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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외상주는 대한민국 1호 호떡집 ‘행복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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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랑방 변한 7평 작은 가게…손님 몰리는 이유

호떡 1장에 1500원, 외상값 줘도 믿음으로 돌아와

인심 좋은 털보아저씨 부부 "나눌수록 행복해요”

폐지줍는 어르신 등 소외계층에 작은나눔 훈훈

헤럴드경제

행복한호떡집에서 구워내는 호떡은 치자, 보리미숫가루, 무농약찹쌀 등이 들어가 있어 고소하고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서인주 기자


[헤럴드경제(광주)=서인주 기자 ]“지글지글, 지글지글” 촉촉하고 말랑말랑 한 게 노랑 풍선과도 같은 마법 반죽.

호떡 가게 주인장 ‘털보아저씨’가 솥뚜껑 만한 손으로 한 움큼 뜯어낸다. 어른 주먹 만한 호떡 반죽은 100도가 넘게 달궈진 철판에 풍덩하고 빠진다.

깨끗한 기름 속에 빠진 호떡은 잠시 후 노릇노릇 먹음직스럽게 구워진다. “꿀꺽”하고 군침이 자동적으로 넘어간다. 여기까지는 대한민국 겨울철 대표 길거리음식 호떡집의 흔한 풍경이다.

하지만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에 있는 호떡집은 특별한 뭔가가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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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 하홍재·배경희 부부. 오후 2시 가게 오픈에 앞서 부인이 남편의 턱수염을 단정하게 정리해 주고 있다. 서인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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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주인장은 7평 작은가게에서 만들어 낸 호떡을 폐지를 줍는 노인들과 임산부, 택배기사에게 공짜로 내어준다. ‘꼬깃꼬깃’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학생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볼때는 수시로 할인이벤트를 펼친다. 돈이 없는 배고픈 사람에게는 외상도 내준다. 손님들은 외상을 기억해도 정작 주인들을 이를 모를때가 많다.

한번은 재작년 겨울에 6000원을 외상값을 빚진 손님이 얼마 전 “미안하다”며 돈을 가지고 왔다. 대한민국 최초의 ‘외상 호떡집’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만한 사연이다.

호떡 1장을 1500원에 팔고 있는데 넘치는 인심에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가게이름도 ‘행복한 호떡’.

주인공은 하홍재·배경희 부부다. 3년째 가게를 이끌고 있는데 ‘배려와 나눔’으로 일대에서는 유명하다. 음식을 만들면 꼭 주변가게와 이웃들과 함께 나눈다. 취재차 방문한 기자에게도 꽃게미역떡국을 큰 그릇에 담아줬고 거의 다 먹어갈 때 쯤 또다시 한대접을 더 덜어줬다. 한번 주면 정이 없기 때문이란다. 정때문인지 지금껏 먹어본 떡국 중 단연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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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화정동에 문을 연 행복한 호떡은 폐지노인, 택배기사, 임산부 등에게 이웃의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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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버는 것도 중요한데요. 그게 전부가 되어서는 안되잖아요. 부자는 아니지만 작은거라도 소외된 이웃과 나누고 있는데 그럴 때 참 행복합니다.”

첫 인상부터 이웃집 형님, 누님 같다.

특히 반죽을 책임지는 하홍재 사장은 삼국지의 관우나 소림사 주지스님을 연상케 한다. 큰 체구에 30cm가량 멋진 턱수염을 자랑한다. 하지만 속은 여리고 순한 사람이라고 했다. 말수가 많지 않은 편인데 약주가 한잔 들어가면 너털웃음이 매력적이다.

전라도 영광 출신 남편과 경상도 김해가 고향인 부인이 다소 늦은 나이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들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전통방식으로 꿀을 생산하면서 자연인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 사랑스런 늦둥이 딸이 생겼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의 미래를 위해 자연인의 삶을 잠시 미루고 도시로 나왔다.

“무엇을 해볼까?” 고민 끝에 지인의 소개로 호떡집을 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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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호떡에는 단골손님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한 손님이 호떡 포장을 기다리면서 주인장과 대화를 하고 있다. 서인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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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화물차를 개조해 푸드트럭을 만들었는데 주변상인들의 텃새와 어린딸이 차에서 고생하는게 마음에 걸려 월세 55만원의 가게를 얻었다.

이내 호떡집은 사랑방이 됐다. 부부의 친구와 지인들이 수시로 방문한다. 그럴때마다 포근한 미소로 화답한다. 끼니 때가 되면 먹는 밥상에 숟가락을 하나 더 얹으면 된다고 했다. 누구든 언제든 대환영이다.

“가족이 못 먹을 음식은 절대 팔지 않는다”

남편은 1년 중 절반 이상을 호떡가게에서 지낸다. 매일아침 6시 반죽을 시작하는데 여기에 각종 비법이 숨겨져 있다. 직접 재배한 무농약 찹쌀과 보리미숫가루, 치자를 넣고 6시간의 숙성을 거친다. 호떡안에 들어가는 달콤한 꿀에도 설탕과 땅콩가루, 옥수수가루 등을 넣어 비법 레시피를 탄생시켰다. 그날 만든 반죽이 소진되면 영업도 종료된다.

기름은 재사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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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족이 먹지 못할 음식을 만들지 않겠다" 부인이 영업을 앞두고 남편의 수염과 복장 등을 고쳐주고 있다.


정성이 들어간 호떡은 고소하면서도 달콤했다. 몸에 좋은 곡물이 다수 사용되다 보니 소화도 잘됐다. 쫄깃쫄깃 촉감 때문에 식어도 그맛이 유지됐다. 최근에는 즉석 냉동 후 전국에 택배로 보내는 배송서비스도 준비중이다.

호떡과 함께 먹는 어묵도 기가 막히다. 꽃게를 비롯해 다시마, 새우, 무, 황태, 대파, 매운고추로 육수를 내는데 ‘단짠단짠’ 환상궁합이다.

그늘도 있다.

고물가로 원자재값이 크게 올랐다. 밀가루를 비롯해 식용유, 설탕 등이 30~60% 가량 오르면서 걱정이 많다. 그래도 단골손님들이 꾸준히 늘고 있어 힘을 낸다.

취재가 끝나갈 무렵 학원을 마친 초등학생 딸이 왔다. 부모를 닮아 예의 바르고 미소가 예쁘다. 지갑에서 만원 한 장을 꺼내 손에 쥐어주고 나왔다. 행복한 호떡집에서 맛 본 작은 행복이다.

si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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