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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코로나가 받치고 인터넷이 열어준 '러시아발 탈북' 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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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파견 北 노동자 9명 잇단 탈북
중국~동남아·몽골 경로보다 덜 알려져
대북 제재로 불체자 된 北 노동자 다수
"60~70% 한국행 희망, 골든타임 부족"
한국일보

러시아의 한 지역에서 지붕 공사를 하고 있는 북한 노동자들. 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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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벌이를 위해 러시아에 머물던 북한 노동자 9명이 지난해 말 국내에 연달아 입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러시아 탈북' 루트가 주목받고 있다. 러시아는 굶주림과 폭정에 지친 북한 주민들이 그간 주로 택해 온 탈출 경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 해외 파견 노동자들은 코로나19로 국경이 봉쇄돼 북한으로 돌아갈 길이 막힌 데다 인터넷을 통해 접한 한국 문화에 영향을 받아 탈북을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코로나로 급감한 국내 입국 탈북민…2019년 1047명→2022년 67명


통상 북한 주민들의 탈북 경로는 △북한→중국→동남아(태국·라오스·베트남) △북한→몽골 등이 꼽힌다. 이에 비해 러시아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코로나19 발발 직후인 2020년 초 북·중 국경이 폐쇄되면서 중국 루트가 막혔다. 인접국 몽골은 국제사회 시선을 의식해 유엔 대북제재 결의에 따라 북한이 파견한 노동자들을 2019년 12월 22일까지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은 사각지대에 놓였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26일 "북한은 외화벌이를 위해 2019년에만 약 2만 명의 건설·벌목 노동자 등을 러시아에 단체 파견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대북제재에 따라 같은 해 12월 이전 귀국했지만 일부는 타이밍을 놓쳤다. 이후 코로나로 오도 가도 못하고 비자가 만료된 노동자들은 불법 체류자 신세로 전락했다.
한국일보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이 함께 생활하는 숙소. 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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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 남은 북한 노동자들은 끼니를 때우기 위해 2, 3명씩 짝을 지어 공사현장을 돌며 일했다. 그렇게 2년간의 떠돌이 생활이 탈북을 결심한 계기가 됐다고 한다. 파견 노동자 규모가 줄면서 감시의 강도가 약해졌다.

러시아 현지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북한 노동자들이 공동 숙소의 같은 방에서 20여 명씩 생활할 때는 자유롭게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조차 어려웠다"면서 "하지만 개인 생활을 하게 되면서 인터넷으로 남한 문화와 정보를 접했고 '남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국내 입국 탈북민 수가 급감한 것도 이들에게는 기회였다. 지난해 67명에 그쳐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1,047명)과 비교해 94%나 급감했다.

탈북단체 관계자는 "북한 주민이 모스크바 주재 유엔난민 고등판무관실에서 임시 보호를 적용받은 뒤 우리 통일부가 이들의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센터(하나원) 입소를 허가해주는 데 통상 2, 3년이 걸렸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탈북민 감소로 하나원이 사실상 비어 있어 입국 절차가 한층 빠르게 진행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다만, 러시아를 통한 탈북은 언제라도 기회가 사라질 수 있다.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져 북한이 국경 봉쇄조치를 풀면 러시아 파견 노동자가 송환 1순위로 거론되기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은 "러시아의 북한 노동자 10명 중 6, 7명은 한국에 오려는 의지가 있다"면서 "북러 간 철도 운행 재개 등의 일정을 감안하면 탈북을 위한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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