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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60년 넘게 비탈길·계단 오르내리던 언덕에 등장한 ‘경사형 엘리베이터’[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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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웨딩타운에서 작업자들이 경사형 엘리베이터 설치 공사를 벌이고 있다. 한대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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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웨딩타운 끝자락. 크레인에 올라탄 작업자들과 안전끈을 연결한 뒤 철구조물에 올라간 작업자들이 분주히 엘리베이터에 등을 설치하는 작업을 하느라 분주했다. 경사형 엘리베이터는 오는 31일 준공 예정일을 앞두고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인도에 있던 한 안전요원 이 “위에 올라가 보면 노인정도 있다”고 귀뜸했다.

서울 시내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경사형 엘리베이터의 꼭대기가 궁금했다. 올라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아현역 쪽으로 걸어 내려가자 골목길이 나왔지만 55개의 계단을 올라야 했다. 다시 비좁은 골목길을 지나면 다시 10개의 계단이 나왔다. 엘리베이터 구조물 상층부에 도착해 보내 탑승구와 함께 새로 지은 노인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동신 노인정’. 30여년째 무허가 건물로 있다가 엘리베이터 공사와 함께 새 건물로 단장하면서 아직 간판을 내걸기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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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웨딩타운에 설치 중인 경사형 엘리베이터 전경. 한대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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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정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한결같이 “60여년 만에 비탈길 대신 엘리베이터로 편하게 다니게 됐다”며 반겼다. 이 동네 토박이인 강백규 어르신은 “1960년대부터 집들이 들어섰지만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일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현역 쪽으로 가려면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야 하고, 이대역 쪽은 한참 비탈길을 돌아서 가야 했다”고 말했다. 김재만 어르신은 “계단이 너무 높고 가팔라서 노약자들이 이용을 꺼리고 어쩌다 이용하려면 중간에 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근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 단지 주민들도 언덕을 오르내리는 일은 쉽지 않은 난제였다. 일부 주민들은 사무용 건물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눈치를 보면서 ‘실례’를 범하기도 했다. 웨딩드레스 가게를 운영하는 한 업체 대표도 “잡초만 있던 언덕에 듬직하게 생긴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동네 명물 역할까지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 부지는 수십 년 동안 잡풀만 무성한 채 방치돼 있었다. 가파른 언덕이기 때문에 마땅한 대안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주민들은 보행로 확보를 위해 서울시와 서대문구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했다. 서울시의 지원금 35억원을 받은 서대문구가 2021년 8월 공사에 착공했다. 이 예산은 15인승 엘리베이터 설치와 경로당 신축에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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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웨딩타운 주변 좁은 골목 옆에 한 주민이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한대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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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정 어르신들은 물론이고 아파트 주민들도 오는 31일부터는 높이 20m의 언덕에 비스듬히 설치돼 42m를 운행하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게 된다. 경사형 엘리베이터는 생소하기 때문에 공사 광경을 지켜보는 시민들도 많았다. 일부는 사진으로 남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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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웨딩타운에 설치 중인 경사형 엘리베이터가 들어서기 전의 부지 전경. 가파른 언덕에 잡풀만 무성한 채 수십년째 방치돼 있었다. 서울시 제공


서울 시내 최초의 경사형 엘리베이터는 2018년 용산고등학교 동쪽 후암동과 용산동2가의 경계를 이루는 계단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설치됐다. 서울시는 경사도가 심해 이동이 불편한 구릉지 주민들을 위해 지난해 성동구 옥수교회 옆과 금천구 금동초등학교에 각각 수직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올해는 북아현동에 이어 오는 7월에는 중구 대현산 배수지공원 안에 34m 높이에 100m를 오가는 모노레일도 준공할 예정이다.

한대광 기자 chooh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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