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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美가 中에 밀린다고? 인구 변화 보면 붕괴하는 건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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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무부 출신 지정학 전략가

인구 구조 분석해 국제 정세 예측

조선일보

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

피터 자이한 지음|홍지수 옮김|김앤김북스|544쪽|2만원

“인구 구조적으로 지난 75년(1940년대 후반~)은 더할 나위 없는 태평성대였다. 그러나 선진국에선 1960년대부터 이미 폭락하기 시작한 출산율은 수십 년 동안 속도가 붙었다. 중국, 러시아, 일본, 독일, 이탈리아… 2030년 전까지 경제력을 갖춘 대부분의 국가에서 근로 연령층이 대거 은퇴한다. 개발도상국도 같은 길을 걷는다. 2030년대엔 태국, 쿠바, 폴란드 등이 ‘인구 해체’를 겪는다. 전망이 밝은 것은 미국뿐이다.”

저자 피터 자이한은 국가 간의 지리 관계를 통해 국제 정세를 분석하는 지정학(地政學∙geopolitics) 전략가다. 호주 주재 미 국무부에서 근무했고,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 등의 저서를 펴냈다. 그는 ‘국제 보안관’ 역할을 맡아온 미국이 자국 중심의 국제 질서에서 손을 떼고, 각자도생의 세계가 될 것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세계의 인구구조 분석을 통해 앞으로의 국제 정세를 예측한 이번 책에서 그는 현재 세계적인 저출산·고령화 현상으로 인해 ‘미국만이 살아남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진단한다. 미국의 인구구조는 다른 나라에 비해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1990년대 중반 출생)가 은퇴하는 베이비붐 세대(1940년대 중후반~1960년대 중반 출생)의 충격을 흡수할 만큼 많다는 것. 문화마저 미국의 편이다. 미국은 다른 나라보다 이민에 훨씬 친화적이어서 저출산으로 인한 부족한 노동력을 세계 각지에서 온 노동자들로 충당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출산·고령화는 사실 19세기 산업화의 시작부터 조용히 진행되어 온 현상. 유럽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은 이미 산업화∙도시화의 부작용을 겪고 있다. “산업화 이후 여성이 대중교육을 받게 되고 스스로 소득을 올리게 되면서,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워졌다. 공장에서 일주일에 몇십 시간을 일하면 임신할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출산율은 한 사회의 산업화 정도와 어느 정도 일치한다. 1700년 영국 여성은 평균 4.6명의 자녀를 두었다. 이는 1800년의 독일 여성, 1900년 이탈리아 여성, 1960년 한국, 그리고 1970년대 초 중국 여성이 둔 평균 자녀의 수다. 여기에 여성 인권의 신장과 피임 방법의 발달 등이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저자는 “현재의 세계 인구구조는 20~40년 전에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지났다”고 말한다.

문제는 그동안 인류가 경험했던 경제 성장은 인구 증가를 전제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경제 성장은 많은 인구, 즉 근로자와 소비자의 증가로 인해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반대를 걱정해야 한다. 근로자가 대거 은퇴하면 노인 계층을 부양해야 할 국가 재정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반면 세금을 낼 젊은 세대는 부족하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2050년대엔 방글라데시, 인도, 멕시코도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를 경험하게 된다.

경제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그동안 미국이 제공해왔던 세계 경제 시스템마저 냉전 시기 때와 같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운송∙금융∙제조업과 농업 등이 대표적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구축한 세계 질서인 브레튼우즈 체제(Bretton Woods∙달러 중심의 금환본위제)에서 미국은 소련에 맞설 동맹국들을 끌어들이는 대가로 그 국가들에 자국의 시장을 개방하고, 세계 곳곳에 군사력을 투입해 안전한 무역 환경을 보장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난 상황에서 미국은 경제적인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자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운영할 유인책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 저자는 “트럼프와 바이든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위기는 미국이 운영해왔던 공급 사슬이 끊어지며, 선명히 드러난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고령화와 세계 질서 변화로 인해 가장 큰 위기를 맞게 되는 대표적인 국가가 미국의 패권 경쟁 상대인 중국이다. “중국인의 평균 연령은 최근 미국 평균을 추월했고, 2019년도 중국은 역대 최저 출산율을 기록했다. 중국의 노동 인구와 총인구는 2010년대에 정점을 찍었는데, 이들은 오랫동안 출산율을 억눌러왔기 때문에 이제 자녀를 두는 연령대인 20대가 ‘동나고’ 있다.” 저자는 고령화 파도가 덮친 중국은 이미 붕괴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중국은 이제 저비용 생산국이 아니지만, 고품질 물품을 생산하는 국가가 되지도 못했다.” 근로자의 대거 은퇴로 자국의 생산을 소화할 만한 소비 수요가 감소하는데, 그동안 수요를 뒷받침해줬던 미국 시장이 달라졌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의 미중(美中) 경쟁은 시간 싸움에 불과하다. 같은 이유로 유럽 역시 현재의 경제 구조가 붕괴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따라서 북미 지역과 나머지 세계의 간극이 더욱 벌어질 것이라는 것이 책의 결론이다. 암울한 미래 속에서 벗어날 뾰족한 대안은 제시하지 않는다. 다자주의(多者主義)를 비롯한 국가 간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 크게 고려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하지만 인구 구조의 붕괴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됐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특히 우리 사회에 울리는 경고가 크게 다가오는 책. “한국은 수출과 수입 의존도가 가장 높으며, 고령화가 가장 빠르고,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다. 한국은 인구 감소 과정을 대표하는 사례다.” 원제 The End of the World Is Just the Beginning.

[윤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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