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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가스비 폭탄' 쪽방촌 직격…"생활비 줄여 난방비 내요"[TF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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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에너지바우처 지원 한시적 확대 예정
가정집 가스비 아끼려 대중목욕탕 가기도
목욕탕, 서비스 줄이고 이용요금 인상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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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비 폭등이 쪽방촌 사람들의 숨통을 죄고 있다. /조소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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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ㅣ정채영 기자·조소현 인턴기자] "집주인이 난방비 올리면 그냥 끌려가는 거예요. 쫓겨날 수 있으니..." (쪽방촌 거주 이수열 씨)

체감온도가 영하 12도까지 떨어진 27일 오전. <더팩트> 취재진이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한 건물 현관문을 두드리자 두꺼운 패딩을 입은 박석규(58) 씨가 문을 열었다.

박 씨의 1평 남짓한 '집'은 따뜻하지도 포근하지도 않았다. 매서운 칼바람이 창문 틈으로 밀려 들어왔고 바닥은 냉골이었다. 박 씨는 "난방비가 올라 보일러는커녕 전기장판도 켜지 않는다"며 "점점 더 힘들어진다"고 막막해했다. 박 씨가 말할 때마다 입에선 하얀 입김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왔다.

가스비 폭등은 쪽방촌 사람들의 숨통을 죄고 있었다. 쪽방촌 사람들의 상당수는 기초생활수급자들이다. 가스비 같은 공과금이 오르면 더 이상 줄일 것도 없는 최소한의 생계비인 '기초생계비'를 줄여야 한다.

20만 원대 월세방의 난방비 납부 방식은 제각각이다. 월세에 포함된 곳도 있고 별도로 납부해야 하는 곳도 있다. 박 씨는 "집주인이 전기세, 가스비를 따로 받는다"며 "월 2~3만 원 정도가 난방비로 나가는데, 가스비가 오르면 여기서 더 나올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건물에 사는 이수열(76) 씨도 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 이 씨는 "기초생계비로 58만 원을 받는데 월세에 난방비를 별도로 내야 해서 가뜩이나 빠듯한 기초생계비가 더 모자랄 것 같다"고 토로했다.

가스비 인상이 화두에 오르자 정부는 올겨울 취약계층의 에너지바우처 지원금액을 한시적으로 늘린다고 밝혔다. 현재 15만2000원인 바우처 지원은 30만4000원으로 2배 인상될 예정이다. 가스공사도 사회적 배려 대상자 160만 가구에 요금 할인을 2배로 확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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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의 공용화장실. 이 층에 거주하는 9명 모두 이 화장실을 이용한다. /조소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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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비를 겨우 낸 쪽방촌 공용화장실은 따뜻한 물이 나오면 다행이다. 다른 사람이 사용하고 있으면 근처 공원의 화장실로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 천모(61) 씨는 영하 12도까지 내려간 날씨에도 울며 겨자먹기로 십수분 거리의 화장실로 향했다. 천 씨는 "화장실도 샤워도 번거로운 건 당연하다"며 "날씨가 추울 땐 물이 얼어 화장실이 막히고 샤워할 때 따뜻한 물이 안 나오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집에서 씻지 못하거나 가스비가 아까운 이들은 대중목욕탕을 찾지만 가스비 인상의 여파를 피하지 못한다. 목욕탕은 아무리 가스비가 올라도 물을 데우기 위해 난방을 끊임없이 돌려야 한다.

올해로 개업 21주년을 맞은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한 목욕탕은 코로나19가 주춤한 뒤 조금씩 손님이 드나든다. 코로나 때 인건비를 아끼려고 격일로 일하던 직원들도 이제야 매주 출근하고 있다.

이 목욕탕을 함께 개업한 70대 A씨는 "2~3년을 코로나로 까먹었는데 코로나가 풀리고 나니까 가스비 걱정까지 해야 한다"며 "가스비를 이렇게 많이 쓰는 곳에 혜택을 줘야 하는데 영세한 곳에만 주니까 어디 하나 고장 나도 고칠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은 난방비를 아낀다고 집에서 머리도 감기 싫어서 오는 사람도 있다"며 "주변에 주택이나 빌라가 많아서 겨울에는 수도관이 얼거나 화장실이 추워서 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라도 와야 겨우 돈을 번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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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후암동의 한 목욕탕 앞에 영업을 알리는 팻말이 놓여있다. /정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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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겨울은 목욕탕의 계절이다. 평소 같으면 날씨가 쌀쌀해질 때를 기다리는 목욕탕이지만, 지금은 관리비와 월세만 겨우 남기며 영업하고 있다.

용산구 후암동 주택가에 문을 연 지 70년도 넘은 작은 목욕탕은 어르신들에게 물리치료소로 불린다. 동네 어르신들은 수시로 이곳을 찾아 피로를 푼다. 금모 씨는 10여 년 전 이 목욕탕을 인수했다.

원래는 탕 두 개에 사우나를 두 방이나 운영했지만, 코로나19로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사우나 한 방은 문을 잠가놨다. 손님한테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점점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 씨는 "원래도 가스비만 250만 원 나오는데 이번에 고지서를 받으면 기절할까봐 겁난다"며 "7시에 문을 닫아도 훨씬 전에 보일러를 끌 수밖에 없다. 손님들이 춥다고 하는데 이제 하루종일 틀어놓기에는 감당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관리비를 아끼기 위해 목욕탕에 오는 사람들은 한 번에 많은 물을 쓰고 간다. 그는 "자기 집 아니라고 물을 계속 틀어 놓는 것도 문제"라며 "근처에 큰 목욕탕도 문을 닫았는데 목욕탕이 없어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금 씨는 작년에 1000원 올린 이용요금을 올해도 1000원 더 올려야 할 것 같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12월 도시가스 요금은 1년 전보다 36.2%, 지역난방요금은 34% 인상됐다. 특히 이달 들어 날씨가 급격히 추워지면서 높게 올려놓은 보일러를 보는 사장님들은 초조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chaezero@tf.co.kr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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