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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귀엽고 화려하고 기괴한 ‘좀비'···현대 문명의 두려움·공포·비애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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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립미술관, 무라카미 다카시의 회고전 ‘무라카미좀비’

초기~신작 160점, 30년 작업 한자리에 선보여

찬사·비판 상반된 평가에 무라카미 “관람객 판단 기다려”

우여곡절 끝 전시 개막, 한국 미술계의 성찰 촉구

경향신문

무라카미 다카시의 ‘스파클/ 탄탄보: 영원’(2017, 복합 재료, 240×735㎝). Francois Odermatt collection (C)2017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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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주목을 받는 일본의 팝아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61)가 대규모 회고전으로 한국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에 마련된 ‘무라카미좀비’ 전을 통해서다. 2013년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의 전시 이후 10년 만에 국내서 열리는 최대 규모의 개인전이다.

전시 개막 전부터 관심을 끌만큼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무라카미는 찬사와 비판을 함께 받는 대표적 작가다. 일본의 독특한 오타쿠 문화와 만화·애니메이션의 대중문화, 전통회화와 우키요에, 전통문화를 현대미술로 융합시켰다는 평가다. 일본과 현대문화의 깊이 없는 평평함·경박함 등을 꼬집는 ‘수퍼플랫(Superflat)’ 개념 위에 극단의 평면성, 만화적 캐릭터와 화려한 색감, 매끈하고 반들거리는 표면 등 독특한 형식·내용으로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순수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물고 예술의 문턱을 낮췄다는 찬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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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다카시의 ‘붉은 요괴, 푸른 요괴와 48 나한’(2013, 복합재료, 300×500㎝). 개인소장. (C)2013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Heller Group.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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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일본 문화의 자극적인 표피 만을 차용해 서구적 문화로 포장함으로써 미술사적인 깊이나 사유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200여명 직원을 둔 회사를 통한 공장식 대량생산 창작 구조의 상업 작가, 예술을 빙자한 ‘아트상품 사업가’라는 비판도 있다.

작가는 지난 26일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해 이런 비판적 시선에 의견을 표명했다. 작가는 “저는 아트의 문턱을 낮추는 데 공헌했다고 생각하지만 일부에선 좋지 않은 풍토를 퍼뜨렸다고 말한다”며 “관람객의 판단을 기다리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는 “스포츠에 여러 장르가 있듯 현대미술도 예술의 한 장르”라며 “관람객들에게 건네는 새로운 제안으로, ‘이 관점·각도에서 보니 새롭네’하며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무라카미좀비’ 전은 상반된 평가 속에 주목 받는 무라카미의 작품세계를 살펴보는 흥미로운 자리다.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회화부터 조각·영상·설치 등 모두 160여 점이 선보인다. 리움 등 국내외 기관과 빅뱅의 지드래곤(권지용) 등 개인 소장품도 망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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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좀비’ 전에서 화려한 꽃잎과 미소로 유명한 ‘무라카미 플라워’ 관련 작품들이 전시된 전시실 전경.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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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귀여움, 기괴함, 덧없음을 소주제로 한 3개 섹션 전시와 이우환 작가의 상설전시관 ‘이우환공간’에 마련된 전시, 1~2층 로비의 설치작 등으로 구성됐다. ‘귀여움’에는 그의 대표적 캐릭터이자 그를 국제 무대에 알린 ‘미스터 도브’, 도브에서 발전돼 기괴함이 융합된 ‘탄탄보’, 12개의 꽃잎과 활짝 웃는 해맑은 미소로 유명한 ‘무라카미 플라워’ 시리즈 작품 등이 나왔다. 관람객이 좋아하는 익숙한 이미지의 작품들 사이에 일본 전통회화와 도브 캐릭터를 융합한 ‘727 드래곤’ 등 그의 ‘수퍼플랫’ 개념이 잘 녹아든 작품들도 있다.

