걸로 끝이에요. 바지사장이 추후 어떤 위험에 처하게 될 지, 나중에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 지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토스실장들은 그냥 신용불량자든, 노숙인이든, 기초생활수급자든, 장애인이든 닥치는 대로 바지사장을 '사냥' 해오는 거에요. 사실상 토스실장이 바지사장을 '빌라왕'으로 키우는 실무자인 셈이죠.

업체 관계자들은 토스실장에게 심지어 사채를 쓰는 사람들, 도박 빚을 진 사람들을 데려와도 된다고 조언하는데요. 업체 관계자들의 말 직접 들어보시죠.

[인서트/A컨설팅업체 팀장(음성 변조)]
"솔직히 얘기하면 막말로 사채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한테 가서 우리 거래처로 이렇게 하자고 하면…얘네(사채업자)들은 어떻게든 돈을 받아야 해요. 그 사람들한테 연결해 주면 소개비를 얼마를 주겠다. 이런 식으로"

[인서트3/동료 토스실장(음성 변조)]
"일도 안하고 토토 하는 사람들이…어차피 지금 빚이 있고 자기는 이제 갈 때까지 갔고 이제 더 잃어봤자 뭐 있겠냐 어차피 신용불량자인데"

[앵커]
사채업자한테 바지사장 명의를 넘기라는 거래까지 이루어지는 상황이군요. 민 기자도 어쨌든 위장취업을 해서 실제로 바지사장, 명의자들을 구하러 다녔는데 어렵지 않았어요?

[기자]
놀랍게도 10분 만에 구했습니다. 제가 사기 치는 능력이 뛰어나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앵커]
어떤 노하우를 전수 받은 거에요?

[기자]
일단 면접을 보고 나름대로 체계적인 직무 교육을 받은 뒤에 본격적인 토스실장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각종 SNS에 바지사장을 구하는 글, 그러니까 '무자본 갭투자자 모집' 글을 올리기 시작한 지 10분 만에 30대 남성에게 급전이 필요하다며, 벌써 명의를 넘기는 게 세 번째라며 연락이 왔습니다. 직업이 없고 천 만 원 정도의 빚이 있는 남성이었습니다.

또 20대 남성 또한 신용불량자인데 가능하냐며 연락이 왔는데요. 이 남성도 가끔씩 일용직 노동을 하는 무직자였고, 명의 대여가 세 번째라고 했습니다.

오프라인에서도 바지사장을 구하러 나서봤는데요. 남구로역 새벽인력시장에서, 서울역에서 노숙인 등에게 전단지를 주며 명의 대여를 권해봤습니다. 노숙인들의 말, 들어보시겠습니다.

[인서트/노숙인들]
"(기자 : 2년 후에 수익이 나면 그걸 이제 선생님들하고 저희하고 나누는 거에요). 오늘 갈게요. 오늘 당장 줘요? 우리 따뜻한 데서 잘 수 있는 거죠?"

이렇게 노숙인들은 곧바로 혹하는 눈치였습니다. 토스실장으로 일해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스쳤는데요. 다가올 미래보단 당장 눈앞의 돈이 급한 이들의 간절함, 그리고 그들의 간절함을 악용하는 컨설팅업체의 악랄함이 합쳐져 애먼 피해자를 양산하는 범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착잡할 따름이었습니다.

[앵커]
귀경길에 이 방송 듣는 분들 굉장히 충격적이라고 느끼실 것 같아요. 정말 화가 나네요. 그런데 이와중에 또 새로운 전세사기 유형이 포착됐어요. 이미 사고가 난 매물에 또 '깔세'를 놓는 방식이라고요. 깔세라 하면 소위 말하는 사글세를 의미하는 건가요?

[기자]
네 깔세는 부동산 업계 은어인데요. 보증금 없이 임차기간만큼의 월세를 한번에 선지급하는 형태입니다. 보통 경기 침체기에는 장기 임대가 부담스러우니, 상가 점포를 단기 임대 하거나 일정한 소득이 없는 사람들이 고시원 등에서 방을 구할 때 이런 계약을 하게 되죠.

[앵커]
깔세, 사글세 가지고는 또 어떤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거에요?

[기자]
전세사기 일당이 경매에 넘어갔거나 경매에 넘어갈 위험이 있는 매물을 명단으로 정리해 공인중개사 등에게 넘깁니다. 그러면서 해당 매물에 깔세 세입자를 구해주면 200~500만 원 수준의 수수료를 주겠다는 제안을 하는 거죠.

[앵커]
월세도 살기 어려운 조건의 사람들을 상대로, 이미 경매로 넘어간 매물을 세놓는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저희가 '깔세 매물 명단'을 단독 입수했는데요. 실제로 서울·경기·인천 등에 있는 신축 빌라·오피스텔의 주소와 전용면적, 계약 만기일, 보증금 등이 상세히 적혀있었고요. 이 명단에 오른 주택 등기부등본을 떼보니, 특정 부동산 개발·임대·컨설팅업체나 개인이 각각 30여채가 넘는 매물을 소유했고, 범죄 수법과 사후 대처 과정 등을 공유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 깔세 명단을 보고 저희 취재팀이 나흘 동안 그 주택 현장을 돌았어요. 깔세 명단에 있는 매물들에는 여기저기 경매 안내문이 붙어 있었고요. 세금 체납으로 압류됐거나 이미 강제경매가 개시된 곳도 있었습니다.

노컷뉴스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상담받는 전세사기 피해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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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그래도 이런 사기를 막기 위해 우리가 사전에 확인할 여러 장치들이 있잖아요.

[기자]
업계 관계자 말을 들어보니까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보험을 든 세입자들이 임차권 등기를 하고 집을 빼면 HUG에서 이걸 경매 처분을 하는데, 그 처리 기간이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그 사이를 틈타 전세사기 일당이 깔세를 놓고, 깔세로 400~500만 원을 받아 나눠가지는 구조라고 합니다.

[앵커]
이미 사기를 쳐서 경매에 넘어간 매물에 또 '깔세'를 놓아 끝까지 편취를 한다…마른 걸레에서 물을 짜내는 수준인데요, 대책이 시급해 보입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민 기자 수고하셨습니다.

[기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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