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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투사가 된 두 엄마 “참사·재해 바뀌지 않는 세상 너무 처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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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회의, 이태원 희생자·산재 피해자 어머니 초청

“아픔 공감하지 못하는 대통령, 지식인들이 비판해줬으면”


한겨레

설날인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앞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시민희생자들에 시민들이 남기고 간 추모메시지가 붙어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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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자식을 잃은 두 어머니가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족과 산업재해 유족이 이런 제목으로 열린 대담에서 매번 반복되는 대형 참사와 산재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는 정부와 정치권을 규탄하고 연대의 목소리를 냈다.

28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마포중앙도서관에서 한국작가회의 연대활동위원회 주최로 열린 대담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지한씨 어머니인 조미은씨와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김용균재단 이사장)가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며 시민사회에 연대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날 박관서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은 희생자 유족들에게 “시인으로서 어머니들께 죄송하다”며 “시 쓰는 일은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시인으로서) 안 좋은 일을 예견하고 다시 못 일어나게, 없애는 데 앞장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시인 등 작가 40여명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작가들은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로 세상을 떠난 이들과 지난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고 김용균씨를 애도하는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전비담 시인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애도시 ‘공무도하’를 낭송했다.

“지금 어디야?”1/“이태원에 사람들 심폐소생하고 난리 났는데 어디야?”1/“거기 너무 복잡해서 전화기 잃어버린 거지?”1/“제발 전화기 좀 봐”1/…/사랑해1//…//그 모든 공무원의 공무가 제대로만 있었어도/사랑해의 숫자 1들이 꼿꼿이 선 채로 거기 빠져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전 시인의 시는 참사 당시 ‘실종된 공무’를 비판했다. 전 시인은 “참사 진상규명이 끝까지 될 때까지 힘을 보태고 싶어 부족하지만 유족들 앞에서 글을 읽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연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태원 참사 유족 조미은씨는 “지금도 아들을 그리워하며 아들에게 카톡을 매일 보내고 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슬픔을 어떤 언어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작가분들이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조씨는 “참사가 발생한 지난해 10월29일을 기점으로 아들 지한이에게 다이어트 음식을 해주던 너무나 평범한 엄마였지만, 지금 나는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주기 위해 투사가 됐다”고 말했다.

4년 전 아들 김용균씨를 산재로 먼저 떠나 보낸 김미숙씨 또한 “지금도 여전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생각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보통의 엄마로, 사회에 별로 관심 없이 살던 내가 주변 시민들의 힘으로 재단을 만들고 대표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항상 가슴에 불덩어리가 타오르는 듯한 아픔과 분노, 소름 끼치는 세상이 저를 이렇게 만든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한겨레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열린 한국작가회의 연대활동위원회 주최 ‘여기 자식을 잃은 두 어머니가 있습니다’ 대담에서 고 이지한씨 어머니 조미은씨가 발언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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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은 매번 대형 참사와 산업재해가 반복되고 있지만, 책임을 회피하고 노동자들의 안전을 외면하는 정부와 정치권을 비판하기도 했다. 조씨는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에서 보내온 수사결과통지서 9장을 보고 정말 원통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보고받지 못했다’, ‘몰랐다’, ‘책임 없다’로 일관하면 무사 통과되는 것이냐.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공직자들이 책임질 일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 13일 특수본은 이른바 ‘윗선’으로 지목되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 윤희근 경찰청장 등은 재난안전법상 특정 지역의 다중운집 위험에 대한 구체적인 주의 의무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무혐의로 수사를 종결했다.

김씨 또한 “최근 에스피씨(SPC) 계열사에서 일어난 20대 노동자 사망사고는 용균이 사건과 너무 판박이라 비참한 심정이었다. 전태일 열사가 50년 전 외쳤던 말과 지금 내가 부르짖고 있는 말이 바뀌지 않는 세상이 너무나도 처절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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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열린 한국작가회의 연대활동위원회 주최 ‘여기 자식을 잃은 두 어머니가 있습니다’ 대담에서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발언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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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은 시민들의 연대가 절실하다고도 말했다. 조씨는 “여기 계신 시인, 작가들, 교수, 판검사 등 모든 지식인에게 부탁드린다. 희생자 유족들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해 달라. 아이들의 영혼을 같이 추모해 달라”고 했다. 김씨도 “여러분들도 정말 나와 같이 자식 잃는 슬픔을 더는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한 사람은 약하지만 그 마음들이 모이면 못 할 게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자식들을 위해 연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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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열린 한국작가회의 연대활동위원회 주최 ‘여기 자식을 잃은 두 어머니가 있습니다’ 대담에서 고 이지한씨 어머니 조미은씨가 발언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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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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