특히 대작 ‘스파클/탄탄보-영원’은 귀여운 캐릭터들과 불안과 혼란·파괴를 상징하는 듯한 괴물같은 탄탄보가 공존한다. 작가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목격한 이후 작업에 변화를 꾀했다. 이 작품은 원전사고 등 대형 재난에 직면한 현대 문명과 사회의 불안을 담아낸다. 작가는 “사회가 몰락의 길로 치닫고 있음에도 개인들은 모든 것이 좋은 상태라는 집단적 환상, ‘보호용 고치에 갇혀 있는 상태’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한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너 괜찮니?’ ‘근데 진짜로 세상이 엉망이지 않나요’ 등의 글이 든 말풍선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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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작가 자신의 몸과 반려견을 좀비로 형상화한 ‘무라카미 좀비와 폼 좀비’(가운데)를 중심으로 다양한 작품들이 내걸린 ‘덧없음’ 섹션 전시장 일부. 도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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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통문화의 다양한 부문에 녹아들어 있는 ‘기괴함’은 무라카미가 적극 차용한 요소다. 기존의 변형, 공포와 두려움, 우스꽝스러움, 부조리의 풍자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기괴함’ 섹션에는 인간 존재의 불안함을 드러낸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오마주한 작품, 동일본 대지진 당시 아버지를 잃은 소년이 요괴들과 모험을 하는 이야기의 SF판타지 장편영화와 영화 속 요괴들 캐릭터 조각이 관람객을 맞는다. 또 과거 발표 당시 논란을 불렀던 ‘히로폰’ ‘미스 코코’ 관련 작품들, 최근 작업한 ‘NFT(대체불가능토큰)’ 실사품 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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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다카시 작가가 지난 26일 전시 개막 참석차 찾은 부산시립미술관 로비에 설치된 작품 앞에서 익살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 도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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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음’ 섹션은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대재앙에 직면한 인간의 무력함 등을 통해 현대 사회에 대한 새로운 자각, 예술·예술가의 역할과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담긴 작품들로 구성됐다. 그는 “대지진 당시 종교가 전혀 다른 스토리를 제공함으로써 패닉 상태에 빠진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종교의 시작, 그 역할을 봤다”며 “저도 스토리가 있는 예술로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가 ‘귀여움’ ‘기괴함’을 넘어 이른 곳은 종교와 ‘덧없음’인 셈이다.

전시실에는 극히 어둡고 거친 화면의 ‘원전도’(1988년), 원자폭탄의 버섯구름을 표현한 ‘비행운’(2022년) 등과 함께 나한(아라한) 등 불교에서 영감 받은 작품들이 상당수다. 인간에게 재앙을 주는 요괴를 불교의 금강역사상과 결합한 ‘붉은 요괴, 푸른 요괴와 48나한’이 대표적이다. 입을 다문 붉은 요괴는 죽음과 종말을, 입을 벌린 푸른 요괴는 탄생과 생명을 상징한다. 탄생과 죽음, 시작과 끝, 대재앙 속의 불안과 공포를 무라카미 특유의 표현방식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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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다카시의 ‘727 드래곤’(2018, Acrylic on canvas mounted on aluminum frame, 300×450㎝). 권지용 컬렉션. (C)2018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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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과 죽은 반려견 ‘폼’을 자극적인 좀비 형상으로 만든 ‘무라카미 좀비와 폼 좀비’도 있다. 정종효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실장은 “작가는 재앙을 목격한 뒤 예술에 대한 근원적 사유를 펼쳐나갔다”며 “‘귀여움’에서 귀엽고 미성숙한 일본 문화의 전형을 드러냈다면 ‘기괴함’에서는 인간의 욕망과 재앙의 현실을, ‘덧없음’에서는 비극적 미래의 암시와 생명의 비애를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이우환 공간’에는 한 획으로만 그린 동그라미라라는 뜻의 ‘원상’ 연작이 이우환 작가 작품들과 함께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부산시립미술관의 ‘이우환과 그 친구들’ 시리즈의 4번째 전시이기도 하다. 이 작가는 “얼른 보아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고 화려하지만 다시 보면 독이 있고 강한 비판성이 감춰져 있다”며 무라카미를 초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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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미스 코코’ 관련 작품들이 전시된 공간 모습.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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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의 작품세계를 감상하는 것과 별도로 이번 전시는 갖가지 우여곡절 끝에 개막돼 한국 미술계에 반성과 성찰을 촉구하는 계기의 전시회라는 평가가 미술계에서 나온다.

당초 이번 전시는 지난해 9월 개막해 5개월 동안 이어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작품 설치를 하던 지난해 여름에 태풍으로 미술관 건물에 비가 새면서 작가가 반발하는 등 논란이 빚어졌다. 작가 측이 국제적 기준의 항습 조건 등을 요구했지만 제대로 된 항습·항온시설을 갖추지 못한 미술관은 작가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었고, 결국 전시회 개막을 연기해야 했다.

개막이 늦춰지면서 이번 전시는 3월 12일까지만 열려 전시기간이 대폭 줄었고, 무료 전시로 전환됐다. 중진 미술평론가는 “전시 연기는 부산국제비엔날레까지 대대적으로 개최하는 한국 제2의 도시 부산, 문화예술을 강조하는 부산시의 대표적 미술관이 비가 새고, 미술관의 기본인 항온·항습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국제적으로 알린 창피스러운 일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에서 ‘K-아트’를 외치고 있지만 부산시립미술관의 지난 사태는 부산만이 아니라 한국 미술계의 부실한 내부 체계, 민낯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미술계와 정부, 지방자치단체들의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의 한 화랑 관계자도 “부산시립미술관의 국제적 위상 추락은 시민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며 “대대적 보수를 한다는데, 더이상 부끄럽지 않도록 공사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도 “이번 전시는 리노베이션을 앞둔 미술관에 큰 숙제를 남겼다”며 “미술 시장을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K-아트’ 붐을 지속하려면 미술관과 미술계 시스템이 많이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도재기 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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